▲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타짜: 원 아이드 잭’은 ‘돌연변이’로 쓴맛을 봤던 권오광 감독의 절치부심한 노력이 돋보이는 강렬한 텐트폴 맥거핀 영화다. 20세기 말 국내 노름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짝귀(주진모)가 죽은 뒤 그의 아내는 식당을 운영하고, 외아들 일출(박정민)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실은 포커에 빠져있다.

단골 노름판에서 무지렁이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일출의 앞에 묘한 분위기의 마돈나(최유화)가 나타나 마음을 흔든다. 그 후 일출은 이상무(윤제문)의 벤츠와 부딪쳐 시비가 붙자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그의 포커 도전을 받아들인다. 참패한 일출은 ‘꽁지돈’을 빌려 재차 도전하지만 탈탈 털린다.

일출이 돈을 갚지 못해 깡패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을 때 애꾸(류승범)가 나타나 자신이 보증을 서겠다며 구해준다. 이유를 묻자 애꾸는 예전에 짝귀에게 빚을 졌고, 그걸 갚아줬을 뿐이니 노름판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일출은 자신을 거둬 달라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결국 성공한다.

애꾸는 서천의 부동산 졸부 물영감(우현)을 타깃으로 삼고 50억 원을 뜯어낼 작전을 구상 중이었다. 팀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그는 화려한 손기술의 까치(이광수), 섹시한 연기파 영미(임지연), 기원을 운영하는 숨은 고수 권원장(권해효)을 작전에 끌어들여 시나리오를 짜고 일출에게 맹훈련을 시킨다.

▲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이미지

돈 많은 신혼부부로 위장한 까치와 영미는 물영감과 친한 부동산중개소에 나타나 미끼를 던지고, 물영감은 덥석 물어 1억 원을 잃는다. 물영감은 판을 더 키우자며 별 의심 없이 다음 미끼를 문다. 이번엔 50억 원이다. 물영감은 권원장과 일출을 스카우트하고 애꾸의 계획대로 결국 까치가 이긴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분기탱천한 물영감은 더 큰 판을 제안하고 애꾸의 작전은 성공을 목전에 둔다. 그런데 호텔 앞에서 물영감과 대화하던 일출 앞에 마돈나가 등장한다. 그날 밤 일출은 마돈나의 숙소를 찾아간다. 그녀는 이상무를 죽인 뒤 가로챈 돈으로 서천에 투자해 새 출발을 하려 한다는데.

재미만큼은 1, 2편을 뛰어넘는다. 도대체 어디까지 관객을 속일 심산인지 끝이 안 보일 정도다. 애꾸가 팀을 구성하는 방식은 다분히 ‘나우 유 씨 미’를 연상케 하지만 그 작품의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노름을 소재로 하면서도 절대 노름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제만큼은 일관되게 흐른다.

“노름꾼은 아량이 있어야 해”는 “노름판을 따라다니며 배운 건 적당할 때 그만둬야 한다는 것”과, “의심은 해봤어, 가장 가까운 사람?”은 “도박판에선 상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내 편”과, “운도 재능. 베팅할 땐 인생을 걸어야 해”는 “도박하면 돈 먼저, 다음은 가족 그리고 영혼을 잃어”와 각각 연결된다.

▲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이미지

“원래 노름꾼은 다치거나 죽어”라는 합리화와 도박이 다 자본주의 탓이라는 핑계는 “얼핏 인생은 도박 같지만 사실은 그보다 특별하다”는 교훈으로 매조진다. 또 명문대 입학 비리 뉴스와 “공무원이면 공무원답게 적당히 해야지, 왜 잘해 줘?”라는 공무원을 통해 사회 부조리에 대한 날도 세운다.

러닝타임 139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만큼 스피디하고 서스펜스가 넘친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만큼 잔인한 장면도 넘쳐나고, 쿠키엔 1편이 오버랩되는 카메오가 등장해 마지막까지 재미를 선사한다. 전편들에 아귀가 있었다면 이번엔 그들을 뛰어넘는 마귀가 변수로 합류해 중심에 선다.

류승범은 애꾸 자체로서 꽤 무겁고, 이광수는 가볍지만 후반에 찡한 감동을 안겨준다. 철학의 심도는 그리 깊지 않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주제의식 하나만큼은 투철하다. 그래서 “연애도 노름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제일 위험해”라고 경고한다. 무언의 약속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도 강하다.

그래서 돌출된 메시지는 ‘배신하지 말자’다. 눈앞의 이익 혹은 안위 때문에 자신을 믿고 도와준 은인에게 배신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순간의 이득이나 위기 탈출은 있겠지만 결국 평생 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 수밖에 없다. 또 주인공들의 운명론이 엿보이는 관계로써 인연을 말한다.

▲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이미지

“우연이든 필연이든 지긋지긋한 악연”이란 대사고, 모든 주인공들이 만나게끔 정밀한 설계가 돼있었다는 플롯이다. 그래서 일출은 ‘만약 이렇게 했다면 달라졌을까’라며 내내 회의주의에 빠져있다. 박정민은 이제 ‘동주’를 뛰어넘어 상업영화에서 명실상부한 주연배우로서의 강한 존재감을 보인다.

모든 사람들은 도박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경험해본 사람은 그 스릴이 주는 쾌감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노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면서도 기업 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카지노 등을 합법화하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현실은 인지부조화를 주기 쉽다.

즉 노름이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육체적 부상의 걱정 없이 짜릿한 승부를 즐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데다 한탕의 기회까지 노릴 수 있다는 기대로 노름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리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확증편향을 한다. 일출을 통해 확률의 유혹에 확신을 갖는 어리석음을 꾸짖는 시퀀스다.

애꾸의 누아르적 ‘불나비 사랑’(김상국)은 노름꾼의 어두운 운명을 강하게 설파한다. 그래서 엔딩 송이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다. 그 외 배경음악들도 무디하거나 블루지하거나 경쾌하다. ‘Winner takes all’이라는 테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명제도 거론되지만 큰 논제는 없다. 9월 1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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