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예스터데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국 출신 대니 보일 감독이라고 하면 히트작 ‘트레인스포팅’의 컬트적 분위기와 루 리드의 나른하고 몽환적이며 침잠된 ‘Perfect day’가 연상되지만 신작 ‘예스터데이’는 판타지적 요소만 제외하면 현실적이고 밝다. 물론 영국 뮤지션과 그들의 히트곡을 활용하는 기술은 여전하다. 이번에 비틀스다.

교사 출신 무명 싱어송라이터 잭(히메시 파텔)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이는 어릴 때부터 친구이자 매니저를 자청하는 수학교사 엘리(릴리 제임스)다. 오늘도 엘리는 이런저런 행사를 수소문해 잭을 무대에 세우지만 관중들은 시큰둥하다. 낙담한 잭은 자전거로 귀가하다 버스와 추돌해 병원에 입원한다.

며칠 후 그의 퇴원을 기념해 엘리를 비롯해 ‘루저’ 친구들이 자그마한 파티를 열고 새 기타를 선물하며 노래 한 곡 들려달라고 한다. 그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그러자 엘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명곡이라 치켜세운다. 잭은 누구나 다 아는 비틀스의 명곡인데 새삼스레 왜 그러냐고 묻는다.

친구들은 웬 딱정벌레 얘기냐고 의아해한다. 엘리는 잭이 사고를 당하던 그 순간 약 12초간 전 세계에 정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본 잭은 세상에서 비틀스도 그들의 히트곡도 다 사라진 걸 알게 된다. 그는 비틀스의 노래들을 자신의 것처럼 무대에서 열창한다.

▲ 영화 <예스터데이> 스틸 이미지

기찻길 옆에서 녹음실을 하는 개빈이 잭에게 CD 출판을 제안하고 잭은 제작된 음반을 자신이 ‘알바’를 하는 할인매장에서 고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한다. 그 사실이 알려져 TV에 출연하는데 그걸 본 에드 시런이 집에 찾아온다. 모스크바에서 공연을 하는데 오프닝 무대에 서달라는 엄청난 제안이다.

공연은 대성공을 이루고 에드의 매니저 데브라(케이트 맥키넌)에게 스카우트된 후 비틀스의 히트곡인 걸 숨긴 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내듯 카피해 히트시킨다. 그는 팝계의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받으며 대스타가 되지만 양심의 가책, 카피의 한계, 엘리와의 애매한 관계 때문에 고민은 깊어만 가는데.

보일 감독은 노골적으로 제도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데 이번엔 신이 분노한다. 인류는 Y2K의 대혼란은 막았지만 신의 노여움만큼은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신은 인류에게서 비틀스도, 오아시스도, 코카콜라도, 해리 포터도 빼앗아갔다. 롤링스톤스와 펩시콜라는 남았다지만 비틀스만할까?

신이 화난 이유는 1등만 주시하는 ‘Winner takes all’ 현상 때문이다. 금메달만큼 은메달, 동메달도 값진 승리인데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하고, 스포트라이트는 1등만 부각한다. 에드 시런은 잭에게 “넌 모차르트, 난 살리에리”라고 패배를 자인한다. 하지만 살리에리처럼 낙담하거나 질투하지는 않는다.

▲ 영화 <예스터데이> 스틸 이미지

감독은 그게 조화로운 세상이라고 웅변하는 것이다. 21세기 영국의 최고 뮤지션은 언젠가는 자신이 왕좌에서 내려올 것을 알고 있었고, 잭을 보자마자 그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하며, 이내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두 스타는 양립할 수 있었다. 중세까진 먹거나 먹히는 것이었지만 이젠 공존이다.

잭이 비교적 안정된 교사를 그만두고 ‘알바’를 전전하며 뮤지션의 꿈을 펼쳐나갔을 때 아주 힘들어서 엘리에게 회의하며 회귀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엘리는 “그러면 네 상상력을 펼칠 수 없다”며 만류했다. 감독의 제도권을 향한 ‘한방’이 빛난다. 틀에 맞추지 않고 창의력을 펼치는 게 제 인생이라고.

할인매장 점장은 잭에게 “수염을 기르고 지각까지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고객들이 널 좋아하니 해고 안 한다”고 안 해도 될 말을 한다. 제도권은 고지식한 계율을 만들고 그 규준 안에 모든 걸 꿰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고집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개성은 저마다 다르기에 세상은 변한다.

그래서 인생은 ‘플라톤의 침대’다. 잭의 비틀스 노래는 분명 이데아의 침대가 아니라 시뮬라시옹에 의한 시뮬라크르다. 그건 두 가지 의미다. 첫째는 모방은 이데아일 수 없다는 진실의 문이고, 둘째는 비틀스는 사라져도 그 음악성은 영원하다는 클래식의 값어치다. 거기엔 ‘익시온의 수레바퀴’도 있다.

▲ 영화 <예스터데이> 스틸 이미지

권력, 부, 명예 등을 취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영겁의 고통에 시달리는 익시온을 향해 가는 길이다. 데브라는 잭에게 “나와 함께 돈과 명예의 독배를 마시겠냐”고 묻고 잭은 그 금단의 열매를 덥석 문다. 그러나 그로 인해 엘리와 점점 더 멀어진다. 부와 명예를 쌓을수록 그의 가슴은 더욱 공허해진다.

폴 매카트니, 존 레넌,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의 목소리와 연주가 아니기에 다소 서운할 수는 있지만 커버 버전일망정 비틀스는 불멸이고 사랑이다. 걸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White album’은 이름만 거론한 채 히트곡 위주로 흐르긴 하지만 ‘Yesterday’가 있어 든든하다.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비틀스의 히트곡을 활용한 록 무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듯하지만 사실은 교묘한 멜로 영화다. 기찻길 옆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할 때 잭은 사실상 원맨밴드 기능을 한다. 그런데 그는 엘리, 개빈과 함께 고무장갑을 끼고 손뼉을 치고, 각자 카바사, 트라이앵글을 연주한다.

특히 엘리의 코러스 역할은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다. 그녀는 사랑과 스타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잭에게 “왜 날 친구 칸에 넣은 거야”라고 원망한다. 잭은 자기 외에 유이하게 비틀스를 아는 중년 커플과 그들이 건넨 쪽지에서 찾아낸 ‘귀인’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다. 1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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