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룸’, 인간의 과욕 경고하는 스릴러계의 ‘매트릭스’ [유진모 칼럼]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까, 복제된 허상도 실재일까?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9.19l수정2019.09.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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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번역가 케이트(올가 쿠릴렌코)는 화가 남편 맷(케빈 얀센스)과 함께 복잡한 뉴욕을 떠나 외곽의 스프링웰하우스라 불리는 집으로 이사한다. 집안 정리를 하던 맷은 뭔가 이상한 벽면의 벽지를 걷어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방을 발견한다. 술을 마시며 “한 병 더 먹고 싶다”고 말하자 그 술이 생긴다.

놀란 그는 유명 화가의 그림부터 생필품은 물론 돈까지 주문하고 말하는 대로 눈앞에 발생한다. 두 사람은 명품 옷을 걸치고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 등으로 매일 파티 같은 삶을 산다. 그런 향락이 지칠 때쯤 맷은 케이트에게 다시 임신을 시도해보자고 한다. 케이트는 2번 유산한 아픈 경험이 있던 것.

케이트는 병원에서 이미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희망고문을 하지 말자고 반발하고, 실망한 맷은 자동차를 몰고 나간다. 밖에서 기분을 풀고 돌아온 맷은 침대에 놓인 갓난아이를 보고 경악한다. 맷은 케이트를 설득해 아이를 안고 그 방에 들어가지만 울어대는 아이가 측은해 차마 돌려보내지 못한다.

전기 시설을 고치러 온 기사가 맷에게 집의 내력을 알려주고, 맷은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오래전 부부가 살해됐는데 용의자는 존 도라는 그들의 외아들이었고, 그는 정신병동에 수감 중인 것. 맷은 병원을 방문해 존 도를 만난다. 알 듯 말 듯 한 말을 한 존 도는 며칠 후 전화로 충격적인 말을 전하는데.

▲ 영화 <더 룸> 스틸 이미지

데뷔작 ‘르네상스’(2006)로 프랑스 애니메이션계를 놀라게 한 크리스티앙 볼크만의 충격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더 룸’이 오는 25일 개봉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미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 보통 이런 장르의 영화는 초반부가 지지부진하기 쉬운데 이 작품은 금세 본론을 향한다.

그만큼 군더더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직설형으로 스릴러계의 ‘매트릭스’다. 워쇼스키 자매가 형제이던 때 항상 들고 다녔다고 하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의한 시뮬라크르다. 또한 관념론과 유물론이 대립하고, 유신론과 인본주의가 충돌한다. 부부는 방을 통해 창조자가 되려는 우를 범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부자일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혈안이 된다. 케이트와 맷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풍족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부부였다. 케이트는 싸구려 번역가고, 맷은 아직 무명화가지만 둘은 사랑하고, 벨기에의 1000가지 맥주를 즐길 수 있어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그 방이 그들의 잠재된 욕망을 끄집어냈다. 벨루가를 안주로 돔 페리뇽을 마시고, 명품 옷과 돈다발로 갑부 코스프레를 하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그건 바로 신의 영역이다. 케이트의 “난 왜 하필 예술가를 사랑했을까?”라는 말은 그 방을 알기 전까진 신과 관념론을 믿었다는 증거.

▲ 영화 <더 룸> 스틸 이미지

방의 능력은 부부가 신을 자처하게끔 욕망의 끝으로 유도했다. 존 도는 대놓고 니체의 ‘신을 죽이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명제를 인용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으로 아폴론적 질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 지배해온 사상 체계를 무너뜨리며 가치전도를 시도함으로써 신을 죽였다.

인트로와 중간의 앙각으로 잡은 숲과 하늘은 그러한 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그 경치가 비치는 차창과 맷이 거울에 비친 시퀀스는 시뮬라크르다. 일찍이 플라톤은 침대를 예로 든 이데아론을 통해 진품과 ‘짝퉁’을 설파한 바 있다. 스프링웰하우스는 그 가짜를 생산해내는 화수분 같은 존재다.

방의 능력에 처음엔 “느낌이 안 좋아”라던 케이트는 외려 아이까지 만들 정도로 욕망의 노예가 돼간다. 지폐를 들고 밖에 나갔다 그게 전부 먼지로 변한 걸 보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맷은 아이가 “살과 뼈로 만든 물건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케이트는 “영혼이 있으므로 그렇지 않다”고 팽팽히 맞선다.

여기서 엠페도클레스의 오르페우스교적 신비주의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상충하고 창조론과 진화론이 격돌한다. 케이트의 아이는 종교적으로 신성모독인 동시에 과학적으로도 이단이다. 아마 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살, 뼈, 두뇌 혹은 그를 대체할 도구를 발명할지도 모르지만 영혼은 불가하다.

▲ 영화 <더 룸> 스틸 이미지

그런데 감히 케이트는 방이 ‘만든’ 아이에게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다. 시뮬라크르가 이데아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 온 집안의 벽엔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전선으로 도배가 돼있다. 감독은 뇌신경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이 집은 하나의 독립된 세계고, 그 방은 두뇌, 영혼, 의지 등에 해당한다.

부부는 방의 능력을 3D 프린터와 컴퓨터에 빗댄다. 컴퓨터는 인류에게 끝없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준다. 총을 만든 3D 프린터는 언젠가 모든 도구들을 복제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벨기에의 1000가지 맥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맥주가 오리지널리티를 잃게 된다. 사람마저도 그렇게?

방이 뭔가 복제해낼 때 집안의 조명이 깜빡거린다. 그건 종교적으론 신의 천지창조 순간을, 과학적으론 빅뱅의 현상을 뜻한다. 먼지가 흩날리는 집안의 공간은 이 집에서 욕망을 품는 순간 그건 모두 한 줌의 먼지와 같은 허상일 뿐이라는 의미다. 고흐와 세잔의 작품이 가짜라면 예술적 가치는 없다.

“컴퓨터는 오류라도 나지”라는 말은 멈출 때를 알라는 과유불급의 교훈이다. 후반부 시퀀스의 복제된 허상의 공간은 섬뜩하고 해피엔딩인 듯했던 엔딩의 반전은 전율이다. 유물론도 관념론도 모두 허점이 있다는 결론은 명석하고, 주연들의 연기도 빈틈이 거의 없다. 100분. 15살 이상. CGV 단독.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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