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69년 8월 9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이자 인기 여배우인 임산부 샤론 테이트를 LA 그녀의 부유한 힐 하우스에서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 추종자들이 살해했다. ‘헌팅 오브 힐하우스’(다니엘 파렌즈 감독)가 정공법이라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는 우회법이다.

웨스턴 드라마 ‘바운티 로’로 한때 잘나갔지만 이젠 한물간 릭(리어너도 디캐프리오)은 악역으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그의 스턴트맨 겸 매니저 겸 비서로 일해 온 클리프(브래드 피트)와의 우정은 지키고 있다. 클리프는 주먹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쟁영웅이지만 아내를 살해한 의심을 받고 있다.

릭의 차를 몰고 가던 클리프는 거리에서 우연히 히피족 소녀를 알게 되고 그들의 공동체 숙소까지 태워준다. 그런데 한 히피가 바퀴에 펑크를 내고, 클리프는 히피를 흠씬 두들겨 팬다. 릭의 부탁으로 그의 집 지붕에 올라 TV 안테나를 수리하던 클리프는 이웃집에 이사 온 샤론 테이트를 보게 된다.

릭은 원로 에이전트 마빈(알 파치노)을 만나 로마로 가서 마카로니웨스턴에 도전함으로써 배우로서 새 삶을 살라는 제안을 받고 클리프와 함께 떠난다. 그곳에서 몇 편의 영화를 찍어 적지 않은 돈을 만지지만 사치 때문에 별로 모으지 못하고 귀국한다. 게다가 그에겐 이탈리아 여인 부인까지 생겼다.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 이미지

비행기 안에서 릭은 배우생명이 다된 데다 아내까지 생겼기에 더 이상 고용해줄 수 없다고 클리프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릭과 클리프는 릭의 집에서 진탕 퍼마신다. 클리프는 애완견 브랜디를 데리고 산책 나가고 릭은 마가리타를 만드는데 웬 낡은 차 한 대가 앞마당에 나타나 소음을 일으키는데.

영화는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인 2월 8일부터 시작되는데 포커스는 내리막길을 걷는 릭과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클리프에게 집중된다. 알코올 중독인 릭은 상습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상황이고, 클리프는 릭의 유명세와 친분을 이용해 스턴트 일자리를 구한다.

그런 그들에게 이웃에 이사 온 폴란스키 감독은 구세주 같은 존재다. 그들은 폴란스키의 수영장 파티에 한 번만 참석하면 그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며 희망을 품지만 폴란스키 부부의 안중에 그들은 없다. 샤론은 전에 제이와 약혼했다 폴란스키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와 결혼했지만 묘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제이도 그들과 함께 살고 있고 제이와 샤론의 호칭은 ‘허니’다. 물론 난잡하고 난해한 관계로 그려지는 건 아니지만 그 설정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와는 다른 할리우드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가사노동 중에도 록을 크게 틀어놓는 샤론과 호화로운 플레이보이 맨션에서의 파티도 마찬가지.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 이미지

릭은 할리우드의 화려함과 그 뒤의 어두운 양면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델이다. 한때 세상을 흔들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할리우드에 살지만 폴란스키의 집보다 아래고, 위압스런 철문으로 철옹성을 구축한 폴란스키의 집과 달리 부랑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정도로 보안이 허술한 외화내빈이다.

이제 주연 캐스팅은 없고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악역만 맡는 그는 잦은 음주 탓에 촬영장에서 대사를 잊기 일쑤다. 브레이크 타임 때 자신의 트레일러에 들어와 그 자괴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시퀀스는 비단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후배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모든 ‘퇴물’의 현실이라 서늘하다.

스튜디오에서 릭은 싸구려 소설을 읽는데 8살 소녀는 월트 디즈니 전기를 읽는다. 그녀는 ‘여배우’라는 표현이 싫다며 ‘배우’를 얘기한다. 더 나아가 “배우의 본분을 100% 이끌어내야 한다”는 테제까지 던진다. 릭과의 신이 끝난 뒤 “내가 본 최고의 연기”라고 극찬하지만 칭찬이 아니라 위로 같다.

릭은 잘 알고 있는 듯 “예전엔 최고였지만 매일 조금씩 쓸모없어진다”라고 자조한다. 할리우드에서 서열은 쓸모, 즉 인기라는 비유는 섬뜩하다. 8살의 ‘어린 어른’, 중년의 ‘어른 애’. 클리프와 브루스의 대련 시퀀스는 리샤오룽(이소룡)의 유족들이 타란티노에게 크게 반발했듯 리의 팬도 불쾌하겠다.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 이미지

브루스는 케시어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 전설적 헤비급 복서)와의 승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불구로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클리프는 “몸집은 작은데 입만 크네”라고 브루스를 자극한다. 즉석에서 벌어진 대련에서 첫 합에선 브루스의 발길질에 넘어지지만 다음 합에선 그를 집어던진다.

그런 일련의 시퀀스엔 할리우드의 명성과 부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히피 소녀는 클리프가 “난 배우가 아니라 스턴트맨”이라고 하자 배우보다 스턴트맨이 더 낫다고 한다. 배우는 대본이 만든 가짜라는 이유. 그래서 그들은 “TV를 보며 자란 건 살인을 보며 자란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그들에게 살인을 가르쳤다고 결론을 내린다. 마지막 시퀀스만 빼면 예전과 달리 관조적이고 정관적인 톤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편으로 전향하는 느낌이 짖다. 클리프가 LSD를 적신 담배를 권하자 릭은 “내 술은 친구가 필요 없어”라며 거절한다. 하긴 ‘킬 빌’을 찍은 지도 꽤 됐다.

타란티노가 사랑하는 트레몰로 기타의 BGM부터 딥 퍼플의 ‘Hush’, 사이먼&가펑클의 ‘Mrs. Robinson’, 호세 펠리치아노의 ‘California dreamin′’ 등 20세기가 낳은 걸작들이 귀를 채워주고 레트로 감성 가득한 미술이 눈을 호강시켜준다. 주제는 반병이라도 빈병보다는 낫다는 인식론. 2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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