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왓치맨> 스틸 이미지 : 로어셰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엑소시스트’는 오컬트 호러를 얘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걸작이다. 그러나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이후 이렇다 할 만한 수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300’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왓치맨’이 아마 그런 케이스일 것이다. 슈퍼히어로물로선 흥행에 참패했지만 마니아 사이에선 성전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 매체에서 개봉 시기 때문에 빛을 못 본 비운의 걸작을 몇 개 선정했는데 ‘왓치맨’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과 클리셰를 거부한다. 왓치맨 멤버들은 하나같이 결함투성이여서 ‘다크나이트’보다 더 어둡다. 권선징악의 법칙까지 거부하는 이단이다.

1985년 3번째 임기를 맞은 닉슨 대통령은 가면을 쓴 자경단 왓치맨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왓치맨은 전투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닥터 맨해튼은 실험실 사고로써 물질적 존재를 뛰어넘은 신과 다름없는 절대적 존재자다. 코미디언이 살해되자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긴장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벌 오지만디아스는 이에 무관심하지만 로어셰크는 코미디언의 살해범을 잡으려 바쁘게 움직인다. 실크 스펙터는 연인 닥터 맨해튼과 이별을 선언하고 닥터 맨해튼은 상심과 혼돈스러움에 지구를 떠난다. 소련이 전쟁을 준비하고 미국은 닥터 맨해튼을 찾으려 혈안이 된다.

▲ 영화 <왓치맨> 스틸 이미지 : 닥터 맨해튼

닥터 맨해튼은 미국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최강 무기다.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고도 미국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사라지자 소련이 바쁘게 움직이며 제3차 세계대전을 준비한다. 바짝 긴장한 미국 정부는 대응을 서두르며, 닥터 맨해튼을 찾기 위해 실크 스펙터를 찾아간다.

실크 스펙터는 엄마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받은 왓치맨이지만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알고 보니 엄마를 강간하려 했던 코미디언이었다. 10대에 왓치맨이 된 그녀는 단숨에 닥터 맨해튼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전 연인을 배신하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신적인 닥터 맨해튼을 싫어할 리 없다.

로어셰크의 가정사는 더 불우하다. 그는 창녀인 홀어머니에게 홀대를 받으며 자랐고 그런 핸디캡으로 동네의 놀림거리였다. 살기 위해,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그는 거친 폭력으로 무장했고, 범죄에 대한 남다른 증오와 복수 심리가 그를 왓치맨으로 이끌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그의 이상이다.

나이트 아울은 부잣집 아들에 소심한 성격이지만 오지만디아스는 세련된 미남에 거의 모든 게 완벽하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곳은 첫 번째는 하이데거고, 두 번째는 니체며, 세 번째는 종교다. 설정은 1980년대지만 1970년을 전후로 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소재로 그 권력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 영화 <왓치맨> 스틸 이미지 : 오지만디아스.

역사와 달리 영화는 닥터 맨해튼의 투입으로 베트남전쟁을 간단하게 승리로 이끌었다고 설정한다. 그러니 닉슨은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닉슨은 모자란 인물로, 키신저는 더 모자란 인물로 그려진다. 닥터 맨해튼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산소도 필요 없으며 기체와 질료가 없는 존재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의 어디든 날아가 그곳에서 순식간에 자신만의 기하학적 건물을 창조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색한다.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을 본떠 신을 만든 것과 더불어 각 종교에 대한 오독으로 인해 사람들은 신을 의인화하는 패착을 저지르곤 하지만 신이 있다면 질료도 형상도 없다.

당연히 시공을 초월한다. 그 신에겐 공간과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어느 곳에든 존재하고, 과거, 현재, 미래에 공존한다. 전지전능한 특수한 존재자일 수도, 코스모스(우주적 질서) 자체일 수도 있다. ‘왓치맨’은 그렇게 암시한다. 그렇다면 닥터 맨해튼은 니체의 새로운 신인 위버멘시 개념이다.

닥터 맨해튼은 미래를 본다. 그런데 코미디언 사건은 몰랐다. 오지만디아스가 자신의 지력과 재력으로 그의 능력을 훔친 뒤 판단 능력을 흐리게 만든 것. 그가 코미디언을 죽인 이유는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서다. 그는 미국, 소련, 중국 등의 주요 도시에 닥터 맨해튼의 힘을 뿌려 살상을 한다.

▲ 영화 <왓치맨> 스틸 이미지 : 실크 스펙터.

놀란 소련과 미국은 즉시 대립을 중단한 채 전 세계 국가와의 연합을 통해 닥터 맨해튼의 공격에 공동 대처하겠다고 선언한다. 50억 명을 살리기 위해 수천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과,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도록 방조하는 것 중에 어떤 행동이 정의고 순리인지 묻는 인식론이 놀랍다.

오지만디아스는 고대 이집트 왕이고 당시의 왕들은 자신들을 신격화했다는 점에서 바이트가 오지만디아스를 왓치맨으로서의 이름으로 정한 것은 절묘하다. 물론 작가의 의도지만. 그는 오스터맨 박사가 닥터 맨해튼이 된 걸 보고, 자신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강력한 의지로써 세계대전을 막는다.

닥터 맨해튼은 신이므로 오지만디아스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오지만디아스의 상대가 안 되지만 역시 그의 인식론을 인정한다. 로어셰크는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며 그들과 길을 달리하려다 죽는다. 신과 인간 그리고 진실에 대한 존재론이 엄청나다.

Watch는 감시보다 시계의 의미가 더 크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사람이란 존재자는 본래적 존재가 현재의 육체를 얻어 현존재로 있지만 사후 도래적 존재로 인해 본래적 존재로 되돌아간다고 했다. 로르샤흐 테스트와 파레이돌리아를 연상시키는 로어셰크의 마스크는 복잡다단한 인간 심리를 의미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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