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몽키킹 히어로: 손오공과 요괴왕의 대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중국 영화에 이만큼 큰 영향을 끼친 고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유기’는 아직도 재생산되고 있지만 저우싱즈의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서유쌍기’)만큼 각광받는 작품이 있을까? 그나마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 있으니 ‘몽키킹 히어로: 손오공과 요괴왕의 대결’(2015, 이샤오싱 감독)이다.

오래전 극강의 힘을 가진 요괴왕이 한 마을을 위기로 몰지만 뛰어난 고수 모용호가 그를 제압해 봉인한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풋내기 요괴 왕대추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꽃을 피우는 재주뿐이지만, 허풍만은 최고다. 호떡을 파는 소미를 짝사랑하지만 그녀는 냉랭하다.

갑자기 마을에 백호 요괴가 출몰하자 모용백이 등장하지만 그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백호의 도주를 막지 못한다.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서역으로 가던 손오공은 강력한 요괴의 공격을 받자 여의봉으로 세 사람을 보호하는 결계를 치지만 그는 도술의 근원인 금단을 잃고 사람으로 변한다.

손오공은 왕대추와 소미를 만나 친구가 되고, 그들 앞에 나타난 토지신으로부터 백호 요괴의 은신처를 알아내 그를 잡으러 간다. 그러나 도술을 잃은 손오공은 무기력하고 꽃을 피우는 재주가 있는 왕대추가 나뭇가지로 백호 요괴를 제압해 마을로 끌고 온다. 그러나 백호 요괴는 나무 결박을 푼다.

▲ 영화 <몽키킹 히어로: 손오공과 요괴왕의 대결> 스틸 이미지

모용백은 이번엔 백호 요괴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마을 사람들이 왕대추가 백호 요괴와 한 패라며 공격하자 모용백은 자신에게 맡기라며 그와 소미를 데리고 은신처로 간다. 관람 후기를 보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후속 ‘서유기’ 관련 영화에 실망한 저우의 팬이라면 아쉬운 대로 즐길 만할 듯.

‘서유쌍기’의 주제는 철저하게 불교적이다. 이승의 삶 자체가 고통이고, 속세의 인연도 부질없다고 고매한 불교철학을 설파한다면 이 작품은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과 협동으로 고난을 극복하라고 한다. 손오공의 신통력이 난무하는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겠지만 B급 취향에는 적격이다.

특징은 어이없을 만큼 툭툭 튀어나오는 과장의 코미디와 의외의 반전이다. 삼장은 깨달음을 얻으러 서역에 가는 고승인 만큼 인격적으로 뛰어나야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다. 손오공이 그들을 보호하겠다며 친 결계 안에서 그들은 아사 위기를 맞지만 삼장은 숨겨둔 음식을 계속 독식하며 연명한다.

삼장, 저팔계, 사오정의 활약은 전혀 없고, 그저 잔재미를 주는 조력 수준이다. 손오공 역시 마찬가지. 금단을 잃은 그는 왕대추보다도 능력이 부족한 평범한 사람이다. 영화의 중심은 왕대추와 소미의 관계, 모용백과 토지신의 양면성에 있다. 왕대추는 착각의 영웅주의에 빠져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 영화 <몽키킹 히어로: 손오공과 요괴왕의 대결> 스틸 이미지

자신이 요괴인 줄은 알지만 확실한 정체성은 모른 채 막연하게 영웅일 것이라 짐작한다. 소미 앞에서 잘난 체를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 하나도 제대로 지킬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연히 마을 초입의 비석 안으로 빨려 들어가 모용호의 영혼을 만나 자신과 마을에 깃든 비밀을 알고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 마을 자체가 팔괘진의 결계였다. 인트로에 중국식 천지창조론이 등장한다. 태초에 세상이 둘로 갈라졌을 때 선한 기운은 하늘로 올라가고, 악한 기운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다분히 올림포스의 12신과 지하의 타나토스를 연상케 한다. 모용호는 티탄족을 물리치고 인류에게 평화를 준 제우스다.

모용호는 혹시라도 악의 기운이 재활할 것을 대비해 마을에 황소석상을 세워놨는데 왕대추는 바로 그 석령이었던 것. 모용백은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선조들에 비해 의지가 약했다. 그래서 영원불멸을 얻으라는 악령의 유혹과 다투다가 끝내 그에 굴복하고 어둠과 손을 잡게 된다.

그 악령은 소미에게도 깃든다. 그래서 팔괘진을 깨뜨림으로써 악의 지존을 부르려고 하지만 왕대추의 진정한 사랑과 인류애를 보고 제정신을 되찾는다. 그 악령의 근원은 다름 아닌 모용백의 나약한 의지였다. 모용가의 사람들은 시조인 모용호와 달리 세월이 흐를수록 속세의 욕심에 물들어갔던 것.

▲ 영화 <몽키킹 히어로: 손오공과 요괴왕의 대결> 스틸 이미지

백호 요괴와의 두 번째 결투에서 모용백은 갑자기 공력이 떨어져 고전한다. 백호 요괴는 그런 그를 비웃고, 모용백은 새롭게 정신무장을 한 뒤 거침없이 아이를 인질로 안은 백호 요괴의 가슴에 칼을 박는다. 그때 소미가 뛰어들어 아이를 구한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백호 요괴와 동귀어진할 뻔했다.

모용백의 시퀀스는 순수했던 인류의 심성이 오랜 성상이 지나자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했다는 비유다. 마을 사람들은 악의 기운이 퍼지자 도망갈 생각만 하지 협동으로 해결할 것을 애당초 포기한다. 그러나 악에 굴복하거나 이기적이어선 안 된다는 왕대추의 희생정신에 감읍해 힘을 보태준다.

토지신의 존재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은 숨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뜻. 금단을 잃고 사람이 된 손오공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각종 신을 부르다 마지막에 토지신을 외치니 그가 나타난다. 허름하고 겁에 질린 그의 외형은 허상이다.

신물인 용을 요괴의 지존으로, 힌두교가 숭배하는 소를 선의 표상으로 그리는 등 모든 게 가치전도다. 점잖아야 할 삼장을 이기적인 위선자로 그리고, 마을의 수호자인 모용백을 악의 중간 관리자로 설정한 것까지. 모용백 팬클럽은 우상숭배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다. 감독의 컬트 감각이 꽤 돋보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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