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연애’, 포복절도 유머와 전율의 공감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9.09.25l수정2019.09.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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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의 장르 및 하위 장르까지 다양화된 현대에 로맨틱 코미디는 식상하기도 하고, 덜 자극적이기도 해 제작 편수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흥행 성적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연애’(김한결 감독)는 근래 한국의 멜로 중 단연 유니크하고, 배꼽 빠지도록 웃기며, 인생의 교훈을 준다.

재훈(김래원)은 대학 선배 관수(정웅인)가 차린 광고회사에서 기획팀장으로 일한다. 동거 중인 수정과 결혼식 청첩장까지 돌렸지만 그녀의 불륜으로 헤어졌다. 그러나 매일 술에 취해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다음날 후회한다. 기획팀에 경력 사원 선영(공효진)이 입사해 환영식이 열린다.

거기에 선영의 연인 동화가 나타나 꽃다발과 반지를 안기며 프러포즈를 하지만 웬일인지 선영은 냉담하다. 동화가 바람을 피웠고, 선영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뒤 다른 남자와 잠깐 만나기까지 했던 것. 아침에 일어난 재훈은 2시간 동안 선영과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내용을 궁금해 한다.

그들이 야근을 하는데 재훈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병철(강기영)이 거나한 채 들어오더니 술 한잔 더 하자며 끌고 나간다. 술집에서 재훈과 병철은 선영이 맞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하고, 선영은 그게 무슨 맞바람이냐며 반발한다. 만취한 병철을 택시에 태워 보낸 뒤 둘은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긴다.

▲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이미지

선영은 입모양만 보고 무슨 단어를 말하는지 맞추는 게임을 제안하고 소주병이 쌓일수록 그녀는 인사불성이 된다. 그녀는 “자고 싶다”고 도발을 하고, 재훈은 물론 옆 테이블의 손님의 볼에 입을 맞춘다. 다행히 그녀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친구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데리고 떠난다.

‘닭살이 돋을 만큼 유치하고 기승전결이 뻔하며 남는 게 없다’는 멜로가 별로인 이유인데 이 작품은 그 모든 핸디캡을 극복하고 재미, 감동, 메시지 등을 골고루 선사한다. 무대가 되는 광고회사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폭력을 가함으로써 당사자의 인생을 파괴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자 전체다.

불확실한 풍문은 SNS과 메신저가 발달한 현대에선 걷잡을 수 없을 만한 파급력과 파괴력을 갖는다. 일찍이 베이컨은 동굴, 종족, 시장, 극장 등의 네 우상을 경고했는데 현대엔 확실히 시장의 우상이 제일 무서운 듯하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침소봉대로 ‘카더라’를 그럴듯한 팩트처럼 만든다.

우상은 아직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존여비 혹은 최소한의 남녀구분이란 편견을 만연시키고 있다. 선영은 전 직장에서 유부남인 상사가 하도 밥 한 번 먹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줬는데 하필 그의 아내에게 들켰다. 그런 유사한 케이스가 한두 개 알려지면서 방탕한 여자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이미지

여자라고 다를 바 없다. 여직원들은 회사에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와 파혼당한 남자만 있을 뿐 변변한 남자가 없다고, 관수가 아내에게 맞고 산다고 수군거린다. 선입견이 낳은 곡해와 편견이 만든 판단착오가 타인을 괴롭히고, 비참하게 만들며, 인생을 얼마나 처참하게 만드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두 주인공은 상당히 다르다. 재훈은 사랑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굳게 믿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나 운명에 의한다고 인과론과 관념론에 기울어있다. 반면 선영은 웬만한 남자들은 안 믿는다.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하는 이유다. 매우 유물론적이고 경험론적이다.

모범답안은 없다. 음식 배달부 미장센의 브랜드가 ‘생각대로’인 것은 그걸 의미하는 것. 남녀 간의 사랑이야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각자의 목적의식, 개념, 연애관, 결혼관, 가치관 등은 제각각이다. 이별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를 들으면 다 제 얘기 같지만 금세 질리는 이유가 각자의 입장 차이에 있다.

제목은 바로 ‘연애의 보편개념’을 말한다. 재훈은 “사랑을 모르네. 불쌍해”라고 혀를 차지만 선영은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 응수한다. 영화는 연애를 다루면서도 심각하게 연애하는 것도, 결혼에 집착하는 것도 다 부질없다는 초월론을 펼친다. 성별도, 개성도 모두 우주에 비하면 미미하니까.

▲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이미지

"남자가 좋아하는 남자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다”,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세속적 아포리즘을 통해 그게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테제란 걸 깨우쳐준다. 사랑은 감정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결혼은 본능과 제도의 타협이 만든 게 아닐까?

사랑은 연어이자 근원과 지배의 두 가지 뜻을 지닌 아르케다. 부화한 연어는 먼바다로 나아가지만 번식하려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귀향해 생을 마감한다. 인간의 사랑은 그런 여정인데 결국 시작은 곧 헤게모니 다툼이다. 사랑을 시작할 땐 다 줄 듯싶지만 주도권 싸움으로 변하고 결혼은 더하다.

멜로인지 코미디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요소요소에 웃음 폭탄이 산재해있다. 재훈은 우연히 만난 친구 김정수를 자꾸 박정수라 부른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들 둘을 키우는 재미로 사는데 친자 확인을 한 뒤 이혼한다. 차에 붙인 ‘아이가 타고 있어요’를 지우려 애쓰지만 잔재(상처)는 안 지워진다.

“네 것, 엄지발가락보다 작아”라며 남녀의 성기를 천연덕스럽게 거론하는 34살 여자 감독의 장편 데뷔는 심상치 않다. 특별한 테크닉 없이 시나리오 하나만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솜씨는 상업적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하게 만든다. 옥수수 하나로 감동을 주는 센스! 15살. 10월 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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