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택시 드라이버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09.27l수정2019.10.0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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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고 그걸 탐구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싸움 구경만큼 불구경이 재미있는 이유는 화재 장소 안에 사람이 없더라도 그게 사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뉴스도 영화도 관심을 끌기 위해선 그 안에 사람의 사연이 있어야 하고 그게 극적일수록 효과는 증가한다.

DC코믹스의 ‘배트맨’에서 빌런 조커만 분리한 스핀오프 영화 ‘조커’(토드 필립스 감독)는 단언컨대 철학에서만큼은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뛰어넘는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당대 최고다. ‘너는 거기에 없었다’(2017)에서 극찬을 받았던 연기력은 이젠 웬만한 사람이 거론할 경지가 아니다.

사람에 대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들 각자의 입장에 대해 이토록 깊게 들어가고, 그중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를 고통의 심연 속에 빠뜨려 어디까지 떨어지나 관찰한 이 같은 영화가 또 있을까?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배트맨은 숙적이면서도 그리 적대적이진 않다.

서로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고, 조커는 배트맨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관객은 다소 의아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커의 과거, 그의 인격형성의 과정, 그의 광기의 배경 등이 여기서 모두 드러난다. 1980년대 고담 시. 미화원의 파업으로 쥐 떼가 출몰하고 장티푸스가 창궐한다.

▲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경제를 장악한 장년의 갑부 토머스 웨인은 곧 있을 시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다.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한 ‘루저’ 아서 플렉은 이벤트 업체에서 광대로 일하면서 노모 페니를 모시고 산다. 30년간 토머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병약한 페니는 수시로 그에게 편지를 쓰지만 답장은 한 번도 없다.

레코드숍 세일 홍보를 하던 아서의 광고판을 불량 청소년들이 빼앗아 달아난다. 과장된 광대 신발을 신고 뒤뚱거리며 그들을 따라간 아서는 외려 집단 폭행을 당한다. 동료 랜들이 그에게 권총을 준다. 페니는 아서를 해피라고 부른다. 아서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며 꿈을 이루게 된다.

늦은 밤 지하철에서 멀쩡한 남자 셋이 여자를 희롱하고, 웃음병이 있는 아서가 그 장면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웃자 남자들이 그를 폭행한다. 아서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혼모 재지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아서는 페니와 매일 밤 시청하던 TV의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기생충’은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루저’인 아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도 그런 듯하지만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는다. 10대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을 정도로 나약하고, 미혼모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 못할 만큼 심약했던 아서가 바뀌는 계기는 권총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다.

▲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세 명의 금융인은 엘리트지만 죄 없는 여자를 희롱하더니 아서를 집단 폭행한다. 비교적 정상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라 대기업에 취업한 중상류층 사람이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적 악이 된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결손가정의 심신미약의 실직자보다 멀쩡한 배경을 가진 자가 더 위험한 아이러니.

“내 삶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희극”이라는 아서는 한 번 웃기 시작하면 그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 보호본능 때문에 권총을 쏜 뒤 변화하기 시작한 그는 스스로 냉장고에 들어감으로써 냉혈한으로 바뀐다. 전까지 세상에 대해 따뜻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느니 스스로 다치려 했던 것에서 전회한다.

‘내 죽음이 삶보다 가치가 있기를’이라고 일기장에 썼던 아서는 이제 입안에 고인 피를 입술 양 꼬리에 길게 늘여 조커로 만든 뒤 세상을 비웃으려 한다. 갈수록 세상은 미쳐가고, 자본가는 더욱 뻔뻔스러워진다. 아서는 좋아했던 정신병원으로 되돌아갈 일은 없으니 세상을 병원으로 만들고자 한다.

아서가 ‘나약한’ 디오게네스였다면 조커로 바뀐 뒤에는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된다. 아서는 토머스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며 자신의 존재만 알아달라고 했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만 가리지 말라고 했던 디오게네스다. 남이 보기엔 궁색해도 자존감은 충만하다.

▲ 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그래서 본능(분노 표출)을 계기로 쾌락이란 걸 깨닫고 유물론의 기초가 된 원자론을 퍼뜨린 데모크리토스가 돼간다. 그는 자신에 내재된 불변의 힘을 이끌어내 그것을 인간의 삶의 최종 목적인 쾌활한 행복을 위해 쓰려는 적극적인 유물론자가 된다. 그 과거, 현재, 미래를 잘 보여주는 게 계단이다.

아서의 집에 가려면 높은 계단을 거쳐야 한다. 극도로 과장된 광대 구두까지 신은 삶에 찌든 그의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냉장고 안에서 냉철함을 배운 뒤 그 계단을 내려가는 조커의 발걸음은 뜬구름을 탄 듯 경쾌하다. 그의 출생의 비밀이 냉장고 같다는 유물론은 섬뜩하다.

조커가 그렇듯 전 플롯은 이항대립이란 아이러니다. 자본가는 위선으로, 빈자는 핑계로 각각 합리화를 추구한다. 일이 없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도 일도 없기에 세상이 미쳐가는 것이다. 그런 짐승의 세상에 사는 아서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다이앤의 망상에 빠진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다.

뭘 해도 안 되는 다이앤은 세상을 반대로 보고, 망상에 사로잡힌 비주류 트래비스는 얼떨결에 영웅이 된다. 울면서 웃는 아서는 죽음이 삶보다 가치가 있기를 바라며 ‘산다’. 바순, 비올라, 하몬드 오르간 등이 주도하는 음악이 연출의 절반을 도왔다. 적백 대비의 대미 시퀀스도 압권. 10월 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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