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애니메이션계의 전설 ‘아이언 자이언트’(브래드 버드 감독)가 20년 만에 디지털 마스터링을 거쳐 오는 9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버드는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로 유명한데 그의 가치는 ‘아이언 자이언트’로 인해 더욱 빛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는 버드가 탄생한 1957년 어느 날 시작된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미국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점에 메인주 록웰 마을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로봇이 불시착한다. 소년 호가드는 카페에서 일하는 미혼모 애니와 둘이 산다. 엄마의 야근이 잦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주로 TV와 만화책과 친하게 지낸다.

어느 날 TV 수신 상태가 좋지 않아 안테나를 봤더니 누가 씹어 먹은 듯 손상됐다. 먼 산을 바라보니 뭔가 수상한 게 움직여 장난감 총을 들고 수색에 나섰다 아이언 자이언트를 발견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이언트는 말을 할 줄은 모르지만 호가드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듯하고 매우 착하다.

금속이 주식인 자이언트는 식성이 매우 좋다. 호가드는 그런 그를 숨기고 먹이기 위해 딱 좋은 곳을 찾아내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딘의 고물상이다. 애니를 좋아하는 딘은 고철로 예술작품을 만들 줄 안다. 처음엔 자이언트를 두려워하지만 그 역시 예술적 재능을 지닌 걸 알고 친구로 받아들인다.

정부는 자이언트가 대기권에 들어오던 날 주민의 제보를 받고 록웰에 켄트 요원을 보낸다. 켄트는 수사 끝에 적국의 강력한 살상무기가 침투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호가드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결정적인 증거와 진술을 확보한다. 그의 요청에 중화기와 탱크를 동원한 군대가 딘의 고물상을 포위한다.

자이언트의 정체는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외계에서 왔고, 단순한 로봇이 아닌, 고도로 발달한 과학이 만든 사람에 가까운 AI이거나 어쩌면 유기적 생명체인 듯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러모로 ‘블레이드 러너’가 떠오른다. 개봉 때 몰라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를 인정하고 열광하는 비운의 걸작.

자이언트는 터미네이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존재자다. 터미네이터는 입력된 명령에 따라 목표물을 제거할 때까지 자가 치유하며 공격을 멈출 줄 모른다면 자이언트도 대량생산된 무기지만 상대방의 공격이 있을 때만 방어적으로 강한 화력을 뿜어낸다는 점에서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자이언트가 자신도 죽게 되냐고 묻자 호가드는 “넌 철이지만 영혼이 있고 영혼은 불멸해”라고 답한다. 플라톤과 기독교의 영원불멸 사상. 호가드는 “누구나 죽고, 죽는 건 나쁜 게 아냐. 죽는 것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이언트는 철인데 잠을 잔다.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외계에서 온 생명체니까.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미지의 존재자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대부분 먼저 의심하고 경계하며 공격적 태세를 취할 것이다.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는 그런 패착을 그렸고, 팀 버튼의 ‘화성침공’은 의심 없이 친밀감을 품었다 참담한 결과를 맞는다면 여기선 가장 일방적인 오해를 상정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호가드와 비록 고철덩어리에 묻혀 살지만 예술을 아는 노총각 딘이 가장 순수하고도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호가드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자이언트에게 “네가 뭣이 될지는 네가 정해”라고 선언한다. 피히테는 “비아가 정립돼야 하는 한, 자아 역시 그 안에 정립돼야 한다”고 했다.

자아가 자신 내부에서 정립돼야 비아 역시 그와 동일한 의식 안에서 정초된다는 뜻이다. 이는 셸링의 자율로서의 자유, 즉 ‘절대적 자유’로 나아간다. 합목적적 자기정립을 통해 정체성을 완성하고 바른길로 나아가는 자유다. 호가드와 딘은 세상에는 안목을, 자이언트에게는 우정을 각각 가르친다.

호가드는 자이언트를 발견하고 두려움에 떨지만 발전기를 건드려 감전된 그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고, 고통 속에서도 그걸 목도한 자이언트는 호가드가 착한 존재자임을 알아채고 친밀감을 표시한다. 호가드는 세상으로 나가려는 자이언트에게 “사람들은 아직 널 만날 준비가 안 됐어”라고 충고한다.

그 이유는 애니와 켄트에게 있다. 호가드는 자이언트의 존재를 고백하지만 애니는 무시하고 바른 생활만 강요한다. 수사에 나선 켄트는 처음부터 적국의 공격 무기로 규정한 채 무조건 제거할 목적으로 움직인다. 그런 선입견, 편견, 아집 등으로 세상을 보는 기성세대는 새로움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딘의 가운 뒤엔 선명하게 태극문양이 있다. 타이지는 거대한 궁극, 궁극의 실체, 그리고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인 무아전위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즉 자이언트를 의미한다. 금속을 보면 일단 먹고 보는 자이언트는 순수하고 거대한 궁극의 존재자란 뜻.

처음에 그는 기계론적 유물론자였지만 호가드의 우정과 딘의 예술성에 의해 생기론적 유물론자가 된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배부르면 자는 살상무기에 불과했던 그는 성선설을 믿는 호가드의 친절과 배려와 희생에 의해 일종의 인간성을 내재하게끔 인도되는 것. 그 변화의 창은 그의 눈빛이다.

그는 숲속에서 사슴을 만나 교감한 뒤 죽음이란 존재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호가드의 철학과 딘의 예술을 안 뒤 죽음은 결코 고통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그가 딘과 함께 고철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시퀀스는 장엄하다. ‘블레이드 러너’와 ‘터미네이터’를 합친 걸작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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