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리안 감독의 새 영화 ‘제미니 맨’은 ‘와호장룡’의 액션보다 화려하고,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감동보다 깊다. 두 작품의 철학적 깊이와 상업적 재미 사이의 고뇌를 단숨에 해결했다. DIA(국방부 정보국) 소속 51살 최정예 요원 헨리(윌 스미스)는 러시아 범죄자 도르모프 암살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낚시터에 간 그는 새로 바뀐 종업원 대니(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안내를 받아 바다로 나간다. 사실 낚시가 아니라 옛 전우 잭을 만나는 것. 잭은 도르모프가 테러범이 아니라 과학자라며 작전에 모종의 음모가 개입됐음을 알려준다. 정박소로 온 헨리는 대니에게 DIA 요원이 아니냐고 다그친다.

대니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헨리는 사과하는 뜻으로 저녁에 한잔 사겠다고 제안한다. 카페에 앉은 대니에게 헨리는 DIA 신분증 사본을 던진다. 정체를 들킨 대니는 헨리에게 우호적으로 대한다. 그날 밤 암살팀이 투입돼 헨리는 물론 대니까지 죽이려 하지만 둘은 뛰어난 실력으로 물리친다.

이제 한 배를 탄 둘은 헨리의 옛 동료 배런(베네딕트 윙)의 도움을 받아 컬럼비아로 도주한다. 헨리의 팀장은 자넷이고, 그녀보다 윗사람이 헨리의 옛 해병대 선임 클레이(클라이브 오웬)다. 클레이는 DIA와는 별도로 특수부대 제미니를 창설하고 헨리 등에게 가입을 권유했지만 거절당한 바 있다.

은퇴한 게 이유는 아닐 테고, 왜 자넷과 클레이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의아한 가운데 컬럼비아에도 킬러가 등장하는데 이번엔 수준이 확 다르다. 헨리의 능력과 동등하지만 훨씬 젊기에 활기찬 그는 헨리를 복제한 23살 클론 주니어다. 그 역시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는 헨리에게 공포를 느끼는데.

앞서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들과 비교할 때 전혀 부족함이 없는 플롯이다. 헨리, 주니어, 그리고 주니어를 만든 아버지의 인식론 대결은 거창하다. 주니어는 킬러로 창조됐지만 아직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소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헨리는 적의를 품은 주니어와 달리 그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헨리는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의 학대를 받고 자랐다. 그의 고향 이름이 ‘밑바닥’이듯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해병대에 입대한 뒤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킬러로서의 절정의 능력을 알게 돼 오늘까지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정부의 소모품으로 산 그는 더 심한 처지의 주니어를 구원하고 싶다.

그는 은퇴하는 이유에 대해 ‘영혼의 상처를 달래고 평화를 얻고 싶어’라고, ‘거울 보기 싫은 데서 은퇴할 나이가 된 걸 알았다’라고 답한다. 또 자꾸 환상 속에서 거울을 본다. 주니어에 대한 암시인 동시에 사람들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한의 뜻. 또 다른 자아인 주니어는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뇌간의 가장 안쪽엔 인류가 파충류 시절이었을 때 형성된 R-영역이 있다고 한다. 그것의 기능은 원초적인 종족보존 등이다. 주니어는 헨리면서 헨리가 아니고, 헨리의 DNA로 만들었지만 자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R-영역은 주니어를 자기 후계자로 인식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보편일반의 개념으로 봤을 때 아버지의 행위는 악행이다. 과연 그럴까? 지구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헨리의 동료들의 건배 구호가 ‘다음 전쟁은 일어나지 않길’일 정도다. 아버지는 헨리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어중이떠중이 말고 헨리의 클론으로 구성된 군대를 전쟁에 투입해 손쉽게 승리하자는 것.

수많은 군인들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며 심지어 자살하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은 전사자나 부상자부터 전쟁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는 가족 때문에 힘들다. 클론은 전투력이 뛰어나니 전쟁 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들이 전사하더라도 슬퍼할 가족은 없다.

그러나 헨리는 아버지에게 ‘DNA로 신 노릇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클론이 사람이냐, 아니냐와 신의 창조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 불경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인식론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아버지는 사람이 만들었으니 사람이 아니라고 외치고, 헨리는 과정보다 현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체계화와 과학의 발달은 구조주의와 형태주의의 극으로 치닫는다. 개인은 무시되고 조직이 우선한다.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단체나 국가의 모양새를 중시한다. 헨리는 그러한 체제가 낳은 소모품이고, 심지어 그를 복제한 주니어가 대체품으로 맹활약을 펼치며 조직의 유지에 사용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완벽이란 말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헨리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킬러지만 물 공포증과 벌 알레르기가 결정적인 핸디캡이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잠들면 유령을 본다. 조직(국가)은 구성원들의 장단점을 아주 잘 알고, 그걸 적재적소에서 길들이고 소비하는 데 쓴다.

그래서 아버지는 “철없을 땐 충성을 다하지만 나이를 먹어 지치면 자의식이 생겨 그렇지 않게 된다”고 말한다. 이 전쟁 상황은 바로 현대인의 일상생활이다. 우리는 직장이란 조직에서 기계처럼 살아간다. 헨리가 2Km 거리에서 고속 철도 안의 타깃을 맞추듯 습관처럼 노동한 대가의 급여로 먹고산다.

헨리는 낚시로 평화와 고요를 낚겠다고 말한다. ‘와호장룡’이 인간이 복잡다단한 감정과 번뇌에서 벗어나 도달할 종착역을 자유와 해탈로 그렸듯이 이 영화 역시 자유를 외친다. 출근과 퇴근 때 거울을 보며 자신이 사람인지 유령인지 모를 ‘모던 타임즈’의 삶을 사는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9일 개봉.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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