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우리는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그 꿈은 이뤄질 수나 있는 걸까? 어쩌면 뜬구름을 잡으려 허망한 미망에 부풀어있는 것은 아닐까? ‘와일드 로즈’(톰 하퍼 감독)는 소외와 상실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허파에 허황된 바람을 불어넣는 게 아닌 가슴 뿌듯한 주의주의(강력한 의지가 우선) 영화다.

20대 중반의 로즈(제시 버클리)는 1년의 복역을 마치고 귀가한다. 8살 딸 위노나와 5살 아들 라일이 있는 미혼모고 홀로된 엄마 마리온(줄리 월터스)에겐 못된 딸인 그녀는 엄마 지인의 소개로 부잣집 수잔나(소피 오코네도)의 대저택에 청소부로 취업한다. 그래도 마리온의 눈엔 여전히 마뜩잖다.

그녀가 사는 곳은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어릴 때부터 거친 생활을 했지만 가창력을 타고난 덕에 동네의 ‘그랜드 올 오프리’ 바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출소하고 보니 이미 다른 밴드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꿈은 돈을 모아 미국 내슈빌로 진출해 컨트리 가수로 스타가 되는 것.

수잔나가 외출한 뒤 로즈가 헤드폰을 장착한 채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는 광경을 때마침 방과 후 귀가한 딸과 아들이 목격한다. 수잔나는 애들에게 들었다며 실력 한 번 보여 달라고 청해 녹화한 뒤 BBC에 보낸다. 놀랍게도 가장 유명한 컨트리 DJ 봅 해리스로부터 오디션 요청의 답이 온다.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라는 상투적 주제지만 디테일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록에 비해 지금까지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은 컨트리라는 장르로 변별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니크하다. 게다가 작위적인 동화의 구문법에서 벗어나 매우 현실적인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큰 공감과 감동을 줄 듯하다.

영화를 즐기기 위해선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필요하다. 1900년대 초기 대중음악의 주류는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그리고 재즈였다. 흑인 노예들이 고통과 한을 담아 불렀더니(블루스), 백인들이 여기에 비트를 더했고(리듬앤블루스), 부유한 혼혈 흑인(오리올) 등이 재즈로 승화했다.

아프리카의 토속적 정서와 애환을 담은 블루스가 점점 더 백인의 색채를 입어간 것이었다. 신대륙 개척 당시엔 클래식과 토착민들의 블루그래스 음악을 병행해 즐겼고 여기서 미국 민속음악인 포크가 생겨났다. 거친 황야와 벌판 지역이었던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에선 그 영향으로 컨트리가 탄생했다.

컨트리는 힐빌리 등을 거쳐 컨트리앤웨스턴이란 명칭으로 굳어졌고 이후 컨트리블루스, 컨트리포크 등의 하위 장르로 분파하더니 결국 백인이 리듬앤블루스와 컨트리앤웨스턴을 조합해 로큰롤을 만들었다. 이후엔 알다시피 록이란 하나의 커다란 줄기가 형성돼 다양한 하위 장르로써 전성기를 열었다.

로즈가 컨트리앤웨스턴 싱어로 표현되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건 정통성과 순수함의 보수성을 의미한다. 만약 루이 암스트롱이 생존해있다면 지금의 알앤비 음악에 블루스가 거론되는 데 경악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컨트리의 본고장 내슈빌로부터 물경 6326Km나 떨어져 있는 글래스고일까?

스코틀랜드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와 수세적인 전쟁을 한 끝에 연합왕국을 이뤘다. 글래스고는 18세기 초부터 미국과의 무역으로 번성한 스코틀랜드의 상공업 중심지다. 잉글랜드는 신대륙에 큰 세금을 물리면서 식민지로 깔봤는데. 그런데 영국은 미국의 록을 수입해 역수출한 확대 재생산지다.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대승적으론 대영제국으로 화합해야 하겠지만 민족주의자들에겐 아직 과거가 불편하다. 미국인 역시 지금이야 지구촌의 리더고, ‘아메리칸 드림’이란 거창한 구호가 있지만 일부에겐 영국의 전통과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던 과거가 불쾌하다. 컨트리는 그 감정의 메타포다.

컨트리는 미국에서 생산된 대중음악 중 가장 미국적이기 때문이다. 록은 블루스의 영향이 크지만 컨트리도 간과할 수 없다. 로즈의 백밴드 멤버들이 수염을 길게 기른 건 컨트리 성향의 블루스로 유명한 미국 밴드 ZZ탑을 겨냥한 것이다. 벤조, 하모니카, 피들러 등이 전면에 배치된 건 당연한 결과물.

일렉트릭기타는 수시로 밴딩과 슬라이딩 주법으로 컨트리 특유의 역동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영화는 보수와 진보가 화합하는 방법과 망상과 꿈, 현실과 가능성을 구분하는 기술을 비교적 쉽게 가르친다. 마리온은 “넌 항상 여길 뜰 생각만 하지 아이들의 미래엔 관심이 없다”고 로즈를 힐난한다.

수잔나는 자신도 예전엔 로즈가 사는 곳에서 거지 같이 살았다며 “자식이 생기면 달라져. 넌 젊고 재능이 있잖아”라며 아낌없이 로즈를 후원한다. 그러나 로즈는 미혼모인 사실을 숨긴다. 마리온은 “아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넌 가망 없어”라고 대립각을 세우지만 결국 20년 경력을 보탠다.

이유는 “책임감을 가지라고 했지, 꿈을 버리라고는 안 했어”다. 또 “난 가본 적 없지만 넌 멀리 가봐. 네 미래가 뭔지”라고 덧붙인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발전은 없다. 나무에서 떨어질 걸 걱정하지 말고 일단 올라가 보라는 이카로스의 날개다. 결국 로즈는 그 도전에서 원효대사의 깨달음을 얻는다.

가수로 성공하고픈 로즈는 그러나 기타도 못치고, 작곡도 못한다. 성지순례를 해야만 독실한 신자가 되는 걸까? 뉴올리언스에 가야만 재즈 뮤지션이 되는 걸까? 기도는 꼭 사원에서 해야만 신실한 걸까? 자기 인생을 살라는 명석판명한 가르침이 주옥같은 컨트리와 함께 감동을 준다.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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