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내가 태어난 곳은 바다를 접하고 있는 시골마을이었는데, 그 덕에 나는 자연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자랐다. 지천이 놀이터였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가시는 바람에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서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다른 형제들 보다 늦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나를 서울로 데려가셨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어쩌면 혼자서 외롭게 산과 바다를 떠돌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좋기로 소문난 할머니는 아침을 드시기 무섭게 외출을 하시곤 하셨다. 어린 손녀가 밥을 챙겨먹는지 학교는 잘 다녀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난 후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다가 어스름 해가 질 무렵이면, 시골마을 굴뚝에서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누구야 누구야를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불러주는 이가 없었다. 터덜거리며 돌아간 어린 여자아이를 기다린 것은 너무나 큰 빈집 뿐이었다.

할머니는 마을 분들과 어울리시다 밤늦게 들어오시곤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머니가 나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친척집에서 제사가 있던 날, 밤늦게 제사를 지내는지라 난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 있는 상태였다. 어스름한 달밤에 꽤 먼 길을 체구가 조그마한 할머니가 나를 업고 가고 계셨다. 아직도 그때 느꼈던 할머니의 체온이 떠오른다. 참 따뜻한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란살’이라 함은 쉽게 말해 ‘외로운 살’이다. 내 사주에는 초년의 시기에 들어와 있는데 아마도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냈던 시절과 맞물린 듯 하다. 또한 그 시절 내게는 ‘역마살’의 기운도 강했던 듯 하다. 역마살은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동하는 살’을 의미한다. 사주에 역마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직업이나 거주지의 이동이 빈번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혼자서 산과 바다를 싸돌아 다녔다. 종일 뛰어놀다 힘이 들어 풀숲에 누워 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생생했던 것이, 영화에서 보면 앵글이 빙빙 돌아가면서 주인공을 비추는 장면처럼 하늘과 나무와 햇빛이 내게 그리 보였다. 물론 놀다 지쳐 어지러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린 아이였지만 그 순간 자연이라는 엄마의 품에 내가 안겨있고, 나는 이 품안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서 들로 산으로 바다로 다녔지만 절대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때 부모님은 나를 서울로 데려오셨다. 사실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지냈던 시간보다 건물만 빽빽하고 인간미 없던 서울의 생활에서 나는 더욱 외로움을 느꼈다. 고란살이란 것이 물리적인 외로움을 의미하는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서울 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던 나는 향수병에 걸렸다. 학교 공부에도 취미를 붙이지 못했고 부모님도 바쁘셔서 나를 챙기지 못하셨기 때문에 늘 공허하고 무기력했다. 당연히 성적도 좋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는 집안의 문제아로서 자리매김을 했다.

역마살의 기운도 여전히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도 진득하니 앉아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지를 못했다. 늘 마음은 시골의 자연을 휘젓고 다니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아침마다 눈을 떠 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부모님은 미처 몰랐겠지만 난 그때 심각한 소아 우울증을 앓았었다. 생각이 많아졌고 인생과 관계에 대해서도 꽤나 깊은 사고를 했었다. 그런 상황들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든 것임은 분명하다. 어떤 것이든 그 자체가 좋고 나쁨은 없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나에게 발전적인 것으로 만드냐가 결국은 핵심이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고통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다.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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