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찰스 애덤스의 만화를 배리 소넨필드가 영화화(1991)한 ‘아담스 패밀리’를 그렉 티어난과 콘래드 버논 감독이 독특한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공동 연출했다. 고메즈 아담스와 모티시아의 결혼식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들을 괴물이라고 몰아세우며 쫓아내고 두 사람은 보금자리를 찾아 뉴저지로 간다.

‘범죄자를 위한 주립 정신병원’이란 유니폼을 입은 러치의 안내로 언덕 위에 고립돼있는 으스스한 분위기의 정신병원으로 간 두 사람은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집이라고 환호한다. 딸 웬즈데이와 아들 퍽슬리를 낳고 하인 러치, 왼손 띵과 함께 13년 동안 살아온 그들은 곧 있을 마주르카를 준비한다.

마주르카는 아담스 가족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행사로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는 남자가 전통 검술을 과시함으로써 가족을 지킬 능력을 갖췄음을 인정받는 일종의 시험대다. 이번의 시험 대상은 퍽슬리다. 마고는 집을 리모델링한 후 판매하는 과정을 방송으로 제작해 업계의 유명 스타가 됐다.

뭔가 선풍적인 아이템을 찾던 그녀에게 딸 파커가 아담 가족의 집을 제보해준다. 파커와 친구가 된 웬즈데이는 마을의 공립중학교를 경험하고 이지메를 당하는 파커를 구해준다. 마고는 고메즈에게 리모델링을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그들을 괴물로 몰아가 결국 쫓아내려고 한다.

생김새도 행동도 기괴한 아담스 친척들이 마을에 몰려들고, 학생들에게 노출된 웬즈데이의 기행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은 아담스 가족을 괴물로 취급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고메즈는 퍽슬리가 마주르카에서 실패할 것이라고 낙담하는데. 실사 영화처럼 가족이 중심인데 남매에게 더욱 집중한다.

고메즈는 결혼식 때 “왜 가는 곳마다 성난 사람들이 우리를 쫓아내려 시위를 할까?”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지 ‘애들 키울 보금자리’였을 뿐인데. 영화는 대놓고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 개성’이라고 강하게 부르댄다. 각종 차별과 편견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메시지를 준다.

아담스 가족은 혈색이 없는 뱀파이어 같고, 일상적 행동은 평범한 사람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그런데 이건 영화고 애니메이션이다. 그런 설정은 수백 년 전 우리가 백인과 흑인, 심지어 동남아 사람들조차 별종 취급했던 걸 상상하면 쉽다. 세상의 기준은 자기 민족이나 인류가 결코 아니라는 교훈.

아담스 패밀리는 ‘최선을 다해’가 아니라 ‘최악을 다해’라고 부추기고,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을 위해서’를 외친다. 웬즈데이는 ‘열성인자를 없애기 위해’ 퍽슬리를 무덤에 묻고, 페스터 삼촌의 온몸에 화살을 쏴댄다. 퍽슬리는 로켓으로 고메즈를 위협하고 사방팔방에 폭탄을 쏘는 게 취미다.

이 과장된 설정은 가치전도(니체)다. 아담스들이 음산한 정신병원을 가장 아늑한 집이라고 여기고 바깥세상을 묻는 웬즈데이에게 어른들이 “크고 나서 돌아다녀도 늦지 않아. 지금은 집이 안전해”라고 답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담스들이 위험하지만 아담스들은 외려 평범한(?)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편협한 시각으로 만든 편견을 진리라 여기는 착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스 패밀리는 호모(속) 사피엔스(종) 사피엔스(아종)인 인류와 다른 속이나 종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자연의 육화, 혹은 대상화이거나 신비주의적인 영적인 존재를 코믹하게 그린 것이다.

문명을 누리는 인류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은 미개인이거나 괴물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인류에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생김새와 하는 짓이 그로테스크하지만 인류가 참견하지 않는 한 인류를 해치지 않고 평화스럽게 공존한다. 애완 사자 이름이 키티고, 낙지가 소크라테스라는 유머.

또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아담스의 명령을 이행하는 잘린 손 띵을 하인처럼 부리며 산다. 이쯤 되면 아담스의 정체는 확연히 드러난다. 그들은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온 신이거나 자연 혹은 우주다. 다른 종족일 수도 있다. 자연과 환경은 인류가 다스릴 열성 존재가 아니라 공동 주인이다.

재미있는 건 아담스 혈통의 리더이자 영웅인 고메즈 역시 인류식 고루한 아집에 사로잡혀있다는 것. 그는 퍽슬리에게 마주르카에서는 폭탄을 쓰면 안 된다고 충고하며 오로지 전통적인 검술 연습에 주력할 것을 주문한다. 물론 마주르카는 폴란드의 전통춤이긴 하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기 마련.

처음 정신병원에 이사 왔을 때 집안엔 ‘영혼의 목소리’가 있어서 고메즈에 간섭을 했다. 하지만 언제인지 모르게 그 목소리가 집을 떠났고 고메즈 가족에겐 시련이 닥쳐온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마고다. 그녀가 부동산 장사꾼이라는 설정은 이 영화가 시종일관 지키는 환경보호 메시지를 관통한다.

그녀는 고메즈의 집이 ‘동네의 경관을 망친다’며 무료로 리모델링을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인간의 눈에 거추장스럽더라도 자연이 만든 환경은 굳이 인간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기 마련이다. 오만한 인류가 자연을 인류 위주로 재편하려는 잘못된 획일주의를 경고하는 교훈이다.

자신의 은밀한 작업실에서 동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마고는 자본주의와 미디어의 부작용을 모두 한몸에 갖춘 현대 문명의 어두운 이면이다. 샤를리즈 테론, 클로이 모레츠, 스눕 독, 베트 미들러 등 목소리 역할의 호화 캐스팅과 재치 있는 유머가 돋보인다. 전체 관람. 11월 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