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샤이닝’의 충격과 공포에 반전까지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1.01l수정2019.11.0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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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호러 영화에 한 획을 그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샤이닝’의 속편 ‘닥터 슬립’(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이 오는 7일 개봉된다. 전작이 원주민의 피와 뼈로 이룩한 백인들의 제국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이번엔 존재론에 더 집중했다. 1980년 오버룩 호텔의 대니는 유령을 보는 능력 때문에 괴롭다.

소설을 쓰는 그의 아버지는 이 호텔에서 광기에 휩싸여 가족들을 죽이려다 자신이 죽었다. 대니는 특별한 초능력인 샤이닝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 흑인 주방장 핼로랜의 영혼과 소통하며 그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핼로랜이 준 박스 안에 유령들을 가두면서 평화를 찾는다.

로즈 더 햇(레베카 퍼거슨)을 리더로 한 트루 낫이란 한 무리의 초능력자 집단이 고대 때부터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대니처럼 샤이닝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면서 잔인하게 죽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로부터 흘러나오는 스팀이란 영혼의 기운을 먹고 여태껏 살았다.

2011년. 대니(이완 맥그리거)는 아버지의 성향을 물려받아 폭력적인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그는 오버룩의 저주를 피해 입을 닫고 그곳을 떠나 따뜻한 뉴햄프셔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빌리의 친절한 배려로 묵을 곳과 일자리를 구한 뒤 알코올중독 치료 모임에 참석하며 새 삶을 꾸리려 노력한다.

현재. 여중생 아브라(카일리 커란)는 지금까지의 샤이닝 능력자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파워를 지녔다. 로즈 일행이 여느 때처럼 야구선수가 꿈인 한 소년을 납치해 샤이닝을 빼앗고, 그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있던 아브라는 그걸 감지하고 저지하고자 로즈의 머릿속에 침투하지만 실패한다.

로즈는 아브라의 존재감에 경악하지만 그런 샤이닝이라면 자신과 일행의 생명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을 알기에 그녀를 찾기 위해 모든 능력을 집중한다. 아브라는 로즈 일당에 대적해야 할 운명임을 깨닫고 자신과 유사한 사람을 찾다 대니를 알고 그의 앞에 나타나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하는데.

‘샤이닝’은 개척이란 명목으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곳에 새 나라를 건설한 미국 백인들의 폭력의 반복을 그렸다. 호텔 이름이 오버룩인 건 인디언의 묘지 위에 백인들이 호의호식할 호텔을 지을 만큼 현재의 백인들이 피의 역사를 간과하고 있다는 뜻. 잭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오버룩에 취업한다.

조용한 이곳에서 소설을 쓰고 안정된 생활도 찾고자 하는 것. 하지만 고립된 생활은 그를 점점 미치게 만든다. 그가 고작 쓰는 글이란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잭(아이)은 바보가 된다’다. 일만 한다는 건 미국이 왜곡한 역사만 믿고, 미국이 펼치는 세계평화란 명목의 제국주의에 집착하는 걸 뜻한다.

놀지 않는다는 건 바로 이런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의미다. 결국 잭은 정신병자(바보)가 되고, 오버룩의 폭력성을 이어받아 제 가족을 죽이려다 자신이 미로에 갇혀 죽는다. 그때 생존한 대니는 20살 때 암으로 엄마가 죽는 걸 보고, 유령을 보는 능력 탓에 알코올, 마약, 폭력 등에 절어서 산다.

‘샤이닝’의 핼로랜이 순수한(?) 흑인이라면 아브라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의 혼혈이다. ‘샤이닝’에서 핼로랜이 희생된 건 백인들의 신대륙 개척 과정에 흑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의미고, 아브라가 혼혈인 건 아직도 인종차별과 흑인들의 희생이 백인들을 위해 진행 중이라는 환유적 표현이다.

대니를 돕는 빌리가 인도인인 것도 그런 상징성이다. 심지어 트루 낫의 멤버들은 다양한 인종을 보인다. 그들은 고대 때부터 존재했다며 ‘왕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존재는 5세기 전반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아시아 출신 훈족의 왕 아틸라의 역사일 수도 있고, 길가메시의 전설일 수도 있다.

대니가 잭의 영향으로 아직도 매카시즘 등의 아집에 사로잡힌 구시대의 미국인 기질을 못 버렸다면 아브라는 미국의 역사를 제대로 쓰고 싶은 신지식인이다. 트루 낫은 오랜 역사 속의 오직 이기적인 민족주의로 제 배를 불리는 데만 혈안이 된 각 부족이나 현재의 집단 이기주의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들이 영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교도 집단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핼로랜의 “내게 세상은 꿈속의 꿈”이란 말은 ‘매트릭스’의 시뮬라시옹이나 ‘장자’의 ‘호접몽’이다. 눈으로 뒤덮인 미로는 미국 혹은 자본주의를 이루는 체제를 뜻한다. 기성세대인 잭이 그 체제 안에서 죽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대니는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을 편안하게 잠재우는 닥터 슬립이 된다. 누구나 죽음을 알지만 두려워한다. 그러나 대니는 그건 고통도, 끝도 아니라며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인도한다. 아브라는 “그들은 죽었지만 죽은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삶과 죽음에 대한 존재론은 꽤 심오하게 펼쳐진다.

현실 세계에서 산다는 건 지구라는 행성에서 혈액순환이 되는 몸을 한 채 땅을 밟고서 숨을 쉬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그건 3차원적 시각일 뿐 더 높은 차원의 존재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인터스텔라’), 아예 시공을 초월한, 즉 물질적 육체를 넘어선 초자연적 형태나 양태의 존재자의 가능성도 있다.

‘매트릭스’가 SF를 통해 던진 시뮬라크르의 존재론을 신비주의적으로 치환한 솜씨가 훌륭한 만큼 촘촘한 내러티브가 지닌 호러와 반전의 대미가 꽤 큰 재미를 보장한다. ‘샤이닝’을 예습하면 그 감흥과 서스펜스는 더욱 깊어질 듯. 돌아온 오버룩은 쌍둥이와 핏물의 엘리베이터까지 여전히 ‘살아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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