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문화지평’은 올 서울시 공익단체 지원사업으로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파인 칼럼=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1970년대 이전 연남동은 한강변 저습지로 비가 많이 오면 상습적으로 물이 잠기는 침수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토지이용은 주로 농지로 제한됐고 주거는 판자촌이 산재된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1966년 지금의 경의선 폐선부지 왼쪽 지역이 성산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되고 70년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신흥 주택지로 변모했다. 1975년 강변북로와 성산대교가 건설되고, 제방이 보수되면서 주택지로서 인기가 올라가면서 많은 중산층이 유입됐다.

지금의 경의선 폐선부지 오른쪽 지역은 원래 연희동 소속이었으나 1975년 연남동으로 행정구역 변화됐다. 1977년에는 동교동의 일부가 연남동에 편입됐다. 연남동은 1970년대에 접어든 이후에 정비된 지역이 많아 비교적 고급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70년대 이 지역에 화교들이 유입되면서 화교마을이 형성됐는데 이유는 명동 중국대사관에 있던 한국한성화교중고등학교(48년 개교)가 1969년 연희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1980년대 홍대 미대가 들어오고 1984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이 생기면서 서교동 주변이 상업화됐다. 이때 까지만도 연남동은 경의선으로 둘러싸여 폐쇄적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상업적 발전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러다가 2005년 경의선 용산선이 운행중단 되고 공원화가 진행되고 공항철도까지 개통되면서 급격한 공간변화가 이뤄졌다.

이 지역은 파주출판단지와 가까운 지리적 요건으로 출판업계가 유입됐고 공항철도 개통으로 외국인관광객 접근도가 좋아 게스트하우스 사업자들이 증가했다. 홍대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 여파로 인해 예술가들이 연남동으로 거점을 옮겼다. 그러나 연남동 역시 홍대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맞을 정도로 상업화가 가속됐다.

2015년 경의선숲길공원 개장하면서 급격한 변화

▲ 이희준 전통시장 도슨트가 연트럴파크의 생성과 이번 답사루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답사는 늦더위를 피하고 상점 문을 여는 시간을 감안해 야간에 진행했다. 그것도 불금에.

2015년 경의선숲길이 개장하면서 속도는 더욱 가속화 됐다. 서울시는 도시재생프로젝트 일환으로 경의선 폐선 부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경의선이 지닌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친환경, 주변 지역과의 네트워크, 주민 커뮤니티와의 연계 등을 고려해 계획됐다.

경의선 폐선을 이용한 선형(線型) 공원은 총 길이는 6.3km, 폭은 최소 10에서 최대 60m까지로 마포구와 용산구에 걸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개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가 후원하고 문화지평이 수행하는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7회차는 ‘연트럴파크 주변시장과 상업문화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했다.

지난 8월30일 늦더위가 남아 있는 터라 선선한 저녁 7시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입구에서 만나 경의선숲길 공원과 주변부를 이희준 전통시장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걸었다. 이 도슨트의 구어체 해설을 문어체로 바꿔 싣는다.

경의선 폐선부지 이용한 총 길이는 6.3km 선형공원

▲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맞닥트리는 첫 번째 구간을 부르는 별칭은 연트럴파크다. 미국의 센트럴파크에서 차용한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공원이자 문화공간이다. 한 점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연트럴파크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나와 맞닥트리는 첫 번째 구간을 부르는 별칭이다. 공원에 접어들면 공원에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다과를 먹고 버스킹 공연을 보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강남의 어느 동네와는 사뭇 다른 연남동이 이렇게 뜬지는 불과 4~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연남동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에는 시끌벅적한 홍대가 싫은 예술가나 소상공인이 찾아오는 동네 정도였으나 지금은 홍대 상권이 옮겨왔다고 할 만큼 활성화됐다. 연남동 거주 인구는 1만7000명 정도며, 그 중 외국인 비율이 10% 안팎이다. 외국인 중 일부는 화교들로 대만 국적이 많다. 연남동에 중식집이 많은 연유다.

과거 연남동 중식집에서는 짜장면보다 만두나 팔보채 같은 중식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었다. 여전히 만두만 파는 ‘하하’ 같은 중식집들 앞에는 길게 늘어서 있는 손님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연남동의 터줏대감이라 할 만한 태국음식점 ‘소이연남’과 베트남음식점 ‘Ahn’과 같은 이국적인 음식점들도 지역을 대표하는 소상공인들이다.

70년대 주택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연남방앗간’

▲ 연남방앗간 내부 모습. 1970년대 실내 장식과 가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은 참기름 편집숍과 참깨, 이천쌀을 이용한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경의선 숲길에서 만나 걷기 시작한 답사객들과 연남방앗간 앞에 멈췄다. 연남방앗간은 2018년 3월 오픈한 신생 상점으로 식문화 기반 동네 커뮤니티 공간을 표방하는 연남동 시그니처 점포다. 기본적으로 참기름 편집숍으로 운영되며 참기름이 들어간 음료 참깨라떼와 이천 쌀과 흑임자로 만든 젤라또, 참깨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다.

연남방앗간이 입주한 2층짜리 양옥주택은 1970년대 연남동, 연희동 일대 양옥주택의 전형적인 생활양식과 인테리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옛날 부를 상징했던 에어컨도 고풍스럽게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방문객을 맞는다. 실내 인테리어와 계단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단한 브라운색 목재가 고급스러움을 한껏 자아낸다.

무엇보다 마당의 감나무를 찾는 참새들은 이 곳이 방앗간임을 대변해 주는 듯 요란하게 짖어댄다. 잠시 방앗간을 둘러 본 후 경의선 숲길 두 번째 구간을 거닐다보면 첫 번째 구간에 비행 유동인구도 줄어들면서 생태환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에는 연남동 기반으로 성장한 커피 로스터리 ‘리브레’ 공장이 있다.

리브레 공장은 복면을 쓴 레슬러 간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위치에 있어 유심히 찾아야 한다. 리브레의 커피를 마시려면 이곳이 아닌 연남동 동진시장으로 가야한다. 길을 계속 걸으면 경의선 숲길 세 번째 구간으로 진입해 연남아파트와 마주하게 된다.

연남아파트는 원래 새마을아파트였다고 한다. 여러 차례 재개발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무산됐고 지금은 오래된 연식 때문에 조금은 불편하지만 외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빈티지 아파트로 남게 됐다.

바로 그 뒤에 자리잡은 곰팡이마트와 다이브인은 연남동의 또다른 커뮤니티의 정수를 보여준다. 곰팡이 마트는 강아지를 데려와도 좋은 ‘Gongrot’ 카페와 함께 치즈와 와인을 파는 마트로 연남동 로컬과의 상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이자 스테이와 예술가 레지던시가 공존하는 다이브인의 경우 다양한 예술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차근차근 연남동의 매력에 빠지다보면 1800년대 말, 1900년대 카메라를 소장하고 있고 카메라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하는 ‘앨리카메라’도 꼭 들려볼 곳이다. 문을 여는 시간이 짧으니 오픈과 마감시간을 잘 체크해 방문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어지는 골목에는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인 ‘툭툭누들타이’와 2030에게 시랑받는 카페인 ‘콩카페’와 ‘레이어드’ 등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연남동에서 가장 핫한 골목길이다.

연남동엔 실핏줄 같은 옛 골목도 살아있어

▲ 선형으로 발달된 경의선숲길공원과 핏줄같이 발달한 이면도로와 골목에 위치한 수많은 상가들이 연남동을 거대한 문화소비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큰길로만 다니지 말고 반드시 골목에 스며들어 보길 권한다. 새로운 문화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답사의 마무리 동진시장에 이르렀으나 시간이 늦어서 문이 닫혔다. 1970년대 시작된 동진시장은 참기름 방앗간 등 수 십여개 상점이 있던 정식 시장이었으나 90년대 말 신촌 인근에 백화점과 아울렛이 생기면서 경영이 날로 악화됐다. 자연스레 상인들이 시장을 하나 둘 떠나면서 지금은 떡집과 철물점만이 당시를 기억하는 상점으로 남아있다. 비어있던 시장은 2013년 이후 파머스마켓과 프리마켓 등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고 현재는 금, 토, 일요일에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경의선 숲길의 구간들 중 연남동 구간은 2015년 6월에 개장했다. 홍대입구역과 가좌역 사이로 인근 홍익대, 연세대, 서강대 세 개 대학상권의 영향과 서울 도심부라는 지리적 특성에 따른 유동인구 유입으로 인해 구간들 중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이다.

특히 연남동 구간이 위치한 연남동은 홍익대 영향력 아래 사업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2014년 기준 문화 사업체 수는 서울시 내 상위 7%, 음식 사업체 수는 상위 20%를 차지했다. 연남동은 단독형 건물(단독주택) 비율이 높아 상업화 과정이 손쉬웠고 이에 따라 많은 방문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지역 대표 시장이던 동진시장 끝으로 답사 마무리

▲ 1970년대 문을 연 동진시장은 참기름 방앗간 등 수 십여개 상점이 있던 정식 시장이었으나 90년대 말 신촌 인근에 백화점과 아울렛이 생기면서 경영이 날로 악화돼 지금은 프리마켓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남동 블로그 포스팅을 조사한 ‘경의선숲길 조성 전후의 연남동 방문자의 경험 분석 - 블로그 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최상위 순위(1위~5위) 키워드는 ‘식문화', ‘먹다', ‘보다', ‘찍다', '사진'이 1위부터 5위를 차지했다. 음식 문화와 먹스타그램의 문화가 지역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답사는 야간에 진행했는데 이유는 낮에는 문을 닫은 곳이 많고 8월말 늦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선형으로 발달된 경의선숲길공원과 핏줄같이 발달한 이면도로와 골목에 위치한 수많은 상가들이 연남동을 거대한 문화소비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비록 동진시장이 제 기능을 잃었지만 연트럴파크는 서울 시민 기억 속에 신구의 조화로움이 멋진 곳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인디밴드 ‘연남동덤앤더머’가 ‘연남동으로 놀러 오세요’라고 노래한다.

‘홍대는 시끄럽고 북적대서 힘들어요 10분만 걸어와요 한적한 우리 동네로 어서 오세요 연남동에요 연남동으로 놀러오세요 값싸고 맛있고 나도 있고 술도 있고 그간 지낸 얘기하며 밤 새워봐요 노래 불러 줄게요 놀러오세요’

▲ 이번 답사에는 월간 ‘전성기’에서 동행 취재를 했다. 전성기 10월호에 실린 문화지평 연남동 답사 소식

■ 코스

연트럴파크 입구(홍대역3번출구) - 연남방앗간 - 아트플라츠 - 커피로스터리 리브레- 연남아파트 - 곰팡이마트 - 다이브인연남 - 앨리스카메라 - 툭툭누들타이 - 흑심(누벨바그125) - 동진시장

<글=이희준 도슨트‧김범준 작가·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사진=권택상 사진작가>

[문화지평]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2016)
역사도시 서울답사(2017)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2019)
서울미래유산 시장 아카이빙(2019)
기업‧단체 인문역사답사 다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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