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 연출한 ‘캡티브 스테이트’는 지금까지의 SF와는 차원도, 스타일도 매우 다르다. 미래적 SF 블록버스터는 오직 흥행에 주안점을 두고 스케일을 키우거나(‘트랜스포머’), 꽤나 심오한 철학을 담고자 노력(‘엘리시움’)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양분된다.

그런 이분법으로 볼 때 이 영화는 무조건 후자 쪽이다. 로치라 불리는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한 지 10년. 그들은 전 국가의 정부와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자신들이 신정부를 꾸려 통치하고 있다. 각 국민들의 몸에 버그를 심어 신분을 확인하고 동선을 감시하며 통제하지만 저항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

저항군은 ‘일인자’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신정부와 그들에게 부역하는 경찰 등을 괴롭히며 활동 중이다. 리더 중 하나였던 라파엘은 수년 전 사망했다. 그의 동생 가브리엘은 죽은 아버지의 경찰 동료였던 시카고 필젠경찰서 특별수사국 감시과 국장 멀리건의 보살핌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멀리건은 가브리엘을 감시하는 것이었고 드디어 그가 라파엘을 만나는 것을 확인한다. 라파엘은 버그를 제거, 죽은 것으로 위장한 채 폐허가 된 위키파크를 거점으로 활동해왔다. 라파엘과 그의 동지들은 신정부에 부역하는 시카고 부시장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바쁘게 움직인다.

이를 눈치챈 멀리건도 시스템을 풀가동하지만 저항군의 작전은 성공하고, 총독이 신정부에 불려갈 만큼 심각해진다. 멀리건은 라파엘과 가브리엘을 검거한 뒤 라파엘의 생명을 담보로 가브리엘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고, 신정부는 외계로부터 헌터를 불러들여 대대적인 범인 색출에 나선다.

외계인 침략 SF라면 플롯이나 메시지는 다를지라도 대부분 막강한 외계인에 맞서 고군분투하거나 혹은 영웅이 등장함으로써 통쾌하게 무찌른다는 게 기둥 줄거리이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아예 지구가 외계인에 항복한 지 꽤 지난 상태에서 마치 나치 치하의 레지스탕스의 활동처럼 전개된다.

인류가 기계의 사냥감이 된 ‘터미네이터’, 지구보다 앞선 문명을 지녔지만 평화적인 외계인과 그들을 핍박하는 지구인을 대비시킨 ‘디스트릭트 9’보다 진일보한 플롯이 펼쳐진다. 식민지가 된 뒤 농산물 생산량은 늘고, 취업률은 높아졌으며, 범죄는 줄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는 유사 이래 최대치.

과거에 지구는 멸종을 피하려 항복을 했다. 현재 미국 동부 일대가 정전될 정도로 저항군의 ‘테러’가 심각해지자 미국은 계엄령을 선포한다. 경찰은 반대 세력을 색출해 지구 밖으로 방출하고 있다. 신정부는 지하세계에서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고, 공무원은 신정부에 충성하고자 국민을 억압한다.

과연 항복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게 올바로 사는 걸까? 외계인은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주의다. 중세의 스페인부터 영국, 독일, 그리고 현재의 미국을 은유한다. ‘디스트릭트 9’이나 ‘엘리시움’이 엿보이는 근거다. 이베리아반도 사람들은 현지 부역자의 도움 덕에 중남미를 파죽지세로 짓밟았다.

신정부는 통합과 화합을 통한 평화를 외치지만 그럴수록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질 뿐. 그들은 저항군의 행동을 테러와 내란 등으로 규정한다. 과연 이 체제는 누굴 위한 것일까? 저항군을 색출하겠다며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게 평화 유지일까?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통합이 있기나 한 걸까?

저항군들은 피닉스방화업체 이름의 신문 광고나 라디오 신청곡, 또는 특정 메시지를 통해 정보와 작전을 공유한다. 전파 교란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전서구까지 활용한다. 영화, 드라마, 광고 등 현대 미디어의 모든 콘텐츠에 이념이 담겼다는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이다.

과거에 라파엘과 가브리엘의 아버지는 외계인의 지배에서 도망치려다 사망했다. 그들은 흑인이다. 멀리건은 백인이고, 매춘업을 하는 수수께끼와 같은 여인 제인과 내연 관계를 맺고 있다. 멀리건이 나타나면 제인은 냇 킹 콜을 튼다. 2030년을 앞둔 때에 구닥다리 레코드로 한껏 분위기를 낸다.

그녀 집의 벽엔 트로이의 목마가 그려진 작은 액자가 걸려있다. 그녀도 멀리건도 “트로이의 목마를 조심해야 돼”라고 입을 모은다. 그녀는 외계인에게 부역하는 고위 공무원들에게 매춘 서비스를 제공하며 살고 있다. 멀리건은 지친 기색으로 그녀에게 “이제 이 일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푸념한다.

트로이의 목마가 주는 교훈은 ‘여자의 미모를 평가하지 말라’,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 등인데 가장 큰 건 ‘외부에서 영입한 존재에 의한 내부 붕괴 조심’이다. 오디세우스는 패전을 인정하고 철수한 척했고, 트로이는 승리감에 젖어 목마를 전리품으로 취하는 패착을 저지름으로써 멸망을 자처했다.

제인은 전직 역사 교사다. 그만큼 역사가 중요하다는 웅변. 여러 명에게 반전을 심어놓았기에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서스펜스를 즐기는 장점을 갖췄다. 설명을 절제한 게 불친절하게 느껴질 만큼 스피디하게 전개되지만 시퀀스가 넘어가면 금세 이해가 된다. 매우 영리한 연출 솜씨다.

음악과 음향 효과가 연출에 방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릴러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저항군들이 약에 취한 듯, 귀신에 홀린 듯, 몽롱한 건 아마 지난 9년의 자유 박탈의 후유증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는 테제는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의 역사다.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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