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09년 루벤 플레셔 감독은 우디 해럴슨(탤러해시), 제시 아이젠버그(콜럼버스), 엠마 스톤(위치타), 아비게일 브레스린(리틀록) 등을 주연으로 해 좀비를 소재로 한 기존 작품들을 패러디하며, 케케묵은 관념을 뒤집고 조롱하는 메시지를 담은 ‘좀비랜드’를 연출해 흥행과 호평의 2마리 토끼를 잡았다.

좀비의 창궐로 인해 인류가 망하자 은둔형 청년 콜럼버스가 부모를 만나러 동쪽으로 가다 터프한 중년남자 탤러해시를 만나 친구가 되고, 사기꾼 자매 위치타와 리틀록과 악연 끝에 좀비와의 놀이공원 혈투를 통해 가족이 된다. 10년 후 능숙한 좀비 사냥꾼이 된 그들은 텅 빈 백악관에 입성했다.

어느 날 작심한 콜럼버스는 위치타에게 반지를 주며 프러포즈하지만 다음날 자매는 메모 한 장만 남긴 채 탤러해시의 비스트를 타고 떠난다. 아들을 잃은 미혼부였던 탤러해시는 리틀록을 친딸처럼 아꼈고 콜럼버스는 위치타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다. 그들은 외로움과 무료함을 쇼핑으로 달래본다.

콜럼버스는 쇼핑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리틀록 또래쯤 되는 메디슨과 연인 관계가 되고 그런 일상이 한 달쯤 지났을 때 위치타가 백악관으로 되돌아온다. 그레이스랜드로 가던 중 히치하이킹으로 버클리란 평화주의자 기타리스트를 태워줬는데 그에게 홀린 리틀록이 자신을 버리고 그와 내뺐다는 것.

리틀록을 찾자는 한뜻으로 다시 가족이 된 3명과 그 사이에 애매하게 낀 메디슨까지 4명이 길을 나선다. 낡아빠진 미니밴이 마음에 안 드는 탤러해시가 멋진 버스를 발견하고 그걸 차지하기 위해 좀비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 후 이동하던 중 메디슨의 얼굴이 변하자 콜럼버스가 처리를 맡는데.

전편이 코믹한 패러디를 통해 답답하게 꽉 막힌 세상을 조롱하는 블랙코미디로서 빌 머레이를 키워드로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밥 딜런이다. 버클리는 인류의 목숨을 노리는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무기 없이 달랑 기타 하나 메고 비폭력 평화주의를 외치며 간디 흉내를 낸다.

그는 리틀록에게 뻔뻔하게도 자신이 작곡했다고 밥 딜런의 노래를 들려주며 바빌론으로 데려간다. 바빌론 사람들은 영역 내 총기 반입과 집단 섹스를 엄금한다. 총기는 녹여 피스 심벌 펜던트를 만든다. 하지만 버클리가 사기꾼이었듯 바빌론 사람들은 독아론적이어서 결국 좀비 떼의 공격을 받는다.

BC 6세기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지었다. 아직도 불가사의인데 신의 권위에 도전해 너무 높게 올렸기에 저주받아 파괴됐다는 전설이 있다. 이 작품의 바빌론과 초고층 건물의 하늘정원은 그런 메타포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밥 딜런은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데 대해 비난하고 반대하는 반전운동에 앞장선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좀비가 없던 시절이고, 영화 속 현실은 좀비가 인류를 멸절시키기 일보 직전이다. 버클리의 기타는 이 영화는 팀 버튼의 ‘화성침공’(막강한 화성인을 음악으로 물리침)이 아니라는 유머다.

섣부른 환원주의나 낭만주의로 이상주의를 운운할 때가 아니라는 상징이다. 버클리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흑인을 등쳐먹은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지만 탤러해시는 ‘킹’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엘비스는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를 섞은 로큰롤로 대중음악계의 천하통일을 이룩한 왕 중의 왕이다.

하도 골반을 심하게 흔드는 바람에 점잔을 빼던 기성세대가 차마 TV를 볼 수 없다는 불평을 해대자 방송사가 그의 상체만 찍어야 했을 정도로 ‘꼰대’들에게 주먹감자를 제대로 먹인 혁명가다. 대학도 안 나온 트럭 운전사 출신이지만 지구촌의 우상이었고, 전성기 때 당당하게 군에 입대한 애국자였다.

버클리는 현실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낭만적 관념론에 젖은 우물 안 개구리고, 탤러해시는 살벌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깨달은 경험론자다. 탤러해시는 콜럼버스에게 “메디슨이 왜 생존한지 아니? 뇌가 없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그래서 메디슨은 버클리와 연인이 된다.

탤러해시는 자주 자기 조상이 북미 원주민 검은발족이라고 주장한다. 플롯에 집중한다면 우디 해럴슨이 라틴족처럼 보이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엘비스가 ‘흑인 음악을 훔친 백인’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 해소에 공헌한 것과 마이클 잭슨이 유사한 화합의 역할을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좀비들이 퇴화 혹은 진화됐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심슨네 가족들’의 호머 심슨에서 착안한 호머족은 바보고, 스티븐 호킹에서 이름을 딴 호킹족은 똑똑한 좀비다. 닌자족은 이름처럼 신출귀몰하고, 터미네이터 초기 모델과 우사인 볼트에서 이름을 빌린 T-800은 죽여도 죽지 않는 강력 돌연변이다.

인트로의 슬로모션 전쟁 시퀀스는 전편의 고어 스타일을, 바빌론의 T-800과의 전쟁은 전편의 놀이공원 시퀀스를 각각 뛰어넘는 큰 스케일로 뻗어나간다. ‘작은 것들을 즐겨라’라는 숨 쉴 때 즐기자는 테제는 탤러해시 등 모든 주인공들에게 확장돼 디스토피아에서의 유토피아라는 희망을 던진다.

탤러해시의 기대와 달리 그레이스랜드가 엘비스의 자취가 사라진 폐허로 변했지만 허름한 하운드독 호텔이 그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꿩 대신의 닭 역할을 하는 것도. 전편처럼 결론은 가족이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친구(가족)”라는 대사다. 제이슨 스타뎀 영화 이상의 아드레날린! 1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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