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3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으로 인한 직무 수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콘클라베가 소집됐다. 다섯 차례의 투표 끝에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3분의 2의 표를 얻어 교황으로 선출되며 이름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빌렸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유명한 거장 빔 벤더스가 연출한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5년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결코 포교하려 들지 않는다. 교황은 인터뷰에서 대놓고 “상대방을 개종시키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교황이 전 세계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촛불에 점등하는 의식을 갖는 시퀀스가 등장한다. 2014년 3월 미국의 유력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 중 1위에 그가 오른 이유가 납득이 가는 장면이다. 가장 권위 있는 위치에 올랐지만 가장 권위를 거부하는 지도자.

산호세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료한 뒤 대학원과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한 학자답게 영화는 그의 철학적 신념으로 그득하다. 그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박한 삶으로 유명하다. 전임자들이 사도 궁전에 거주했던 것과 달리 성녀 마르타 호텔을 자신의 거주지로 선택한 게 대표적인 예.

교황에 선출될 때 전임자들이 전통적으로 착용했던 붉은색 교황용 모제타를 입지 않았으며, 전례를 집전할 때에도 화려한 장식이 없는 소박한 제의를 입었다. 또 순금의 어부의 반지는 도금한 은반지로 교체했으며 목에 거는 가슴 십자가는 추기경 때부터 착용했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고수한다.

그가 대놓고 존경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무소유와 자연 그 자체다. 1811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태어나 1226년 선종한 그는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청빈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을 찬양하고 자연과 동물 등을 보호하는 삶이다.

교황 역시 검소함과 환경보호를 전면에 내세운다. 또한 그는 용기, 겸손, 공동선, 자연법칙, 조화, 자유, 사랑, 말하기보다 듣기, 겸손, 유머 등을 강조한다. 거듭 반복하지만 포교 영화가 아니다.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보람되고, 후회가 없을 것이며, 미래의 지구와 인류에 도움이 될지를 밝힌다.

자유는 제일 중요하다. 그는 심지어 하느님을 믿지 않을 자유까지 있다고 도발한다. 사람이 선택한 가장 아름다운 자유는 사랑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십자군 원정 때 이집트 술탄을 만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화합을 시도했던 것처럼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갈등과 대립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기자가 동성애자에 대해 묻자 그는 “제가 감히 뭐라고 재단하겠습니까?”라며 가톨릭의 기존 입장과 다른 대답을 낸다. 동성애 자체를 평가할 수 없고 그 어떤 종류의 사람일지라도 사람 자체를 미워할 수 없다는 우문현답이다. 이토록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이가 있을까? 매우 진보적인 사제다.

그는 태풍,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보다 더 끔찍한 건 우리가 만든 재앙, 즉 환경 파괴라고 주장한다. 수시로 동식물이 멸종하고, 쓰레기가 섬을 이루며, 바다에는 각종 쓰레기가 해양생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80억 명의 인구 중 10억 명이 굶주린 것만큼 생태계가 교란되는 건 심각한 위기라는 것.

그는 이 위기 상황에서의 답을 오직 한 사람, 성 프란치스코가 가졌다고 설득한다. 공동선을 위해 헌신하고, 형제자매로서 모든 사람들을 포옹하며,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주라고 당부한다. 그가 교황으로서의 각종 혜택을 포기한 이유는 가난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의 수치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조금 가난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또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가난한 교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이 살벌한 자본주의 앞에서 그는 “한꺼번에 둘을 섬길 수 없다”며 “하느님이냐, 돈이냐”의 선택을 묻는다. 또 교회에 돈에 굴복하는 자가 있다고 경고한다.

재물을 탐하는 교회엔 예수가 없다고 선언한다.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자선과 자비를 강조하고 가난은 복음의 중심에 있다며 아프리카의 기아와 중동의 난민 사태를 어루만진다. 부패가 판을 치는 세상의 소비지상주의를 비판하며 모든 인류는 이 시대의 비극에 침묵해선 안 된다고 행동을 독려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경고는 확실하다.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은 부가 상위 20%에 편중돼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황금률을 강조한다. “나는 가난이라는 여인과 결혼할 것”이라던 성 프란치스코처럼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기저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선 스콜라 철학을 초월한 자연법칙의 순리가 엿보인다. 그는 획일성은 발전이 없다며 다름의 문제를 긍정적인 차원에서 진화시킬 것을 유도한다. 이 얼마나 열린 사고인가? 그의 하느님에게선 자연법의 그림자가 강하게 비친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통한 조화로운 삶이 신의 섭리라는 교리?

교황의 발자취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흑백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행적을 연출한 미장아빔(영화 속의 영화) 형식으로 펼쳐진다. 결코 교황의 아포테오시스(신격화)는 없다. 병자와 죄수의 세족식을 해주고 거기에 입을 맞추는 겸허한 인류의 친구를 그린 우아한 드라마일 뿐. 2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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