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순영(조은지)은 서울 유학 중 사귄 재구(박용우)와 결혼해 경남 사천에 귀향, 아버지의 땅에 카센터를 차려 산다. 국도변의 카센터는 인근의 리조트 공사 현장에 대형 트럭이 오가는 바람에 수입이 최악인 데다 환경마저 안 좋다. 이에 화난 재구는 공사 현장으로 달려가 대표이사 예리에게 어필한다.

순영에게 흑심을 품었던 문 사장은 그녀와 결혼해 나타난 데다 자신처럼 카센터를 운영하는 재구에게 수시로 시비를 건다. 그는 이종사촌동생인 박 순경의 공권력을 등에 업고 뭔가를 꾸미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관광차 내려온 연인 커플이 차바퀴에 펑크가 났다고 카센터를 찾아온다.

공사 현장을 오가는 대형 트럭에서 작은 철제 부품들이 떨어져 도로 위에 나뒹구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재구는 한밤에 도로를 뒤져 철제 부품들을 수거한 뒤 낮에 날카롭게 가공해 밤에 다시 도로 위에 깐다. 구청의 임 과장도 차에 펑크가 나 카센터를 찾아온다.

계획적으로 도로에 금속 조각을 뿌려 타이어 펑크를 유도하자 펑크 난 차들이 카센터에 줄을 서면서 재구는 떼돈을 벌게 된다. 남편의 수상한 영업을 알게 된 순영은 처음에는 말리지만 돈이 점점 쌓이자 외려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앞장서더니 아예 금속을 도로에 고정시키자고 제안한다.

예리의 외동딸이 유괴된다. 경찰은 박사인 예리의 남편보단 사업가인 예리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의심된다며 예리를 조사한 끝에 재구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는 얼마 전 공사 현장에서 행패를 부린 적이 있고, 최근 갑자기 씀씀이가 늘었으며, 밤에 도로를 헤매는 등 행적이 수상쩍기 때문이다.

블랙코미디를 지향하는 ‘카센타’(하윤재 감독)는 ‘기생충’처럼 웃기지만은 않다. 외려 가슴이 서늘할 만큼 실감 나는 현실을 반영했기에 마음이 쓸쓸해지다 못해 아리다. 주인공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인간 군상의 미시화 혹은 대상화다. 재구는 전형적인 도시가 배출한 경제적으로 실패한 ‘루저’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옛말은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니 서울에서 태어나면 더욱 유리한 게 당연하다. 그러나 ‘금수저’로 태어나느냐, ‘흙수저’로 태어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재구는 숱한 ‘흙수저’ 중의 하나일 뿐 서울 태생이란 어드밴티지는 없다.

순영은 시골에선 나름대로 ‘퀸카’니 서울에 가면 뭔가 경쟁력이 있을까 싶었지만 서울 태생이면서 서울에서 생존하지 못한 재구와 결혼해야 할 만큼 그녀 역시 변방에 불과했다. 친정아버지와 오빠는 순영에게 시세 3000만 원인 카센터 가격을 7000만 원을 부르고 재구는 모른 척하고 그 돈을 준다.

친정아버지와 오빠처럼 문 사장과 박 순경은 전형적인 텃세형이다. 외지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토착민들만의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한다. 이는 언제부턴가 웰빙 바람을 타고 귀촌이 유행처럼 번지지만 실제로 행복하게 시골에 정착한 도시인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 냉정한 교훈이다.

그렇다고 문 사장이나 박 순경을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다. 예리와 임 과장, 그리고 일부러 이곳 파출소를 자원한 민 소장 같은 이도 있다. 재구와 순영이 ‘기생충’의 기택 가족이라면 예리는 동익 가족이다. 현행법을 잘 이용해 순진한 시골 사람들을 속여 난개발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녀는 벤츠가 펑크 나자 카센터를 찾는다. 그녀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재구는 수리 못하겠다고 하지만 돈에 눈먼 순영의 눈 흘김에 마지못해 처리한 뒤 무려 260만 원을 청구한다. 예리는 급한 업무를 눈앞에 둔지라 지불하며 “너희들이 그렇게 사니까 평생 그 꼬락서니인 거야”라고 독설을 한다.

임 과장은 ‘짠밥’이 꽤 된 공무원이다. 그의 승용차 트렁크엔 현금 다발이 넘친다. 이른바 정기적으로 ‘나와바리’에 수금을 다니는 것이다. 재구가 “타이어 교체 값이 16만 원인데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니 15만 원만 받겠다”고 하자 20만 원을 준다. 아마 그날 예상외로 수금 실적이 좋았을 것이다.

민 소장은 박 순경 등보다 젊다. 이른바 경찰로서 엘리트 과정을 밟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예리 딸의 유괴 혐의로 경찰서로 연행됐다 무혐의로 풀려나는 재구를 발견하고 자기 승용차에 태워준다. 자신도 텃세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동병상련을 위로하더니 갑자기 돌변해 나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불법으로 펑크를 유도해 돈을 버는 재구 부부는 자본주의를 견뎌내기 힘든 생계형 범죄자의 은유다. 하긴 문 사장을 비롯해 등장인물 모두 합법적이고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한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왠지 어두운 구석을 지니고 있다. 트럭은 자본주의를 지키느라 서민을 위협하는 각종 위험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아끼느라 국도를 달리는 트럭의 크고 단단한 바퀴는 금속 조각을 튕기지만 다른 차량들은 펑크가 나게 만든다. 예리가 인형 1개의 눈을 붙이면 5원을 번다는 순영에게 1만 원을 주며 오늘은 쉬라고 하는 시퀀스는 노동력의 가치보다 생산 수단이 우위에 놓인 자본주의를 뜻한다.

간판의 ‘빵꾸 환영’은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자본주의의 비뚤어진 단면이다. 원래의 순영의 헝클어진 머리는 돈을 벌면서 파마 스타일로, 다시 깔끔한 스트레이트 단발로 변한다. 시골의 자연스러움이 촌스러운 것이고, 정형화된 도시 스타일이 정상인 것으로 간주된다는 환유다.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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