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초천 따라 걷다 삼개나루로 가자 [문화지평 답사기]

문화지평l승인2019.11.14l수정2019.11.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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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문화지평’은 올 서울시 공익단체 지원사업으로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파인 칼럼=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만초천(蔓草川). 무악재(길마재)에서 발원해 서대문사거리, 서울역, 서부역, 청파로, 원효로를 따라 흐르다 원효대교 밑에서 한강과 합수된다. 만초는 넝쿨이 무성한 풀을 말한다. 과거에는 천변에 풀이 덩굴째로 무성히 자라 일명 넝쿨내라고도 불렀다.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 9회 차는 지난 10월 5일 서대문독립공원에서부터 마포종점 노래비가 서 있는 데까지 ‘끝장답사’를 했다. 끝장답사는 문화지평이 답사팀의 역사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6시간 이상 걸으면서 해설을 듣는 것이다. 이는 해설사의 역량과 희생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번 답사 해설을 맡은 전상봉 역사문화해설사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를 오랫동안 맡으면서 서울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성백제 분야도 전문가면서 강남 개발사를 정리한 ‘강남을 읽다’를 펴낸 대표적인 도시연구가기도 하다. 이번 끝장답사는 전 해설사가 제안한 것이다.

순국정신 깃든 ‘서대문독립공원’서 끝장답사 출발

▲ 서대문역사공원 순국선열추념탑 앞에서 문화지평 회원들이 끝장답사 출발 전 단체사진을 찍었다.

서대문독립공원은 지금은 역사관으로 바뀐 서대문형무소가 있던 권역이다. 이 곳에는 순국선열추념탑, 서재필 선생 동상, 독립관(순국선열 위패봉안소), 3·1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이진아 기념도서관 등이 들어섰거나 인접해 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사신을 맞이했던 모화관을 복원한 것이다. 내부에는 순국선열 위패 2327위를 모셨기 때문에 독립관이란 현판 앞에 별도로 현충사 현판을 걸었다.

전 해설사는 준비한 수선전도(首善全圖)를 펴쳐서 해설을 시작했다. 수선은 서울을 뜻한다. 수선전도는 서울시 지도인 셈이다. 대동여지도로 유명한 고산자 김정호가 1840년 대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전 해설사는 지도에서 만초천 위치를 짚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만초천은 총길이 7.7㎞로 1967년 이후 복개가 시작돼 지금은 물줄기를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청계천만큼 인지도는 없지만 과거에는 용산팔경 중 하나로 경치가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만초천 물길따라 형성된 영천시장에 들어서자 꽈배기를 파는 점포가 눈에 띈다. 각종 TV프로그램에 앞 다퉈 소개되면서 시장 명소가 됐다. 싸고 푸짐해서 간식으로 제격이다. 이날 답사팀도 꽈배기를 하나씩 입에 물었다. 주전부리가 즐비한 시장 답사의 묘미다.

영천시장은 196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만초천 주변에 있던 조그만 노점이나 점포가 복개 이후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1년 3월 인정시장으로 등록됐고 원래는 떡 도매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일반시장, 근린상권시장, 소형시장 등의 시장 특성을 갖고 있다. 떡이 많이 팔린 이유는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때문이었다는 속설이 있다. 현재 점포 70여개, 노점 60여 개 등 130여개가 공존하고 있다. 석교식당, 원조떡볶이, 달인꽈배기 등이 유명하다. 영천시장 중간 골목을 통해 석교교회로 향했다.

꽈배기‧원조떡볶이 먹거리 유명한 영천시장

▲ 달인꽈배기 등 영천시장내 꽈배기 집은 각종 TV프로그램에 앞 다퉈 소개되면서 시장 명소가 됐다.

석교교회는 1916년 세워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강당식 평면형식을 가진 고딕양식을 양호하게 보존했기 때문에 지정됐다. 1층 회당 입구 첨두아치(Pointed Arch)에서 우수한 벽돌 조적 디테일을 보여준다. 교회는 원래 한옥을 예배당으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늘어나는 신도로 인해 예배당 건립이 필요하게 되자 미국에서 헌금을 모아 벽돌 교회를 지었다.

석교교회는 감리교인데 우리나라에 이 교단이 들어온 것은 1884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있던 해이다. 최초 감리교회는 1987년 문을 연 정동교회 벧엘예배당이다. 대표적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었다.

석교교회를 빠져나와 서울금화초등학교 앞에 이르러 답사팀은 발길을 세웠다. 경기중군영터, 청수관 터 표지석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중군영은 조선 후기 경기 순영에 지휘관인 중군이 있었던 곳이다. 청수관은 도성 밖 서지(西池) 서쪽가에 있던 정자다. 18세기 중엽 세워진 경기 감영 부속 건물로 사용됐던 곳이다. 1880년에는 일본의 하나부사가 이곳을 영사관으로 삼아 최초의 외국 공관으로 기록된다. 1882년 화재로 소실됐다.

▲ 우수한 벽돌 조적 디테일을 보여주는 석교교회 1층 회당 입구 첨두아치(Pointed Arch).

농협중앙회와 이화여자외국어고 사이에는 ‘서대문 정거장’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조선시대는 중국과의 관계가 현재 한·미관계만큼 중요했다. 한양에서 중국을 가기 위한 교통 요지가 바로 서대문과 의주로였다. 중국 사신이 들어오던 영은문이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서대문 정거장은 경인선 철도가 처음 개통됐을 때 시발역이 됐다. 경인선은 우리나라 최초 철도로 1899년 9월 노량진과 인천 구간이 개통됐다. 1900년 한강철교가 생기면서 서울까지 연결됐다.

역전에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가 있기 마련이다. 서대문 정거장 앞에도 정거장호텔(스테이션호텔)이 1901년 문을 열었다. 주인이 영국인 엠벌리에서 프랑스인 마르텡으로 바뀌면서 애스터하우스(Astor House)로 거듭났다. 정거장호텔 개업 직후 한 미국인 사진작가가 호텔을 방문해 찍은 사진을 보면 기와집 뒤쪽에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나무가 지금 이화여자외국어고 정문 앞에 있는 회화나무다. 위치를 보면 아마도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이식(移植)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지 지분 없어 개발 어려운 서대문아파트

▲ 만초천 물길 위 복개 터에 지어서 대지 지분이 없는 서대문아파트. 개발이 어려운 이유다. 물길 따라 곡선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

물은 곧게 흐르지 않는다. 만초천도 구불구불 완만한 물길을 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위에 지어진 집들의 위치와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소문아파트는 마치 하얏트호텔 모양으로 곡선 형태로 지어졌다. 물길을 복개하고 그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지지분이 없다. 새로 허물고 신축하기 어려운 이유다. 2013년 서울시가 미래유산 지정을 추진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홍제천 물길 위에 지어진 유진상가, 도로 위의 낙원상가 등이 대지지분이 없는 대표적인 대형 건물이다.

서대문아파트서 서소문고가도로 아래를 통해 서소문역사공원에 다다랐다. 신유년, 기해년, 병인년 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2016년 답사 때 사방이 펜스로 둘러싸인 채 공사 중이었으나 이번 답사 때에는 완전히 개방됐다.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이 있는 이곳은 바티칸 교황으로부터 천주교 성지로 인정받았다. 천주교인을 박해하기 이전 조선 초기부터 죄인을 참수하는 형장으로 사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서대문 일대는 조선시대 풍수설에 따라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어서 죄인 처형장으로 이용되고 감옥이 설치되기도 했다. 특히 사람들 왕래가 잡은 곳에서 경각심을 주기 위한 처형이 이뤄졌다. 성삼문, 허균 등이 이 언저리에서 처형됐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된 곳이다. 끝장답사의 절반이 마무리 됐다. 서소문역사공원 인근 식당서 중식으로 배를 채운 답사팀은 만초천 물길이 흐르는 서울역 쪽이 아닌 삼개나루(마포나루)로 발길을 틀었다.

신유박해 등 천주교 순교 기린 서소문역사공원

▲ 서소문역사공원에 있는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 1801년 신유박해 이래 1871년까지 수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곳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충정로역 주변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라고 불리는 1932년 지어진 충정아파트, 1900년대 초기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의 충정각, 1892년 세워진 약현성당(사적 제252호), 1940년 개교한 미동초등학교 등 수많은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많다.

충정아파트의 경우 증축을 하면서 대지 지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개발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정각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충정각 인근에는 1906년 설립된 이명래 고약(명래제약)이 있던 자리다.

답사팀은 아현동 가구거리를 지나 충정로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애오개를 넘었다. 애오개란 이름 유래는 인근 만리재에 비해 고개가 아이처럼 작다는 뜻의 아이고개가 변한 것이라는 설과 옛날 도성에서 어린아이가 죽으면 서소문을 통해 이 고개 밖에 묻혀서 ‘아이고개’라고 했다는 등 분분하다. 이화여대 부근이 과거 대현(大峴)이란 지명으로 불렸기 때문이란 설도 한몫 거들면서 실체가 불분명하다. 애오개를 넘자마자 아현중학교가 나온다. 이 자리는 조선시대 가난한 전염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도성 밖 서쪽에 설치했던 의료기관 ‘서(西)활인서’ 터다.

답사팀이 본격적으로 접어든 마포대로는 교통이 발달하기 전 도성에서 남대문을 지나 삼개(마포)나루로 가는 길이다. 현재는 마포대교 북단부터 아현교차로까지 길이 2.8km를 말한다. 마포대로는 과거 ‘귀빈로’라는 별명이 있다. 서울시는 카터 대통령 방한 전인 1979년 5월 공항에서 여의도, 서울대교(지금의 마포대교), 마포로, 서소문, 시청 간 총연장 20㎞에 달하는 길을 귀빈로라 명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많은 한국정교회…2004년 한국대교구로 독립

▲ 교구 역사와 교회 터 문제 등 우여곡절이 많은 한국정교회의 성 니콜라스성당. 고생창연한 돔 지붕과 교회내부 성화가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마포대로를 걷다가 마포트라팰리스 2차 길 건너편 언덕바지에는 고색창연한 돔 지붕을 가진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보인다. 박인곤 요한 보제가 갑자기 들이 닥친 답사팀을 위해 친절하게 정교회에 대해 설명했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한국정교회 한국 관구의 중심이 되는 교회로 1903년 고종이 하사한 정동 땅에 축성한 것을 1968년에 지금 장소로 옮겨 신축한 것이다.

한국정교회는 1899년 대한제국에 진주해 있던 러시아군과 러시아 외교관들을 위해 러시아정교회에서 신부를 파견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과 한국전쟁 등으로 한국정교회는 그리스정교회 산하로 소속이 바뀐 뒤 뉴질랜드 그리스정교회 대주교청 관할기를 거쳐 2004년 6월 한국 대교구로 독립했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1968년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비잔틴 양식의 국내 유일의 정교회 성당으로 종교사적, 건축사적 보존 가치가 높은 종교시설물이다. 정동에서 지금 자리로 이전한 원인은 고종이 하사한 땅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수탈당하고 해방 후에는 정부에 귀속됐기 때문이다. 교회는 정부와 부지반환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하지만 막대한 소송비용 때문에 정동 부지를 팔고 지금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이다. 비잔틴양식의 그리스십자형 교회건축물로 내부의 벽화 장식 등이 훼손 없이 잘 보존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는 ‘독립운동유적지’ 표지석이 있다. 이 곳은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경성형무소가 있던 자리다. 인근 삼성마포아파트 자리는 경성감옥에 수감 중이던 죄수들을 데려다 노역을 시킨 연와공장이 있던 터다. 삼성마포아파트는 국내 최초 단지형 아파트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옛 신민당사터를 알리는 삼각형 표지판에는 YH무역 노동자 김경숙이 경찰 진압과정에 사망한 사실이 적혀 있다. 삼각형 인권 표지판은 국가폭력을 의미한다.

옛 신민당사가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SK허브그린 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 빌딩 앞 인도에는 신민당사 터 황동표지판이 박혀 있다. 삼각형 표지판에는 ‘1979. 8. 11 야당 당사에서 농성하던 YH무역 노동자 김경숙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삼각형 표지판은 국가폭력을 의미한다. 원형은 시민저항, 사각형은 제도 내 폭력이란 의미로 인권과 관련된 표지판이다.

공덕역 사거리 마포롯데캐슬아파트 모퉁이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자신의 별장인 아소당(我笑堂) 인근에 설치했던 ‘공덕리 금표’ 비석이 있다. 아소당은 대원군이 권력 무상을 스스로 비웃으면서 지은 이름이다. 공덕리 금표에는 아소당에 120보 내 접근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포종점 노래비에서 ‘끝장답사’ 종료…불꽃놀이 관람

▲ 담당정 터 인근에서 바라 본 한강. 전망이 좋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답사팀은 마포내로 남단 한강변에 이르러 강변한신코어, 마포타워를 끼고 옛 담담정 터에 올랐다. 담당정이 있던 곳을 알리는 표지석은 마포동 419번지 벽산빌라 앞에 있다. 담담정은 조선 초 안평대군이 지은 정자였다. 세조 때는 신숙주)의 별장이 됐다. 후일 이 곳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해방 후 귀국해 잠시 머물렀던 마포장이 지어졌다. 이날은 마침 서울세계불꽃축제 마지막 날인 관계로 한강 조망이 좋은 근처 식당들이 예약으로 꽉 찼다.

마포종점 노래비가 있는 마포어린이공원에서 답사 마무리를 했다. 점심시간 포함 6시간의 대장정이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답사팀 일부는 이른 저녁 식사를 한 후 마포에 남아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그것도 답사 때 봐둔 명당지에서. 내년에도 불꽃놀이를 하는 시기에 답사를 계획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9회차 답사를 마무리했다.

■ 코스

서대문독립공원(독립문역 4번 출구) - 서대문형무소 - 영천시장 - 석교교회 - 금화초등학교(청수관 터, 경기중군영) - 농협중앙회(서대문정거장) - 서소문아파트 - 서소문역사공원 - 충정각 - 애오개 - 아현중학교(서활인서 터) - 한국정교회 성니콜라스대성당 - 서부지법(경성형무소) - 공덕리금표 - 아소당 - 신민당사터 - 마포삼성아파트 - 담담정 터 - 마포종점

<글=김범준 작가·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사진=권택상 사진작가>

[문화지평]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2016)
역사도시 서울답사(2017)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2019)
서울미래유산 시장 아카이빙(2019)
기업‧단체 인문역사답사 다수 진행

문화지평  moonwhajipy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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