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아날로그에 담긴 가족과 소통의 소중함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1.19l수정2019.11.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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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집 이야기’(박제범 감독)는 이 쓸쓸한 겨울의 도입부에서 집 혹은 안식처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영화다. 더불어 가족이란 마음의 고향을 돌아보게 만드는 가슴 울컥한 동화다. 도대체 사는 게 뭔지도 모를 만큼 바쁘거나 부산하게 사는 이 삶 속에서 집과 그 집을 구성하는 가족의 의미를 질문한다.

인천이 고향인 열쇠 기술자 진철(강신일)은 미자와 결혼해 은주와 은서(이유영) 자매를 낳고 아파트 한 채 장만하자는 일념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작은 단독주택 하나 겨우 샀다. 진철의 특이한 성격 탓에 미자와 은주는 아예 등을 돌렸고, 신문사 편집기자가 돼 서울로 간 은서만 가끔 연락을 한다.

셋방을 전전하던 은서는 계약 만료일이 다가와 또 이사를 준비하는데 이번엔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힘들다. 만약을 대비해 레지던스까지 봐둔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귀가했는데 열쇠를 깜빡 잊었다. 할 수 없이 오랜만에 아빠에게 도움을 청한다. 새 집을 구할 때까지 아빠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익산에 사는 은주는 벌써 셋째를 가졌고 오매불망 그리던 아파트를 장만했다. 미자는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 재혼해 제주도의 바다가 보이는 단독주택에 정착했다. 은서는 궁상맞게 사는 아빠가 짜증 나고, 아빠는 휴일에 데이트 하나 없는 서른 살 딸이 답답하지만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단절과 소통, 부유와 정착 등의 이분법적 대립 혹은 이원론이 뼈대다. 모든 문의 잠금장치가 디지털 도어록 방식으로 바뀌고, 모든 사람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는 시대에 24시 출장 열쇠 기술자와 신문 편집기자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사는 집은 50년은 족히 넘었음직하다.

빛 바랜 종이 달력, 486 컴퓨터, 열쇠와 자물쇠, 낡은 가구 등 아날로그 오브제들로 가득한 진철의 집은 쓸쓸하고 서늘해 보인다. 심지어 그의 방엔 창문이 없다. 진철이 먼저 다시 안 볼 것처럼 은주를 내쳤기에 은주는 아빠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고 진철 역시 그녀가 서운해 없는 셈 치고 살았다.

하지만 혈연이란 게 어디 그럴 수 있나? 진철은 은서에게 온 소포에서 은주의 주소를 발견하고 몰래 익산에 갔지만 먼발치서 아파트를 쳐다보기만 했을 뿐 초인종을 누를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다. 은서는 “마음만 먹으면 왜 못 들어가”라고 타박하고, 진철은 “내가 도둑이야?”라고 궁색하게 항변한다.

은서는 다시 “도둑도 아닌데 못 들어가니까 하는 소리지”라고 아빠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렇다. 진철은 자신의 집(마음속)에서 미자와 은주를 대놓고 몰아냈고, 그런 진철을 보고 은서 역시 자신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미리 집을 나왔다. 진철의 가슴은 텅텅 비어 차가운 삭풍만 몰아칠 뿐이다.

아이러니다. 진철은 다른 집 문을 여는 건 귀신이지만 자신의 마음의 문은 꽁꽁 닫아놓고 열 줄을 모른다. 그는 은서가 당분간 자신의 집에서 머물겠다고 하자 대청소를 하고 분홍색 타월도 새로 장만한다. 모처럼 오랜만에 은서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갈아 넣은 배추김치를 담그는 호사도 누려본다.

이삿날 따뜻한 밥을 짓고, 찌개도 끓였더니 은서는 덜컥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킨다. 튀김에 녹말 국물을 부으려니까 은서는 그냥 찍어 먹자고 한다. 세대 차이가 아니라 세계 차이다. 사는 세상이 다르다 보니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에 차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통합하는 건 아날로그 정서다.

가만히 아빠의 솜씨를 지켜보던 은서는 그 실력에 감탄하며 자신도 배워보겠다고 아빠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아빠의 슬리퍼를 신었더니 아빠는 “네 슬리퍼는 네 돈 주고 사”라고 야박하게 군다. 예의 구두쇠 기질에 새삼스레 진저리치지만 “무좀이 옮기 때문”이라는 아빠의 배려심을 알고 살짝 감동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우라노스는 아들 크로노스에게, 크로노스는 또다시 아들 제우스에게 제거 당한다. 오이디푸스 역시 아버지를 해치고 왕위에 오른다. 이렇게 아버지는 희생으로 자식을 완성시키는 존재다. 아버지의 아날로그 방식은 자식들에게 불편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깊은 뜻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진철은 점포 창문에 ‘열쇠 있읍니다’라고 써놓고는 은서에게 자신이 잘못 썼냐고 묻는다. 은서는 “아빠 잘못이 아니라 한글맞춤법이 변한 것”이라는 현명한 답으로 위로한다. 진철은 “새로 생겼다 없어지는 것은 우리나라가 1등”이라고 푸념한다. 세상의 변화가 빠른 건가, 노인의 적응이 느린 건가?

미자의 제주도 집은 환하게 밝고 큰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미자는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했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사람을 뜻한다. 은서는 옛 방식을 차마 버리지 못한 채 확 바뀐 세태에 적응을 못해 절절 매는 진철과 미자의 중간지점 즈음에 서있다.

미자는 레지던스를 보고 사람 오라는 데가 아니라 떠나라는 데라고 말한다. 진철이 큰 수술을 앞두고 “당분간 집을 못 볼 터이니 보러 왔다”고 하자 은서는 “집이 어디 가? 거기 그대로 있지”라고 지적한다. 진철은 “그렇네. 떠나는 건 사람인데”라고 인정한다. 집은 가족의 품이고, 주인의 마음이다.

‘이데아가 아버지라면 그 시뮬라크르인 감각적 사물은 자식이니 공간은 어머니’라는 명제를 던진 플라톤에 의하면 집은 어머니다. 부모고 고향이다. 그래서 은서는 서울에 살면서도 아빠 집의 열쇠를 고이 간직했던 것이다. 항상 자신을 기다리는 곳,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기에. 2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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