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포드 V 페라리’(제임스 맨골드 감독)는 카 레이싱 소재의 영화로서 재미의 지평을 확장할 것이고, ‘남자 영화’로선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만큼 152분은 금세 지나가고, 흥분과 감동의 여운은 오래간다. 캐롤(맷 데이먼)은 195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하지만 심장 질환으로 은퇴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탱크 조종사로 참전했던 레이서 켄(크리스찬 베일)은 열정과 실력만큼은 당대 최고지만 까칠하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 탓에 거대 자본이 결부된 모터스포츠계의 주류에서 밀려나 생계를 위해 하는 수 없이 정비소를 차려 먹고산다. 아내 몰리와 아들 피터가 있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르망 대회를 휩쓸며 스포츠카 시장 선두를 달리던 페라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매출 감소로 위기에 봉착한 포드사의 포드 회장은 활로를 찾기 위해 인수합병을 추진한다. 그러나 페라리의 엔초 회장은 포드사가 페라리의 르망 출전 여부를 승인해야 한다는 조건에 자존심이 상해 피아트와 계약한다.

큰 굴욕감을 느낀 포드 회장은 리 마케팅팀장에게 르망에 출전해 페라리를 박살내라며 최고의 기술자와 레이서를 영입하라고 지시한다. 포드는 르망에 출전 경험이 없고, 페라리는 무려 6연패를 차지했다. 리는 미국의 유일한 르망 우승자 캐롤을 총괄 디자이너로 영입하고 캐롤은 켄을 스카우트한다.

뜨거운 우정과 자동차에 대한 애정으로 호흡을 맞춘 두 남자의 열정과 의지로 르망 우승을 향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지만 포드사의 이인자인 리오 수석부회장은 건방진 켄을 눈엣가시로 여겨 다른 레이서로 교체하려고 용쓴다. 그럼에도 캐롤은 더 나은 레이싱 카 개발에 애쓰는 켄을 지켜주는데.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알 법한 실화를 근거로 만들었기에 내러티브는 정해져있지만 몇 개의 시퀀스가 만드는 플롯(수제와 파불라)은 사뭇 장엄하고 의미심장하다. 기록에 의거하면 이탈리아를 뛰어넘는 미국의 자동차 기술과 운전 실력, 그리고 강한 의지의 선전이다.

그러나 직접 관람하고 극장 문을 나설 땐 절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다른 메시지를 느낄 것이다. 켄과 캐롤은 레이싱 카와 그것을 다루는 능력에서 최정상급이다. 단 몇 분만 운전하면 그 차의 어떤 부품에 결함이 있는지, 해결점은 뭔지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누구보다 빠른 레이싱 노동자다.

포드는 자본가고 리오는 그 자본가와 결탁한 경영자다. 관리자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매개체지만 결국은 자본가의 손을 들게 돼있다. 그렇게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게 앞장섬으로써 자신의 이익과 생명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고, 결국 노동자의 생산력은 높이되 노동의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것.

한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인과 관계에 대한 딜레마가 유행했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이 간단하게 해결했다. 단세포 생물에서 모든 생명체가 진화했음은 상식이다. 즉 닭으로 진화한 종의 개체가 알을 낳은 것이다. 이처럼 마르크스 이래 ‘자본이냐, 노동력이냐’ 역시 오랜 논제였다.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지만, 구조적으로는 확실하게 자본주의인 현 체제에선 자본이 ‘왕’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현실적인 지배구조일 뿐 노동자와 중간 관리자마저 그런 인식이 굳어진 건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든 유령은 아직도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고, 노동자의 의식은 살아있다.

켄은 포드에 영입되기 전 피터와 함께 머스탱 전시회에 갔었다. 피터가 머스탱을 만지자 마침 그곳에 있던 리오는 빈자의 아들이 신상품에 손대는 데 경악해 켄 부자를 무시하는 언행을 했다. 악연으로 맺어진 리오에 대해 원래 까칠한 성격의 켄이 고분고분할 리 만무하고 리오 역시 마찬가지다.

중간 관리자인 캐롤은 리오의 켄 해고 명령을 매번 무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레이싱 중의 모든 지시도 거부한다. 켄 역시 그런 내용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밀어붙인다. 대표이사의 기술자 해고 명령을 부장이 무시하고, 기술자는 그 자초지종을 알면서도 당당히 출근해 생산하는 셈이다.

켄이 기름과 매연에 휩싸여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고 경기장 구석에서 쪽잠을 청할 때 포드 회장은 호텔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전용헬기로 이동한다. 레이서의 이름은 잊혀도 페라리는 살아있듯 포드가 르망에서 우승하면 매출은 급속도로 증가하겠지만 레이서의 이름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현실에선 마르크스의 패배가 확실하다. 다만 그 ‘배회하는 유령’이 언제 현현하고 체화할지 관건이다. 감독은 살짝 그 가능성을 열어준다. 포드 회장은 예고 없이 불쑥 프로젝트 현장을 찾은 뒤 캐롤이 운전하는 신차 시승에 합류한다. 그 살벌한 드라이빙에 놀란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의 “난 몰랐네”라는 토로는 지금까지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자본 우선의 논리를 펼쳐온 자본가와 경영진에 대한 비웃음이다. 산업 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동반된 땀과 피의 노동력과 열정으로 상품이 생산된다는 이 노골적인 비유! 심지어 레이서는 생명을 잃기까지 한다.

“차가 빠를수록 모든 건 느려진다”는 상대성이론은 “7000RPM의 어느 지점에선 모든 게 희미해진다"는 테제와 연결된다. 인생 자체가 레이스라 위험한 것. 쉽게 하차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못 빠져나오는 이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난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근래 ‘가심비’ 최고작! 내달 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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