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왕국2' 포스터.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디즈니의 ‘겨울왕국 2’가 스크린을 싹쓸이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 영화는 지난 21일 63%의 상영 점유율과 70%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개봉됐다. 그러자 ‘블랙 머니’의 정지영 감독을 포함한 한국 영화인들이 모인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영대위’)가 다음날 ‘스크린 독과점을 우려하는 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영화의 다양성 증진과 독과점 해소는 특정 배급사나 극장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법과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대형 배급사와 해외 직배사나,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회사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높인 게 아니라 정부를 향한 호소였던 것. 영화의 메카인 프랑스의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가 점유할 수 있는 최다 스크린을 4개로 규정한 법을 예로 들어 우리나라도 이런 법을 입법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의 주장은 영화의 예술과 산업으로서의 건전한 발전과 관객의 문화와 여가를 즐길 권리라는 표제에 관해 무조건 올바른 말이다. 다만 그들의 테제에 대한 대중의 싸늘한 반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자회견 관련 기사의 댓글에 나타난 누리꾼의 정서를 한국 영화인과 정부 당국이 제대로 읽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근현대사를 개괄적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은 신흥국가 미국에겐 이제 영국 따윈 안중에도 없고, 오직 소련만이 눈엣가시였다. 유럽의 산업혁명을 발전시켜 자본주의의 이점을 극대화해 몸집을 불린 미국에겐 소련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물리치는 게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그 결과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인 듯 폄훼됐고, 독재주의인 듯 왜곡됐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자본가와 권력자의 배를 최대한 불려주는 대신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를 극대화했다는 것.

고위 공무원, 정치인, 자본가, 중간 경영자 이상의 간부 등의 시선으로 볼 때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아주 건방지고 불손한 해석이다. 자본가의 돈과 경영자의 능력으로 별 볼 일 없는 룸펜프롤레타리아와 다름없는 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먹고살게 해줬더니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고 괘씸하게 여길 것이다.

이렇듯 ‘노동자는 내가 주는 급여만큼 일을 안 하거나 못 한다’는 자본가의 시선과 ‘자본가는 내가 일하는 만큼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노동자의 주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영원한 인과관계의 딜레마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 포스터.

대부분의 자본주의 체제가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독과점 문제는 비단 영화계만의 불균형이 아니다.

재벌에게 영업권을 잠식당한 소상공인의 영역이 어디 남아있기나 한 걸까? 재래시장은 대형 마트에, 구멍가게는 24시간 편의점에 밀려난 지 이미 오래다. 재벌은 레스토랑 체인과 인스턴트식품 브랜드로 동네 식당과 반찬가게의 생존권마저 위협한 지 꽤 됐다. 영화는 안 봐도 살 수 있지만 밥과 반찬이 없으면 죽는다.

물론 21세기에 그런 케케묵은 비교는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영대위의 주장이 전 국민적 성원을 얻으려면 국지성을 탈피해 포괄적인 지적을 통해 거시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맛은 몰라도 위생와 퀄리티만큼은 왠지 믿음이 가는 재벌의 레스토랑 체인이 전국 방방곡곡의 상권을 흔들지언정 아직도 손님이 줄을 서는 허름한 노포는 남아있다.

‘개, 돼지’인 대중은 영화 ‘내부자들’의 대중일 뿐 우리 관객 다수는 지성인이고 멀티플렉스는 그걸 잘 알고 있다.

기원전 6세기 최초의 철학자 밀레토스의 탈레스는 대다수가 철학자를 비생산적인 ‘백수’로 폄훼하자 기상학을 이용해 어느 해에 올리브가 풍년이 들 것을 예상하고 거의 모든 착유기를 선점했다. 당연히 올리브 수확 뒤 사람들이 웃돈을 주고 그에게 착유기를 빌렸고, 그는 큰돈을 벌었다. 이른바 독과점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어느 분야건 독과점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세상에 ‘~주의’ ‘~론’ 등의 사상과 이념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어느 것 하나 완벽한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가 아무런 불만 없이 잘 운영되려면 수정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구조를 뒷받침하는 여론의 힘을 의식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따라서 특정 업계의 수정 요구가 다수의 지지를 받으려면 그 업계의 자성의 행위가 가시권에 들어와야 한다. 즉, 투자사-배급사-멀티플렉스-연예기획사 및 스타-제작사-스태프-홍보대행사 등 영화의 기획부터 제작, 홍보 등 산업화의 전 과정에 걸쳐 연루된 모든 관계자들 사이의 잘못된 관행과 ‘갑질’ 등이 해결되고, 상호거래상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건비 등 제반 경비가 책정되고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영화에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만큼 평균 수준 이하의 작가, 연출자, 배우, 스태프는 자연스레 퇴출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른바 자정 노력이다.

이와 더불어 영대위와 뜻을 같이 하는 영화계의 각 단체 등은 물론 사회 각 분야의 NGO 등과 연계해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만연된 재벌의 독과점 문제를 이슈화해 전 국민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이를 차근차근 개선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참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돼야 할 것이다.

영대위의 주장에 대한 다수 누리꾼의 논지는 ‘한국 영화를 재미있게, 완성도가 높게 만들면 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스크린을 싹쓸이하겠는가’와 ‘한국 블록버스터의 스크린 독과점 때는 왜 입을 다물고 있었냐’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한마디로 ‘너나 잘 하세요’다. 물론 국내 영화계와 극장가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의 말이긴 하지만 상황이 묘하다. 혹시라도 제 밥그릇 챙기기로 오인될 소지를 원천봉쇄했어야 했다. 순서의 문제였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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