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밀양의 영남루에서 만남 [김문 작가]

김문 작가l승인2019.11.26l수정2019.12.0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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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김원봉]

▲ 의열단 : (사진 출처-김문 작가: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고향 밀양의 영남루에서 만남

그의 눈망울은 억실억실했고 열기가 가득차 있었다. 중국 벌판을 돌아다니며 비밀리에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모습이 연상됐다. 갑자기 노래가 생각났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디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 도다.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너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에 유학한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이 192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여동생을 배웅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배에서 투신자살 한다. 그때 나이 30이다. 루마니아의 작곡가이자 군악대 대장을 지낸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푸른 도나우 강의 푸른 물결’에 자신이 직접 ‘사의 찬미’라는 가사를 붙였다. 노래의 분위기는 조금 다를지라도 광막한 낯선 광야에서 외롭게 독립운동을 했을 그 말밥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밀양에 오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텐데요.

“북한으로 건너가 조용히 묻혀 살았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많이 변했습니다. 터미널도 생겼고 병원과 법원, 검찰청 등 여러 행정기관도 생겼네요. 무엇보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내가 여기서 살 때에는 거리가 한산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네요.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요즘처럼 활력이 넘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나라 잃은 현실을 개탄해 하며 분기탱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전홍표, 윤세주, 황상규 등 75명이나 됩니다.”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 독립의 혈기가 왕성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앞장 서서 깨우치려고 했고 선생님도 많았고 나라를 빼앗낀 억울함에 자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밀양의 3.1운동 등 그런 영향을 받았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밀양은 어떤 곳입니까.

“밀양은 과거 부산의 동래부, 대구부와 함께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3대 주요지역입니다. 경남에서 경북으로 넘어오자면 대부분 밀양을 거쳐갔습니다. 반대로 갈 때에도 그렇지요. 그래서 경상의 남과 북, 두 곳의 문화가 합쳐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간의 전하지 못한 속깊은 얘기가 간직된 곳입니다.”

-밀양을 한자로 쓰면 비밀 密에다 볕 陽입니다. 무슨 뜻이 담겨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한자 풀이대로 비밀스러운 햇볕이 간직된 곳입니다. 밀양의 정신이자 지리적 숙명이지요. 비밀의 양지처럼 말입니다. 따뜻하게 숨겨진 사연을 품고 있다고나 할까요.”

▲ 밀양 영남루

인터뷰 장소는 영남루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누각 중 하나로 칭송받는 영남루는 강물 위 높은 절벽으로 자리하여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좌우로 길게 능파당과 침류각을 이어가는 누각의 모습은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멋지게 보여준다. 신라시대 영남사라는 사찰이 있던 자리에 누각이 만들어진 것으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세기 중반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고려시대 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의 글과 글씨가 누각 내부에 가득하다. 시원스런 기둥 사이로 걸려 있는 편액은 ‘영남제일루’로 당시 10세인 이증석의 글씨라 하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대동강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 남원의 광한루 등과 함께 명성을 얻고 있다.

영남루는 건물의 보존 상태로도 우리나라의 으뜸이다. 현재 영남루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누각 마루에 앉아 밀양강의 시원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의 3대 명루로 일컫는 영남루는 목숨을 바쳐 순결을 지킨 ‘아랑의 정절’ 설화와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라고 하는 아름다운 민요의 근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밀양은 평화 시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아릅다고 조용한 고장이다. 그러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면 분연히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 박진이 군민을 이끌고 치열하게 항전한 역사가 있었고 밀양 출신인 사명대사가 승군을 이끌고 연거푸 대승을 거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징표가 바로 표충사와 표충비각이다.

▲ 밀양강

-저기 보이는 밀양강은 어디로 흘러갑니까.

“울주군 고현산에서 발원하여 삼랑진에서 낙동강 본류와 합류하지요.”

-강을 보니 역사의 강물이 생각납니다.

“아마 삼국지 첫대목에 나오지요. ‘장강은 뒷물이 앞물을 밀치면서 유유히 흐른다.’라고.” 잠시 침묵이 흐른다. 밀양강을 바라본다.
“장강 하니까 시 한편이 생각나네요.‘

예전에는 당양(중국 후베이성에 있는 현)에서 주인을 구했고
오늘은 장강에서 몸을 날렸네.
배 위의 오나라 병사들 놀라 자빠지니
자룡 같은 용사는 세상에 다시없네.
장판교에서는 분통이 끓어올라
범처럼 포효하여 조조 병사 물리쳤고,
오늘은 강위에서 위기의 주인 구하니
청사에 실린 이름 만고에 전해지네.

약산은 지나온 과거를 잠시 떠올린다. 수없이 죽을 뻔했던 고비고비, 중국 벌판을 달리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모습 모습들이... 하여 얘기를 의열단으로 옮겼다.

-의열단이라고 함은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기자 양반이라는 분이 그걸 모른단 말이요.” (다음편에서 계속...)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약산 김원봉(이원규, 2005, 실천문학사), 경성의 사람들(김동진, 2010, 서해문집),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김영범, 1997, 창작과 비평사), 양산과 의열단(박태원, 2000,깊은샘), 약산 김원봉 평전(김삼웅, 2008, 시대의창)

▲ 김문 작가 –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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