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양면의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고찰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1.30l수정2019.12.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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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내달 5일 재개봉되는 ‘블랙 스완’(애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나탈리 포트만의 명연기도 유명하지만 ‘백조의 호수’에서 모티프를 얻어 인간의 이중성을 스릴러로 풀어간 탄탄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해 흥행도 잡은 예술 영화다.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다.

뉴욕발레단 소속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예전부터 ‘백조의 호수’의 백조 여왕 배역을 꿈꿔왔다. 오래 그 자리를 지켜온 베쓰(위노나 라이더)가 나이가 들자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새 주인공을 발탁하려 단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니나는 베쓰의 립스틱을 훔쳐 바르고 토마스를 찾아간다.

토마스는 갑자기 키스를 하고 니나는 그의 혀를 깨문다. 캐스팅에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배역을 따낸다. 니나는 행복에 겨워 연습에 매진하지만 자신의 도플갱어를 보는가 하면 등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고 새로 입단한 뛰어난 실력자 릴리(밀라 쿠니스)가 신경에 거슬린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 에리카는 니나를 아직 어린애 취급한다. 어느 날 밤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릴리가 찾아와 사과하는 의미에서 한잔 사겠다며 데리고 나간다. 릴리는 엑서터시를 탄 술잔을 건네고 다음날 니나는 연습에 지각한다. 토마스는 니나의 대역으로 릴리를 결정하고 니나는 반발하는데.

‘백조의 호수’는 악마의 마법에 걸려 낮엔 백조가 되는 오데트 공주, 그를 사랑하는 지그프리트 왕자, 그리고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오데트를 닮은 악마의 딸 오딜이 주인공이다. 니나는 백조에 안성맞춤이고, 릴리는 흑조에 적역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1인2역을 원하고 니나의 잠재된 능력을 믿는다.

발레리나였던 에리카는 28살에 니나를 임신하면서 꿈을 포기했고, 니나에게 그 대리만족을 원하고 있다. 아직도 니나를 ‘예쁜이’라 부르며 12살 취급을 하고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려 든다. 토마스는 소문은 안 좋지만 사실 작품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그는 니나의 욕망과 퇴폐미를 감지하고 있다.

니나는 에리카의 과잉보호 때문에 순수함을 간직하려는 강박관념으로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흑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위를 하고 노골적으로 토마스를 유혹하는 것 등이 그렇다. 완벽주의자인 그녀는 스스로를 학대함으로써 모든 결점과 결여를 떨쳐내려 한다.

백조 여왕 배역을 따낸 날 에리카는 케이크를 사와 니나에게 권하지만 몸매를 관리해야 하는 니나는 거부한다. 서운한 에리카가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려 하고 니나는 황급히 한 점 받아먹는다. 촉망되는 발레리나였다는 에리카의 말은 사실 거짓이었고 애초부터 니나의 성공 따윈 관심 없었다.

니나는 에리카에게 애완견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틴에이저도 아닌 니나의 방이 온통 핑크색 인형들로 장식돼있는 게 증거다. 에리카가 사는 세상은 비현실적이고 정직하지 못하다. 그저 자신만의 원더랜드를 꾸며놓고 니나를 영원한 피터팬으로 키우기 위해 니나의 흑조의 관능을 억제하고 있었다.

에리카는 니나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에리카의 상상 속의 니나의 얼굴은 모두 그로테스크하다. 겉으론 ‘예쁜이’라고 부르며 아이 취급을 하지만 속으론 니나가 어엿한 성인이고, 자신이 그랬듯 성욕과 출세욕을 갖고 있다는 걸 안다. 결국 니나는 그 인형들을 쓰레기 배출구에 쏟아 넣는다.

노골적인 정신과 물질의 데카르트적 이원론과 이항대립이다. 순수와 관능, 바른 생활과 퇴폐, 순결과 욕정 등이 백조와 흑조라는 확연한 정반대의 개념으로 노출된다. 얼핏 겉으로는 절제된 생활을 하는 니나는 백조고, 담배, 마약, 술, 섹스 등으로 얼룩진 난잡한 삶을 즐기는 릴리는 흑조인 듯하다.

니나는 릴리에게 백조 여왕 배역을 빼앗길까 우려하면서도 릴리와 동성애에 빠지고, 자위를 즐기면서, 자신의 도플갱어와 대립하는 환영과 환청 등에 시달린다. 릴리를 견제하지만 정작 자신의 적은 자신이었던 것. 그래서 토마스는 “네 앞길을 가로막는 유일한 사람은 너”라고 니나에게 충고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엔 대립항이 공존한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모두 맞거나 틀린 것이다. 그걸 이 작품은 거울을 통해 이미지화한다. 발레 연습실은 사방이 벽이다. 거울 속의 거울 속에 비친 니나의 모습은 마트료시카다.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처럼 그녀의 내면은 자신도 모른다.

소녀와 여인, 흑조와 백조, 착한 딸과 부모와 다투려는 딸 등을 가르는 경계는 거울이다. 거울 밖의 니나와 거울 속의 니나 역시 이항대립이다. 이런 이원론을 구분 짓는 장치는 빨간색이다. 니나가 훔친 베쓰의 새빨간 립스틱, 그녀의 환영 속에서 흐르는 누군가의 피 등은 일탈, 대가, 상처 등이다.

시작은 얼핏 쇼비즈니스계의 추악한 이면을 그리는 듯하지만 금세 니나의 등에 그치지 않는 상처와 긴 손톱에 대한 몸서리치는 공포심 등을 통해 인간의 성공을 향한 지나친 집착을 서늘하게 꾸짖는다. 누구나 욕망은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현실적일 경우 니나처럼 과대망상에 시달릴 수 있다.

토마스는 작품을 위해 필요하다고 니나의 사소한 성생활까지 캐물으며 “너 처녀니?”라고 묻는다. 왜냐면 성을 모르면 흑조 캐릭터를 끄집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완벽이란 건 통제가 아니라 해방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그만의 연출 철학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대한 심오한 고찰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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