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비자극적 시퀀스로 공포 주는 5편의 옴니버스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2.03l수정2019.12.0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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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랜 75'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십년’은 ‘어느 가족’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괄 제작을 맡고, 5명의 신예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10년 뒤의 우울한 일본을 그리는데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플랜 75’. 정부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 안락사를 장려한다.

홍보 담당 공무원 이타미는 아내 사키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사키는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가 자꾸 밖에서 길을 잃는 문제로 골치 아파 정부의 플랜에 동참하려 하지만 이타미는 엄마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비난한다. ‘장난꾸러기 동맹’. 정책적으로 AI 프로미스가 학생을 통제하는 초등학교.

AI는 학생들에게 손오공의 금고아 같은 디지털 장치를 부착하고 고통을 주며 통제한다. 료타는 수업시간에 빠져나와 마구간으로 가 유일한 말 로키를 돌본다. 그는 말 관리인으로부터 곧 안락사 시킬 것이란 말을 듣고 마구간을 부숴 로키를 탈출시킨 뒤 두 친구와 함께 뒤따라 숲으로 달려간다.

‘데이터’. 출생 직후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와 둘이 사는 여고생 마이카는 어느 날 엄마의 디지털 유산 카드를 발견하고 데이터를 열어본다.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찾아가 만난다. 돌아오니 기다리던 아버지는 “어땠냐”고 물어본다.

▲ '장난꾸러기 동맹'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방사능으로 인해 지상에서 살 수 없는 인류는 땅속에 세계를 건설했다. 소녀 미즈키는 지상을 동경했던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둘이 산다. 그녀의 낙은 친구 카에데의 비밀 기지에서 지상 세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인데 어느 날 카에데가 지상으로 간다.

엄마는 미즈키를 나무라지만 지상을 향한 판타지에 휩싸인 미즈키는 엄마 몰래 카에데의 메시지를 따라 지상으로 가는 통로로 향한다. ‘아름다운 나라’. 계속되는 전쟁에 정부는 모병 홍보 캠페인에 열을 올리면서 늙은 디자이너 아마타츠의 포스터를 젊은 디자이너의 것으로 교체하라고 명령한다.

인구 고령화의 심각성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OECD 회원국 중 이혼율과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는 결혼 안 하고 출산도 안 하기로도 첫째다. 의료기술이 나아지고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의료보험과 대중교통 무료 시스템 덕에 늘어난 고령자. 그들은 무시로 거리를 쏘다닌다.

‘플랜 75’의 노인은 안락사 제도를 고마워한다. 당국이 죽음 준비금 10만 엔을 지급하고 장례도 치러준다. 정부 책임자는 “고령자 수를 안 줄이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노인은 “가족도 돈도 없으면 길바닥에서 죽을 수밖에 없으니 노인에게 좋은 제도”라며 길일을 택해 죽는다.

▲ '데이터'

자살을 이단시하는 기독교의 입장에선 매우 불편할 것이다.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망 안에서 그 의미가 변화하며 규정된다는 철저한 구조주의적 입장이다. 즉 개인의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국가라는 구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 책임자는 소비계층(젊은이)가 국가를 지탱한다는 신념을 설파한다.

국가(권력)가 전 국민을 획일화하겠다는 전체주의다. 거기에 대한 비판의식은 ‘장난꾸러기 동맹’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애들을 통제한다는 점에선 플라톤의 ‘유토피아’가 엿보이지만 결국은 인간성을 말살하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국민으로 사육하는 독재다. 그래서 애들은 일탈로 자유를 찾는다.

AI가 사람을 통제하고 사육한다는 점은 정말 섬뜩하다. 지도층이 인공지능을 조종하고, 인공지능이 애들을 제어한다. 그 애들 중 누군가 지도자가 될 것이고, 그런 순환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아마 또 다른 ‘매트릭스’가 될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마저도 데이터로 상속하는 때는 과연 올까?

우울한 4개의 작품과 달리 ‘데이터’는 낭만적이고 희망적이라 밝다. 마이카는 엄마의 옛 남자에겐 “당신이 내 아버지일 수도 있냐”고, 아버지에겐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냐”고 각각 묻는다. 두 남자의 답은 부정이다. 마이카는 남자 친구에게 “엄마와 닮은 점을 찾았다”고 흥에 겨워 떠든다.

▲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남자가 그게 뭐냐고 묻지만 마이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여자는 거짓말을 잘 한다”고 툭 던진다. 뒤의 2편은 정말 암울한 인류의-어쩌면 가까운-미래다. ‘장난꾸러기 동맹’이 기계가 인간을 사냥하는 ‘터미네이터’로 가는 원인 제공이라면 2편은 그 때가 왔다는 신호다.

코스모스의 질서 안에서는 수없이 많은 별이 탄생하고 성장하며 소멸한다.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있고 1개의 은하에는 약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1개의 은하에 있는 별(태양)이 구성한 태양계의 한 작은 행성일 뿐인 지구는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소멸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경고다.

미즈키의 마지막 표정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아름다운 나라’는 반어법이다.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나라가 아름다울 리 없다. 인트로에서 포스터의 한쪽이 일그러진 건 그런 국가의 추악한 진면목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이 희생하면 나라엔 늙은이와 늙은 권력자만 남을 뿐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아마타츠는 할머니답지 않게 VR 게임을 즐긴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러 온 광고회사 젊은이가 “지금(같이 긴박한) 시대에 불성실하다”고 하자 “사람이 죽지 않으니 괜찮다”고 일축한다. ‘십년’은 결코 머지않은 인류와 지구의 멸망에 관한 경고문이자 자극적이지 않은 페시미즘 스릴러다.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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