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김원봉]

▲ 의열단 : (사진 출처-김문 작가: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의열단의 조직

-의열단의 조직과정은 어떠했습니까.

“그러니까 1919년 11월9일 밤입니다. 길림성 파호문외(巴虎門外)의 중국인 반(潘)씨 성을 쓰는 사람의 화성여관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모였지요. 윤세위, 이성우, 곽경, 강세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 김상윤, 신철휴, 배동선, 서상락 등 모두 13명이었습니다. 모두가 나라를 위햐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청년들로 밤새토록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이날 선거에 의해 22살의 젊은 나를 의백(義伯), 그러니까 단장으로 추대하고 공약 10조를 결정했습니다.”

다음은 공약 10조의 내용이다.

1.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身命)을 희생하기로 함.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됨.
4.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의 의(義)에 급히 함.
5. 의백 일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6. 하시하지(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매월 일차식 사정을 보고함.
7. 하시하지에서나 초회(招會)에 필응(必應)함.
8.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에 진(盡)함.
9. 일(一)이 구(九)를 위하여 구가 일을 위하여 헌신함.
10. 단의에 반배(返背)한 자를 처살함.

이 가운데 4조는 동지를 애호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자는 뜻이고, 8조는 수명을 온전히 유지하자는 관념을 타파하는 것이요, 9조는 개인이 아니면 전체를 이룰 수 없고 전체를 떠나서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비장한 결의가 보입니다. 주요 타킷은 무엇으로 삼았나요.

“의열단의 칠가살(七可殺)라는 자가 있습니다.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적(賣國賊), 친일파 거두, 적탐(敵探),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등입니다. 대만 총독은 대만 주민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왜적의 압제 아래 있음으로 해서 일본인이라는 뜻에서 그렇습니다. 같은 약소민족으로 후위와 동정으로 표하자는 뜻에서 대만 총독을 7가살에 포함시켰지요. 파괴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중요 기관 등입니다. 의열단이 창단될 때 성문화된 강령같은 것은 없었고 1923년 단재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의열단선언)을 쓸 때까지 ‘일제와 친일파를 몰아내고 조국을 광복하여 계급을 타파하며 토지소유를 평등하게 한다’는 4대 목표를 최대 이상을 삼았습니다. 의열단은 단순한 독립만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지향했으며 대한광복회의 진보적 노선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영화 <암살> 스틸 이미지

-의열단은 7가살과 5파괴를 규정짓고 처단 대상을 명확히 했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총독정치의 우두머리와 하수인, 그리고 민족반역자를 가려내 마땅히 죽여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지요. 의열단 창단 이후 단원들은 맹렬한 훈련과 활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모두 일당백의 능력있는 청년들이었죠. 일종의 결사대였습니다. 적진에 들어가 적을 죽이거나 기관을 파괴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동거지가 무척 치밀했습니다,”

다음은 님 웨일즈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의열단 단원들은 일종의 결사대 대원들이었다. 적진에 들어가 적을 죽이거나 기관을 파괴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맡은 소임이었다. 천우신조로 살아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활동이나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무척 조심스럽고, 어느 측면에서는 청교도적인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멋진 스포츠형의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아주 깨끗하게 차려 입었다. (다음편에서 계속...)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약산 김원봉(이원규, 2005, 실천문학사), 경성의 사람들(김동진, 2010, 서해문집),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김영범, 1997, 창작과 비평사), 양산과 의열단(박태원, 2000,깊은샘), 약산 김원봉 평전(김삼웅, 2008, 시대의창)

▲ 김문 작가 –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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