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제3회 마카오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의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심리극 ‘호흡’(권만기 감독)은 매우 불편한 문제적 영화로 기록될 듯하다. 그만큼 뒤틀린 이 사회의 세태를 꼬집고 꾸짖는 호통이 날카롭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주인공들의 관계는 관객이 더 껄끄러울 듯하다.

12년 전 정주(윤지혜)는 남편 태규가 10살 민구(김대건)를 유괴해 그의 부모로부터 돈을 뜯어낸 걸 방조했다. 5년 전 그들의 어린 아들 주환은 병사했고 둘은 이혼했다. 빵집을 운영하는 태규는 얼마 전 재혼해 딸을 얻었다. 정주는 낮에는 특수청소업체에서 일하고 밤에는 식당에서 부업을 하는데 매일 강소주로 죄책감을 달랜다.

어느 날 회사에 갓 출소한 전과자가 입사하고 그를 본 정주는 기함한다. 민구인 것. 민구는 정주를 모르지만 정주는 잊었을 리 없다. 반장은 정주에게 민구의 업무를 도와주라고 하지만 정주는 민구를 외면한다. 그러자 민구는 “전과자라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낸다.

그렇게 어색하던 그들은 단둘이 출장 간 날 저녁 소주를 한잔하면서 가까워진다. 정주가 술에 취해 쓰러지자 민구가 업고 그녀의 집에 데려다준 뒤 옆방에서 잠이 든다. 오갈 데 없는 민구는 공중 화장실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그를 미행해 알고 있던 정주는 집에서 지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함께 출근하는 두 사람을 정주의 동료 찬숙이 목격하고 회사 내에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을 심상치 않아진다. 정주는 태규를 찾아가 민구의 존재를 고백한다. 태규는 다시는 자기를 찾지도, 전화하지도 말라고 떠밀며 그녀를 미친 여자로 취급한다. 그렇게 세 사람의 생활이 겉으론 평온하게 지나가던 중 민구에게 추모원으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세상은 아이러니투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불행은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불행 앞에서 사람은 대체로 3가지의 선택을 한다. “그래, 운명이란 그런 거야”라는 패배주의적 태도,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다윗의 자세, “행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긍정적 행동주의다.

태규는 그런 모든 보편에서 벗어난 광기를 드러내고 그걸 폭력으로 잇는다. 그를 바라보는 정주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이기심 때문에 아전인수로 자기 변론만 하기에 급급하다. 수수방관이다. 그리고 그게 평생 죄책감으로 남고, 피해자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사람이 광기를 품게 되는 배경은 분노조절이 안 돼서가 아니라 이성을 상실했거나 도덕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태규는 완전히 그렇고, 정주는 적당히 그렇다. 그들이 괴로운 표정으로 흡연하는 장면이 자주 노출되는 건 그런 암시다. 열심히 사는 듯하지만 하루하루가 괴로운 그들의 삶은 시시포스다.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양심이 남은 정주는 교회에 다닌다. 그녀는 태규에게 “나 회개했잖아. 노력하고 있어. 기도와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라며 신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는 착각을 확인받으려 한다.

‘종교’는 그녀의 회개를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피해자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들로 인해 민구의 삶이 불행해졌다고 괴로워하는 정주에게 태규는 원래 그런 운명이었다고 부인한다. 자기합리화다. 종교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정주에게도 그런 뻔뻔함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녀가 민구를 배척했다가 그의 속사정을 듣고는 갑자기 온 마음을 열어 그를 포용하는 건 연민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죄악감을 떨쳐내기 위한 자구책이다. 민구의 “누나가 편하자고 그런 거잖아요”라는 절규가 증명한다. 태규는 늦은 나이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을 얻었지만 정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폐경기가 찾아왔다.

그녀가 낮에 청소를 하고 밤에 설거지를 하는 건 자신의 죄를 정죄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영어 제목 ‘Clean up’은 정화하다는 뜻이다. 곧 정규직 발령을 받을 한 동료는 업무 중 얻은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근한 탓에 해고당한다. 대신 그 자리에 민구가 들어온다.

전과자 재활 차원에서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회사가 그런 채용에 적극적인 것. 고아가 된 민구는 생계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갔다 왔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 순환 고리의 연속인가! 식당 주인은 정주에게 소개팅을 주선하며 “애도 없는데 잘됐지”라고 말한다. 그러자 정주는 “잘되긴 뭐가 잘돼요”라며 발끈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남의 사정도 잘 모르면서 다 아는 척 불친절을 왕왕 저지르곤 한다. 어쩌면 정주의 민구를 향한 배려 역시 그런 아전인수일 수도 있다. 정주는 남남이 된 태규를 불쑥 찾아가 오빠라고 부른다. 태규는 “우린 이제 가족 아냐”라며 오빠라는 호칭을 거부한다.

정주의 집에는 그녀의 방과 주환의 방이 각각 있지만 그녀는 꼭 소파에서 잔다. 그러다가 민구를 주환의 방으로 들인 이후 자신의 방에서 잔다. 그녀는 식당 주인에게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주인이 급여를 올려주겠다고 하자 돈 때문에 다닌 게 아니었다며 이젠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그만두는 것이라고 이유를 댄다.

그녀는 민구와 가까워진 다음날 교회에서 기도를 드린 뒤 성경 책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민구는 공원에서 알게 된 유기견을 어떤 승용차가 친 뒤 달아나자 분노한다. 그는 꿈에 그리던 스케이트보드를 산 뒤 어릴 때 자신이 유괴돼 담겼던 바퀴 달린 가방을 떠올린다. 남들에겐 생일이 떠오를 미역국이 그에겐 트라우마다. 이토록 이 세상엔 불편한 것투성이고 거의 모든 게 양가성의 이원론이라는 시종일관된 주제는 목덜미가 서늘하다.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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