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 세이렌 신화를 비튼 현실적 공포와 충격 반전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19.12.07l수정2019.12.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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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매리’(마이클 고이 감독)가 주는 공포가 대단한 이유는 ‘곡성’, ‘샤이닝’, ‘유전’, ‘어스’ 등처럼 어떤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는 시퀀스 때문일 것이다. 데이비드(게리 올드만)와 사라 부부는 하이틴 린지와 나이 차이가 많은 둘째 딸 매리를 키우며 산다. 낚싯배 선장인 데이비드는 일생의 숙원을 풀기 위해 배 경매장에서 매리라는 범선을 구매한다.

수리비까지 26만 달러의 거금이라 은행 대출까지 받지만 그는 이 배에 손님들을 가득 싣고 큰돈을 벌겠다는 포부를 품는다. 수리가 끝나자 그는 자신의 선원 마이크와 토미, 아내와 두 딸을 태운 채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가는 시험 항해에 오른다.

그런데 출항하자마자 사라에게 이상한 일들이 자꾸 발생한다. 한밤중엔 토미가 돛을 올리고 운항을 하더니 데이비드에게 칼을 휘두른다. 데이비드는 다음날 기착지에 그를 내려주고, 그와 사귀던 린지는 부모를 원망한다. 그 다음날 토미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를 건 데이비드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인트로의 비명과 원거리에서 잡은 난파선의 쇼트는 수미상관이다. 해안경비대는 표류하는 매리 호를 발견한다. 리디아 특수 요원은 해안경비대로부터 생존자인 사라의 신병을 인도받아 신문하는데 린지가 살인범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라는 항해일지를 쓰듯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두 딸의 생존. 영화는 그 사실 여부는 밝히지 않은 채 사라의 진술을 스크린에 옮기고, 중간에 리디아와의 갈등 관계를 펼친다. 사라는 “남편은 싸우려 했지만 실패했다. 내가 그녀를 밀었다”라고 횡설수설한다. 그녀의 진술에 의하면 중세 때 마녀사냥으로 희생된 어느 엄마가 악마가 돼 무고한 가족들을 죽인다는 것.

매리 호의 뱃머리엔 300년은 됐을 법한 나무로 깎은 세이렌 조각이 장착돼있다. 그리스신화의 세이렌은 바다의 요정이지만 뱃사람들에겐 성적인 유혹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마다. 세 자매로 이뤄진 세이레네스는 자신들의 노래, 연주, 말솜씨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제우스의 딸들인 뮤즈와 대결해 날개를 잃고, 오르페우스의 하프에 져 자살했으며, 오디세우스에게 자존심이 상해 다시 한 번 자살하면서 얘기를 매듭짓는다.

두 번의 자살은 비논리적이지만 그만큼 신화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고, 후대에 교훈을 전하는 영향력은 방대하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미망에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경종이다. 세이레세스의 아름다운 얼굴, 환상적인 노래와 연주, 그리고 달콤한 감언이설은 치명적이다. 겉치레에 현혹되지 말라는 교훈.

더불어 세이렌 자체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없다는, 자만에 대한 경종도 동시에 울린다. 트로이 전쟁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미모에 대한 자만심에서 비롯돼 미녀에 눈이 멀어 트로이의 멸망을 야기한 한심한 파리스 왕자에서 방점을 찍는다. 자존심도, 미색을 밝히는 것도 다 허망하다는 얘기.

이 영화에서는 그 욕심이 ‘오르지 못할 나무’로 살짝 변형된다. 데이비드는 50대의 베테랑 선장이다. 남의 배를 운항하는 기술 노동자인 그는 이제 나이도 있고, 자존심도 세우고 싶기에 독립해서 부를 쌓고자 한다. 보수비까지 3억 원이 드는 범선을 사는 데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을 정도니 그는 별로 가진 게 없다.

그런데 매리 호는 들어갈 몸을 찾던 악마가 깃든 유령선이다. 만약 데이비드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평소대로 남의 밑에서 근무했다면 별다른 희망은 없었을지언정 극단의 불행과는 조우하지 않았을 것이다.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라는 메시지는 불편하지만 매우 현실적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씁쓸하다.

데이비드는 “우린 미완성인 존재”라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산다. 린지는 토미에게 푹 빠져 아빠가 보면 심장마비에 걸릴 비키니 차림으로 다니지만 정작 그걸 나무라는 엄마에게 “바람피운 주제에”라고 반항한다. 매리는 흔들리는 이를 빼지 못해 안달이다. 전부 “새로 뭘 한다고 과거가 지워져?”라는 대사로 이어진다. 한 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

영화는 중세의 마녀사냥이라는 흔한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마지막의 반전은 매우 충격적이다. 차차 늘어나는 호러 특유의 공포 장치들은 클리셰로 느껴지면서도 충격 효과는 꽤 있다. 결말을 알기 전까지 지속되는 긴장감과 궁금증, 그리고 마지막의 결론이 주는 예측불허의 스릴은 장르적 재미가 쏠쏠하다. 1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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