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쥬만지’(1995)가 게임을 시작하면 동물들이 현실에 나타났다면 ‘쥬만지: 새로운 세계’(2017)는 게이머들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게 다르다. ‘쥬만지: 넥스트 레벨’(제이크 캐스단 감독)은 전작을 이으면서 결론적으로는 첫째 작품으로의 회귀를 예고하는 훨씬 재미를 강화한 영리한 판타지 액션이다.

전편에서 쥬만지 비디오 게임을 발견한 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진탕 고생을 한 친구들은 어느새 대학 새내기가 됐다. 뉴욕 대학으로 진학한 스펜서는 한때 마사와 사귀었지만 이젠 서먹서먹해진 사이.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고, 마사는 메신저로 베서니, 프리지 등과 브런치를 약속한다.

노라 식당에 모인 세 친구는 유일하게 빠진 스펜서를 걱정하다 그의 집을 찾아간다. 스펜서의 외할아버지 에디는 몸이 불편해 스펜서의 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한때 노라 식당 자리에서 함께 식당을 운영했지만 사이가 벌어진 친구 마일로가 갑자기 찾아오고, 스펜서의 친구들까지 한자리에 모인다.

지하 창고에서 쥬만지를 발견한 친구들은 스펜서가 그 속에 들어갔음을 깨닫고 갈등하지만 마사의 의견대로 그를 구하러 가기로 한다. 게임 속에 들어간 그들은 싸움꾼 고고학자 브레이브스톤(드웨인 존슨), 여전사 루비(카렌 길런), 동물학자 무스(케빈 하트), 지도 전문가 셸리(잭 블랙) 등으로 변신한다.

그들 앞에 안내자 나이젤이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불렀다고 전한다. 그는 자트마이어 설산의 요새에 사는 폭군 유르겐이 평화롭게 살던 에이비언족을 침략해 팔콘 보석을 약탈해갔다며, 쥬만지에 거대한 위험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유르겐이 카바비크 형제와 동맹을 맺으면 끝이라는 것.

‘쥬만지’는 당시엔 획기적이었지만 현재로선 자극이 약하고 판타지도 별로다. ‘쥬만지: 새로운 세계’는 재미는 있었지만 역시 덜 자극적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같은 감독이지만 코미디와 액션과 스릴을 훨씬 강화하고 사이즈를 벌크업 했다. 정글뿐만 아니라 사막과 설산을 담은 비주얼이 화려하다.

쥬만지 게임에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하마와 뱀에게 먹히는 시퀀스로 한눈팔 틈을 안 주고, 곧이어 광활한 사막에서의 살인 타조 떼에 쫓기는 버기카 레이싱 액션으로 스피드를 즐기게 해준다. 브레이브스톤과 무스, 루비와 셸리, 브레이브스톤과 루비, 무스와 셸리 등의 조합이 주는 재미도 크다.

전편에선 한번 아바타가 설정되면 그대로 진행됐지만 이번엔 변화를 줬다. 정체불명의 물이 그 매개체인데 아바타들이 이곳에 몸을 담그면 원래의 주인공들이 바뀐다. 그 장치를 통해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인물은 루비다. 이미 입증된 뛰어난 무술 실력에 쌍절곤 기량을 더하고 리더십까지 보여준다.

클라이맥스는 뒤로 미루지만 유르겐의 등장은 질질 끌지 않고 빨리 브레이브스톤과 만나게 한다. 처음엔 에디의 아바타였던 브레이브스톤은 병든 노인인 자신의 본모습에 얽매여 소극적이다가 우연히 힘을 발견하곤 혼자 40여 명을 두들겨 팬다. 그런데 웬걸! 유르겐의 힘은 그를 훨씬 능가한다.

무소불위처럼 보였으나 의외로 약점이 있는 브레이브스톤을 결정적으로 돕는 자가 루비라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그녀의 본모습인 마사는 운동신경이 무디다. 그런데 극강의 전투력을 갖춘 여전사 루비로 변신했다는 걸 깨닫고 다소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던져 팀을 구할 아이템을 쟁취해낸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은근히 페미니즘을 저변에 깔았다. 스펜서의 엄마가 에디와 스펜서를 거의 동등하게 아이 보듯 보살피는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퀀스에서 이미 드러난다. 70대 중반의 병약한 아버지와 19살의 대학생 아들은 중년의 여인의 눈엔 똑같은 아이라는 시선은 모성애의 우월이다.

아찔한 낭떠러지 위에 달린 나무다리들 위에서 펼쳐지는 맨드릴개코원숭이 무리와의 액션 시퀀스는 이 작품의 백미. ‘위기의 순간 씨앗을 기억하라’는 식의 신탁 같은 메시지는 후반의 날개 달린 말로 이어진다. 그리스신화의 페가수스는 포세이돈과 메두사 사이에서, 혹은 메두사의 피에서 태어났다.

올림포스의 넘버2와 괴물 사이에서 태어난 신마라는 아이러니! 페가수스는 탄생 후 곧바로 제우스의 번개를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성질이 몹시 난폭해서 아무도 탈 수 없었다. 그런데 영웅 벨레로폰이 아테나의 황금 고삐로 페가수스를 길들이는 데 성공해 타고서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친다.

그런데 자만이 하늘을 찔렀던 벨레로폰은 결국 그 허영심 때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면서 낙마해 지상으로 떨어진다. 페가수스는 주거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샘 등의 수원에는 반드시 나타난다. 영화에서 15년 전 마일로는 에디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식당을 처분한 뒤 서로 원수가 된다.

자아라고 착각한 자만이 에디와 멀어지게 만들었다. “늙는 건 최악”이라는 에디는 무심한 세월 앞에서 한숨지으면서 무기력하게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일로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깨닫는다. 물이 생명 유지에 필수이듯 인간관계에선 우정이 그렇다. 물에 수원이 있듯 인간관계의 근원은 의리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선택은 참으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신비의 인물 밍 역을 맡아 ‘미션 임파서블’ 같은 시퀀스에서 활약을 펼치는, 요즘 할리우드의 대세로 떠오른 아콰피나가 신스틸러. 피터 프램턴의 명곡을 빅 마운틴이 리메이크한 ‘Baby I love your way’와 속편 예고도 즐겁다. 1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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