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80년대 인기 정상의 그룹 팝의 멤버로서 잘나갔던 알렉스(휴 그랜트)는 이젠 퇴물이 된 중년이라 매니저 크리스가 잡아오는 공원 행사 무대 같은 걸로 먹고산다. 그런데 정상급 소녀 가수 코라(헤일리 베넷)가 팬이라며 신곡을 만들어 듀엣을 하자는 제의를 한다.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는 작곡은 잘하지만 작사는 전병이라 유명 작사가를 섭외해 작업을 하는데 새로 바뀐 원예사라며 소피(드류 베리모어)가 방문한다. 작사가의 상투적인 가사에 난감한 알렉스에게 소피가 무심코 내던진 한 문장이 강하게 꽂힌다. 삐친 작사가는 뛰쳐나가고, 알렉스는 소피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한다.

부모가 물려준 회사는 언니 론다가 형부와 함께 운영하고, 소피는 조카들을 돌봐주고 있다. 론다에게 알렉스 얘기를 하자 열혈 팬이었던 론다는 즉시 그를 만나러 가자고 나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작업을 시작하고 두말할 필요 없는 명곡이 탄생한다. 코라 역시 크게 만족하며 녹음 스케줄을 잡는다.

소피는 대학생 때 교수와 사귀었지만 약혼녀가 있어서 헤어졌는데 그가 자신을 모델로 해 희화화한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을 써 크게 성공해 속상하다는 속사정을 알렉스에게 털어놓는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레스토랑에서 그 교수와 마주치자 알렉스는 소피를 도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둘은 그날 밤을 함께 보낸다. 그 후 둘은 코라가 편곡한 신곡을 듣고는 까무라친다. 소피는 당장 편곡이 잘못됐음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자칫 코라의 기분을 상하게 해 마지막 기회를 놓칠 것을 우려한 알렉스는 코라를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이에 위기가 찾아오는데.

2007년 개봉돼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연출보다는 프로듀싱이 더 활발한 마크 로렌스의 대표적인 감독작이다. 기(만남)승(발전)전(갈등)결(화해)은 전형적이지만 각 시퀀스부터 플롯까지 기존 멜로와는 씨줄과 날줄이 많이 다른, 재기 발랄함이 매우 돋보인다.

알렉스는 한물간 왕년의 스타라고 해도 이름과 얼굴은 아직 살아있다. TV 쇼에서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섭외를 한다는 건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증거다. 그에 비하면 31살의 소피는 내세울 게 없다. 그 나이에 아직 안정된 직장도 없이 ‘알바’를 전전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듯하지만 실은 닮았다.

알렉스는 팝의 전성기 때 동료에게 배신을 당했다. 함께 작곡한 곡을 솔로로 독립해 자신의 창작처럼 발표해 성공한 것. 알렉스는 복수심에 불타 솔로 음반을 냈지만 어머니만 대량 구매해줬을 뿐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소피는 유명 작가인 교수에게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교수가 자신이 꿈꾸는 자리에 있는 ‘별’이기에 존경심이 작용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력이 모자란 탓에 성적인 유혹으로 접근해 작가가 되는 지름길을 마련하고자, 즉 그의 후광을 업고 성공하기 위해 그랬던 건 아니다.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는데 교수는 소설 속에서 소피를 천박한 여자로 그렸다.

알렉스는 단박에 소피에게 글재주가 있음을 파악한다. 자신이 가사를 못 쓰기 때문에 잘 쓰는 그녀를 알아채기 쉬운 것이다. 교수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피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교수가 창조한 소설 속 자신의 왜곡된 캐릭터를 혐오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 캐릭터를 자기화하고 있는 것.

이런 구성은 화합과 협업의 중요성에 대한 설파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설정한 과거의 완벽했던 구체형 인간이다. 그들이 생각한 인류는 원래 남녀가 한 몸인 둥그런 형태였다. 완전했기에 힘이 강해 안하무인이 되자 올림포스의 신들이 노해 반으로 갈랐고, 그래서 짝을 찾아 헤매게 됐다.

그리스신화의 헤르메스(여행, 장사 수완)와 아프로디테(미, 사랑)가 결합해 낳은 헤르마프로디토스다. 남자 혹은 여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짝이 없다면 완벽할 수 없다는 모든 민족의 신화를 작품 안에 농축했다. 알렉스는 공동 작곡한 곡을 독차지한 동료의 배신에 분기탱천해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동료는 처음엔 성공했지만 지금은 알렉스보다 더 잊혔다. 즉 그룹은 그룹일 때 그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남녀의 결합이 완벽할 때 인간으로서의 안정된 삶을 완성한다는 사랑의 표제다. 협업 초기 두 사람은 작사가 중요하냐, 작곡이 중요하냐로 살짝 긴장 상태를 갖는다. 이성 간의 사랑의 환유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감독이냐, 배우냐로 갈리듯 대중음악을 선호하는 규준 역시 각자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20년 이상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상이한 이념에 의식을 적시며 나름의 인식론을 구성하고 살아왔다. 개념을 일치시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창작에 서로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

코라의 어긋난 편곡에 대해 소피는 쓴소리를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만 알렉스는 ‘오냐, 오냐’라는 식으로 무조건 코라의 편을 든다. 소피는 양심과 자존심이고, 알렉스는 명성과 돈이다. 사람은 짝을 찾아 헤매는 여행자다. 인생의 여정에서 짝은 찾는 것일까, 만드는 것일까? 여기 답이 있다.

수미상관인 인트로와 아우트로의 뮤직비디오는 1980년대를 휩쓴 뉴록의 아하, 듀란듀란 등을 연상케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모델인 듯한 코라는 불교와 인도 문화에 푹 빠져있다. 그런데 ‘카마수트라’로만 보는 듯한 민망한 의상과 춤은 동양 문화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라 좀 불편할 듯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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