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1세기의 대표적인 천재 감독 중 하나인 드니 빌뇌브가 ‘블레이드 러너’(1982)의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을 연출해 호평을 받은 데 이어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해 흥행에서는 참패했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문제적 걸작 데이빗 린치의 ‘사구’를 리메이크해 내년에 공개한다.

마니아는 린치의 ‘사구’를 명작 반열에 올리기 주저하지 않지만 다수의 대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도 그럴 것이 린치는 4시간짜리로 찍은 뒤 3시간짜리까지 타협했지만 유니버설 등 투자자들은 2시간짜리를 고집했고, 결국 141분으로 개봉됐으니 난도질당한 각 시퀀스들이 어색할 수밖에.

서기 10191년. 우주는 카이탄 행성의 샤담 4세 황제가 다스린다. 칼라단 행성의 레토 아트레이디스 공작과 기디프라임 행성의 하코넨 남작은 숙적 관계다. 아라키스라는 사막 행성에서 생산되는 스파이스라는 가스는 생명을 연장시키고 의식 세계를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우주여행에도 필수적이다.

아라키스에는 언젠가 키세츠 카데하라라는 구원자가 나타나 참된 자유를 찾아줄 것이라는 오랜 예언을 믿으며 숨어사는 프레멘 종족이 있다. 스파이스에 의해 4000년 동안 진화한 항해자로 구성된 우주여행조합은 황제의 권위 밖의 인물들로 황제에게 레토와 그의 아들 폴을 죽일 것을 압박한다.

레토는 정략결혼으로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사랑하는 베네 게세리트 수녀 제시카와 내연의 관계로 지내면서 폴을 얻었다. 제시카는 교모가 내린 딸을 낳아 하코넨가와 사돈을 맺음으로써 두 가문의 화해를 이룩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폴을 낳았다. 키세츠 카데하라에 대한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공작과 남작은 결국 아라키스에서 각 민족의 생존을 건 일대 결전을 벌이는데 공작 진영에 남작이 심어놓은 배신자에 의해 레토가 죽고 아트레이디스 가문은 몰락하지만 폴과 제시카는 가까스로 탈출해 사막 속으로 도망가서 몸길이 300~400m에 이르는 모래충을 피해 프레멘 무리에 합류하는데.

일단 전체 음악을 토토가, 예언 테마곡을 브라이언 이노가 담당했다는 것만 해도 귀가 호강이다. 린치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비주얼도 놀랍다. 다만 액션은 어색하다. “홍콩 무술을 쓸 수 없다”던 린치의 고집이 만들어낸 의도적 키치일지, 액션에 전문성이 떨어진 그의 핸디캡일지는 의문이다.

배급사의 난도질로 극장 버전은 엉망진창이 됐지만 린치는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을 거의 20년 넘게 앞섰다. 프레멘의 대화에서 노골적으로 지하드(성전)란 단어가 거론된다. 그들이 믿는 구원자는 유대교의 메시아니즘의 전형이다. 기독교의 예수다. 대다수 민속 신화 속 해방의 구원자인 것이다.

린치는 액션만큼은 중국 무협을 흉내내기 싫었다지만 스토리는 전형적인 무협지다. 폴은 정실이 아닌 후실 소생이다. 홍길동의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구원자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게다가 뒤늦게 얻은 누이동생은 빠르게 성장해 예언자가 된다. 고대 서양의 신화와 종교에 동양적 운명론을 섞었다.

음파를 무기로 사용하는 비밀 군대를 거느린 레토는 황제도 두려워할 만큼의 강력한 존재였다. 하지만 하코넨의 야비한 간계에 의해 레토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순정이 그의 죽음과 폴의 고행을 가져온다. 아트레이디스에겐 모듈이란 특수한 무기가 있다. 하지만 폴은 그걸 뛰어넘는다.

그는 아트레이디스 종족만의 무기인 음파 공격법을 프레멘 종족에게 가르쳐 전사로 변화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명수를 마심으로써 신적인 존재로 승화된다. 지금까지 생명수를 마시고 살아난 사람은 없었다. 그 고통과 공포를 이겨야만 진정한 초월적, 선험적 존재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폴은 칼라단 행성으로 갈 생각을 안 하고 프레멘 종족의 지도자가 돼 하코넨을 물리치고 황제를 제압해 아라키스와 프레멘에 자유를 준다. ‘스타워즈’는 역사가 짧아 신화가 없는 미국의 신화를 설파하는 프로파간다다. 린치는 조지 루카스의 신화를 이으면서 미국의 중동 간섭을 노골적으로 합리화했다.

스파이스는 가스다. 우주여행에 없으면 안 된다. 스파이스를 통해 진화해왔고 특별한 군사력이 없음에도 황제를 겁박할 수 있는 우주여행조합은 바로 재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스파이스가 동력원을 뜻함은 매우 자명하다.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고,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전력이나 원자력 등이다.

제일 큰 모래충은 450m나 된다. 이 크리처는 평소 모래 속에 살지만 규칙적인 음의 파동을 감지해 모래 위로 솟구쳐 올라 그 존재자를 잡아먹고 산다. 더불어 스파이스를 먹고살기도 하고 스파이스를 생산해내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수련을 통해 내면을 확장한 폴은 결국 모래충을 조종하게 된다.

그 내용은 중국 무협지와 서양의 영웅 서사시를 합쳐 현대에 대입해 만든 구조다. 모래충을 다스린다는 건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핵무기와 석유 등 모든 무기와 연료를 지배하게 됐다는 의미다. 무협지의 시각으로 봤을 땐 코끼리 등 맹수를 다스리는, ‘반지의 제왕’의 크리처를 이끄는 사우론이다.

폴은 수시로 ‘잠든 자는 깨어나야 한다’고 뇌까린다. 인간의 뇌는 기껏해야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숨어있는 90%를 끄집어냄으로써 초월적 존재로 가야 한다는 신비주의적 테제다. 린치는 뤽 베송의 ‘루시’를 예견한 듯하다. 소리가 강력한 무기인 건 언어의 철학이 가진 힘의 메타포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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