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국 ‘터키(Turkey)’ [김권제 칼럼]

김권제 칼럼니스트l승인2019.12.24l수정2019.12.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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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수도가 앙카라인 터키 공화국/ 터키는 서남아시아의 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의 동트라키아에 걸친 나라이다. 북서쪽 불가리아, 서쪽 그리스, 북동쪽 조지아, 동쪽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월경지인 나이체반 자치 공화국), 이란, 남동쪽은 이라크와 시리아 등 8국과 국경을 접한다. 3면이 바다로 북쪽에 흑해,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사이로는 마르마라 해와 다르다넬스 해협, 보스포러스 해협이 있는데, 이 바다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이다.

역사를 보면, 아나톨리아 반도는 구석기시대부터 여러 초기 신석기 시대 거주지까지 최초의 인류들이 살았다 여겨진다. 트로이아에는 신석기~철기 시대까지 사람들이 거주했다. 최초 제국 히타이트는 B.C 18~13세기까지 존속했다. 그 후 패권을 잡은 프뤼기아인들은 B.C 7세기 킴메르인에 멸망했다. 프뤼기아 후계국가는 뤼디아, 카리아, 뤼키아다. B.C 12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해안에 이오니아 등의 그리스인들이 정착했다. 이 지역은 B.C 6~5세기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고, B.C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비튀니아, 카파도키아, 페르가몬, 폰토스 등 여러 소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B.C 1세기 중엽 로마에 복속됐다.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비잔티온을 로마 제국의 새 수도로 삼고 노바 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 이스탄불)로 개명했다. 서로마 멸망 후 이 도시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돌궐족인 튀르크족은 고구려와 연계해서 수와 당나라와 싸운 형제국으로서 중앙아시아와 몽골지역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당태종에게 동돌궐이 망하며 서돌궐이 유럽쪽으로 이주했고 지리적으로 우리와 멀어졌다. 이주해온 돌궐족 중 오우즈 튀르크족은 10세기경 카스피 해와 아랄 해, 북쪽 오우즈 연맹의 얍구 칸국 사람들이다. 이들 중 셀주크 일파가 11세기 아나톨리아 동부로 이주했고,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말라즈기르트) 승리로 이들의 영토가 되었다. 이곳의 셀주크 술탄국이 부상하며, 중앙아시아 일부와 이란, 서남 아시아를 아우른 셀주크 제국이 됐다. 그러나 1243년 몽골에 패해 제국이 무너졌다. 이후 오스만 1세의 작은 튀르크 공국이 발전하여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 레반트를 아우르는 오스만 제국이 되었다. 1453년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해서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했다.

16~17세기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를 통해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과 충돌했다. 이에 합스부르크 에스파냐, 베네치아 공화국, 성 요한 기사단이 신성 동맹 결성으로 맞섰다.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에서 동맹국편으로 패배했다. 승전 연합군이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점령하자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이 터키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1922년 9월 18일 점령군이 퇴각하며 새 터키국이 건국됐다. 1923년 7월 24일 로잔조약에서 터키 공화국이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무스타파 케말은 초대 대통령이 되어 개혁을 추진했다. 1924년 11월 1일 술탄국 폐지로 623년간의 오스만 제국이 종식되고, 1925년 여성 복장 해방, 여성 교육권 보장 및 이슬람력 대신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 일부다처제를 금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했으며, 1928년 터키어를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했다. 1930년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중립이었으나, 1945년 2월 23일 연합국측에 참전했고, 1945년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터키는 한국전에 참전했으며, 1952년에는 NATO에 가입해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을 견재했다. 1974년 7월 키프로스의 그리스인들이 군사정변으로 니코스 삼프손의 독재 정권을 세우자, 터키는 그해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했다. 9년 뒤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오직 터키만이 승인한다.

터키는 아시아 쪽 영토가 국토의 97%, 유럽 쪽 영토는 3%로 세계 37번째 넓은 나라다. 아시아 쪽 아나톨리아는 중앙에 고원 지대와 좁은 해안 평야로 구성되며, 그 사이로 북쪽에는 쾨로을루 산맥과 도우 산맥(폰토스 산맥), 남쪽에는 토로스 산맥이 뻗어 있다. 동부 터키는 산악 지형이 발달했으며,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아라스 강 등 여러 강의 수원지이고, 반 호와 터키 최고봉 아라라트 산(5,165m)이 있다.

터키 해안 지방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 건조, 겨울에는 한랭 습윤하다. 해안과 가까운 산맥 때문에 건조한 터키 내륙은 계절차가 큰 대륙성 기후다. 동부 산악 지방은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며, 연중 120일 정도 눈이 남아있다. 서부의 겨울 기온은 평균 영하 1도로 여름은 덥고 건조한데 보통 낮에 30도 이상이다. 연중 강수량은 평균 400mm로 가장 건조한 코니아 평야와 말라티아 평야의 연중 강우량은 대개 300mm 이하이다. 가장 습한 달은 5월이며, 가장 건조한 달은 7월과 8월이다.

2007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임기는 7년 단임에서 5년 중임으로, 직선제로 선출된다. 이에 따른 첫 대선(2014년 8월 10일)에서 정의개발당의 에르도안 전 총리가 당선되었다. 2017년 개헌 국민투표로 94년만에 의원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변경되었다. 임기 4년에 550명인 터키 의회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81개의 행정 주를 대표해 85개 선거구에서 선출된다.  

터키는 행정조직이 아닌 7개의 인구 조사용 지역인 마르마라, 에게 해, 흑해, 중앙 아나톨리아, 동 아나톨리아, 동남 아나톨리아, 지중해 지역이 있다. 터키는 행정구역상 총 923개 구역으로 세분되는 81개 주가 있다. 터키 인구의 70.5%가 도시에 살며, 인구 백만이 안되는 주가 18개, 100~50만 사이의 주는 21개 그리고 10만 이하의 주는 2개다.

터키 군대는 NATO에서 미군 다음으로 큰데, 총 병력 수는 104만명 정도이다. 건강한 터키 남성은 교육 수준이나 직업 위치에 따라 3주~15개월 간 군 복무를 한다. 최근 터키 정부는 병역 거부자들에게 1개월 정도 구금 후 석방하는 등 심한 처벌을 삼가고 있다.

터키는 전통적 농경에서 벗어나 도시의 산업 단지들이 급속히 발전하고 서비스 부문이 확대되며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래서 농업 부문이 감소하고 산업 부문이나 서비스 부문이 증가하고 있다. 중요 경제 부문은 은행업, 건설, 가전, 섬유, 석유 정제, 식품, 광업, 철강, 기계 산업 및 자동차 등이다. 터키의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은 세계 상위권이다.

터키 교통의 중심은 여객, 화물 모두 육상 도로교통이다. 철도는 10,940km의 국철로 편수가 적고 노후되어 불편하나 물자수송의 주요 수단이다. 바그다드에서 아나톨리아 고원을 횡단하여 이스탄불에 이르는 바그다드 철도가 주 노선이다. 수도 앙카라와 지중해, 에게해, 흑해 연안의 모든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는 잘 발달한 반면 폰투스 산맥과 토로스 산맥 때문에 지중해 해안지방의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망은 미약하다. 터키 최대 항구 이스탄불은 마르마라해와 흑해의 중간에 위치해 해상물자 수송의 중심지이다. 에게 해안의 이즈미르, 지중해안의 이스켄데룬, 흑해안의 삼순과 트라브존도 주요항구이다. 이스탄불은 국제항공상 요지이다.

2008년 터키 인구는 7,150만 명으로 도시 거주가 70.5%이다. 국민 대다수는 터키 민족이고 남동부에 집중된 쿠르드인이 가장 규모 큰 비터키계다. 소수 민족인 압하스인, 알바니아인, 조지아인, 그리스인, 유대인 등이 있다. 1923년 1월 30일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상호 합의로 약 150만 명의 터키 내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그리스 내 터키인 약 50만 명도 터키로 이주했다.

터키어는 터키의 유일한 공용어이다. 터키어는 1928년부터 로마문자로 표기되며, 과거의 오스만 터키어는 1928 이후 사멸되었고, 동남부 지역의 아랍계 주민을 제외하고는 아랍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터키는 오우즈 튀르크, 오스만 제국, 그리고 탄지마트 이후 서구 문화와 전통이 혼합되어 다양한 문화가 창출되었다. 터키 문화는 근대 서구식 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면서도 전통 종교와 역사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 터키 음악과 문학은 다양한 문화 혼합의 사례로,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 세계 및 유럽 세계와 상호 작용하면서 한데 섞였다. 터키의 비잔티움 건축과 후대의 오스만 건축들은 지역과 이슬람 전통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18세기부터 터키 건축은 서양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았는데, 돌마바흐체 궁전이나 츠라안 궁전 같은 건축물들이 대표적이다.

터키는 국교가 없지만 2014년 현재 무슬림은 7,466만 명으로 전체의 98.6%이다. 이들 대다수는 수니파(85~90%)며, 그 외 알레비파(10~15%), 시아파, 열두이맘파의 분파가 있다. 타 종교 신도는 100,000 명 이하로 주로 기독교인데 대부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나 그리스 정교회(64,000명)이다. 유대교를 믿는 종교인들도 있다.

터키는 2005년 10월 3일부터 유럽 연합과 가입 협상에 돌입했지만 쉽지 않다. 회원국 일부가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1974년 터키의 유럽 연합 회원국인 키프로스 공화국 침공으로 인한 분쟁이다. 1974년부터 터키는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을 수립하고 그리스계 키프로스 공화국을 이 섬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문제가 유럽연합에 가입 못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우리 형제국 ‘터키(Turkey)’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Turkey’는 고대 투르크어로 민족명인 ‘Türk/ Türük(강한, 터키인)’가 중세 페르시아어 ‘twlk(Turk)’가 됐고 다시 페르시아어 ‘Turk’로 변형됐다. 이 말이 비잔틴 그리스어 ‘Toûrkos’로 유입됐고 다시 라틴어 ‘Turcus(Turk)’를 거쳐 중세 라틴어 ‘Turchia/Turquia/ Turcia(land of the Turks)’가 됐다. 이 말이 프랑스어 ‘Turquie’를 거쳐 중세 영어 ‘Turkye’로 차용되면서 최종 ‘Turkey’로 정착했다. 중세 영어 ‘Turkye’의 사용은 Chaucer의 초기 작품인 1369년 ‘The Book of the Duchess’에 나온다. 구절 ‘land of Torke’는 15세기 사용되었다. 철자 ‘Turkey’는 1719년부터 사용됐다. 터키어 이름 표기 ‘Türkiye’는 1923년 유럽인의 사용 영향으로 채택되었다. 'Türkiye’는 고대 튀르크어  ‘Türk(강한, 터키인, 투르크 제국사람)’에 접미사 '-iye(주인, ~와 관계된)’가 합성된 말로 '-iye’는 아랍어 접미사 '-iyya'에서 파생했다. 중세 라틴어 접미사 '-ia'와 관련되어 'Turchia'라고 쓰이며 중세 그리스어 접미사 '–ία'가 붙어 '투르키아(Τουρκία)'라고 썼다. 후대 변형인 'tu-kin'은 중국인들이 B.C 177년에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 남쪽의 사람들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Türük'가 지명으로 쓰인 최초의 기록은 중앙아시아 돌궐의 오르혼 비문(서기 8세기경)이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김권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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