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1977)으로 시작된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을 내릴 ‘스타워즈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J. J. 에이브럼스 감독)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피소드 8)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단, 지난 8개 에피소드의 장대한 스토리를 꿰지 못하면 몰입이 쉽지 않다.

악의 세력인 퍼스트 오더의 수장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은 어떻게 해서든 레아 공주가 이끄는 저항군의 마지막 제다이 레이(데이지 리들리)를 파트너로 포섭하기 위해 계속 안간힘을 쓴다. 다스 베이더를 만들었던 팰퍼틴의 영혼은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렌에게 새 제국을 주겠다고 부추긴다.

저항군이 렌 측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해 시스(악의 기사) 추종자의 은거 장소 정보를 얻자 레아 공주는 레이, 핀, 포, 씨쓰리피오, BB-8 등을 작전에 투입한다. 그들은 키지미 행성에서 천신만고 끝에 시스어를 해석한 뒤 은거지가 엑세골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자유 세력의 총출동을 요청한다.

레이의 포스(초능력)는 점점 더 강력해지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갈등 역시 더욱 커져간다. 그녀는 렌을 죽이려 애쓰는데 렌은 맞서 대적하면서도 적대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크 사이드는 우리 본성 속에 있어. 넌 나처럼 돌아갈 수 없다”며 팰퍼틴을 죽이고 함께 왕좌를 차지하자고 설득한다.

‘깨어난 포스’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잡은 에이브럼스는 안정된 플롯과 전 시리즈를 아우르는 비주얼로 실력을 뽐낸다. 시퀄 트릴로지의 마지막인 만큼 에피소드 1~6에 등장했던 캐릭터나 장소를 개괄하는 영리함과 성의를 보인다. 게다가 기록될 만한 SF의 걸작들을 오마주하는 재치도 발휘했다.

데이빗 린치의 ‘사구’의 모래충과 유사한 거대 괴물의 등장과 포가 스파이스 밀수꾼이었다는 코멘트, ‘혹성탈출’을 연상케 하는 유인원 종족의 출현, ‘매드 맥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퀀스 등이다. 렌은 한 솔로와 레아의 아들이지만 아버지를 죽였고, 스승인 루크 스카이워커를 배신했다.

왜냐면 레아와 루크는 다스 베이더의 쌍둥이 자식이므로 벤으로 태어나 렌으로 개명하며 내면의 다크 사이드를 인정한 것. 레이는 성이 뭐냐는 질문에 “그냥 레이”라고 답한다. 성이 없다. 부모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렌과 레이는 텔레파시를 통해 대화를 나눌 뿐만 아니라 결투까지 할 수 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관계일까? 레이의 부모나 조부모는 누구일까? ‘스타워즈’가 역사가 매우 짧기에 신화가 없는 미국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신화 창조를 배후에 깔았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나킨과 다스 베이더, 벤과 렌, 그리고 레이까지 죄다 그런 미국의 근본을 투영하는 캐릭터다.

영국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인이 세운 미국. 그래서 국민은 유럽인과 유사하지만 결코 유럽일 수 없는 나라. 아메리카 대륙에 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가 공존하는 캐나다와도, 아즈텍 문명의 멕시코와도, 잉카 문명의 페루 등과도 하나가 될 수 없는 나라. 그런 고민이 레이에게 그대로 녹아있다.

서사의 구조가 신화라면 캐릭터의 고뇌는 칸트다. 이 시리즈는 죽어서도 후배들을 챙기는 영혼들을 종종 등장시켜왔다. 이번에도 팰퍼틴뿐만 아니라 한 솔로, 루크 등이 출몰하는 이유는 칸트의 합리론과 경험론의 종합, 관념론과 유물론의 화해, 혹은 유명론과 유물론의 통섭 정도로 볼 수 있다.

레이가 제일 두려워하는 자는 자신이다. 그녀는 츄이를 구출하기 위해 초능력을 쓰다가 하마터면 그를 죽일 뻔했을 정도로 통제력이 부족하다. 루크는 “피보다 진한 것도 있다”고 충고한다. 그건 칸트의 정언명령이고, 그걸 이루기 위해 레이는 니체의 위버멘시, 즉 진정한 제다이가 돼야 한다는 뜻.

혈연관계보다 더 끈끈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있을까? 돈을 매개로 한 관계는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영원할 수도, 진정성을 갖출 수도 없다. 단 부부관계는 된다. 그러나 사랑이 식고 나면 금전적 관계보다도 못하다. 그래서 ‘순수이성비판’에 의한 정언명령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자 법칙이다.

칸트는 ‘직관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레이와 렌은 분명히 우월한 초인적 능력을 타고났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렌이 일천한 경험(직관)만 앞세울 뿐 개념(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레이는 주변 환경을 통해 정립한 개념으로만 판단하려 한다.

레이는 관념론자, 유명론자라면 렌은 경험론자, 유물론자다. 레이는 자신이 아는 정의를 맹신하지만 렌은 권력만 추구한다. 퍼스트 오더의 내부자가 저항군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이유는 그런 렌이 싫어서다. 물과 기름 같으면서도 왠지 이란성쌍둥이처럼 닮은 이 두 사람의 관계의 전개가 꽤 재미있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신탁대로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오이디푸스에서 근친상간의 성적인 코드만 제거한 채 콤플렉스와 오만은 살린 건 눈치 빠른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 루크는 아버지 다스 베이더를 죽였다. 렌은 오만, 레이는 콤플렉스다.

흐트러진 퍼즐을 맞춰 나가는 재미는 레이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껏 고조된 후 레이-렌-팰퍼틴의 관계 변화에서 클라이맥스로 간다. 니체는 신을 죽였지만 칸트는 제거하면서도 삶의 영역에서는 교묘하게 부활시켰다. 과연 ‘스타워즈’의 진정한 위버멘시는 제다이일까, 시스일까? 1월 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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