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넘어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전경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새벽 바람이 목을 타고 넘어온다. 스카프와 모자를 눌러쓰고 걸어도 세찬 바람이 몸 구석구석에 머문다. 매서운 강바람이 겨울임을 알린다. 한강을 건너야 동작이다. 100여 년 전 한강을 어떻게 건너갔을까? 나룻배를 타고 추운 겨울에 건너기는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한양에서 한강을 건너는 왕의 행렬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한양도성 옛길을 따라 목멱산 아래 첫 동네를 지나니 궁금증이 물밀 듯 밀려온다.

목멱산 아래 둔지미 마을에서 한강을 바라보다

▲ 한강 넘어 순국선열의 영면처_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다리를 건너간다. 목멱산 아래 둔지산 둔지미 마을에서 국립현충원이 있는 동작진까지 동작대교가 놓여있다. 한강을 오가는 다리 중 동작대교만이 남단과 북단이 굽어 있다. 직선이 아닌 곡선 다리다. 왜일까? 숭례문 광장에서 출발하여 후암동 옛길 따라 이태원 터를 지나면 용산 미군기지가 가로 놓여있다. 아쉽지만 길이 멈춘다. 더 이상은 걸어서 갈 수가 없다. 금단의 땅 미군기지 안 만초천과 남단이 힐끗 보인다. 국경처럼 한강까지 성벽을 따라 걸어야만 동작대교를 마주한다. 그나마 걸어서는 다리에 접근 할 수도 건너 갈 수도 없다.

▲ 2020년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_공작봉가는 길 위에서

지하철을 탄다. 한 정거장이지만 가깝지 않다. 이촌역에서 동작역이다. 구가 바뀐다. 도성을 벗어나 한강을 건너야 갈 수 있다. 지하철역 출구와 출구 사이가 엄청 길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에 들어서니 왼쪽에서 오른쪽 끄트머리까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포근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한강을 바라보며 병풍처럼 펼쳐진 봉우리가 공작봉이다. 175m 공작봉 정상에서 장군봉이 이어진다. 아늑하다. 한강 너머 목멱산과 삼각산이 보이는 이곳은 왕릉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누구의 능이 있었던 걸까?

서달산에서 공작봉을 오르다

▲ 서달산 자락 달마사 가는 길_두꺼비 바위

동작릉이라 불린 이곳을 걸어서 오른다. 정문을 지나 산 정상에 오르니 서달산(西達山)이다. 서달산은 ‘달마(達磨)가 서쪽으로부터 왔다’는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화장산 또는 공작봉이라 불리우는 산이다. 산 봉우리들은 관악산에서 뻗어 내려와 삼각산을 향하다 한강에 멈추어 동작진에 닿는다. 산을 넘으면 흑석동과 사당동이 이어진다. 산마루는 동작동과 경계다. 600여 년 전 한강 넘어 이곳은 과천이었다. 관악산으로부터 내려 온 산 자락은 반포천을 지나 한강에 숨어든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삼각산과 마주하는 지역이라 힘이 솟구치는 지세다.

▲ 서달산에서 한강이 보이는 고요한 사찰_달마사

100여 년 전 목멱산 아래 용산에서 수원 화성을 가는 나루터의 하나다. 광나루,송파나루,동작나루,한강나루,노들나루,용산나루,마포나루,서강나루,양화나루,공암나루등 한강변 상류에서 하류까지 나루터가 즐비하게 있었다. 도성에서 나와 삼남지방을 가는 중요한 나루터가 동작나루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융릉을 향해가던 능행길이 바로 이 나루터다.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남원으로 가는 어사 출도길 역시 이 길이다. 동재기 나루터에서 동작동이 유래된 곳이다. 서울에서 과천,수원을 지나 삼남지방을 내려가는 교통의 요지가 동작진이다. 땅끝마을에서 금강 지나 서울을 올 때도 이곳에서 멈춘다. 수원을 지나 남태령을 내려와 한강에 배를 타고 가는 나루터가 바로 동작나루터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창빈 안씨의 묘역이다

▲ 공작봉 아래 470여 년을 지킨 창빈 안씨 묘_묘비석_상석과 장명등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들어오니 공작봉 아래는 모두 묘역이다. 1평도 안되는 무명용사 묘지부터 국가유공자 묘역,애국지사 묘역,장교와 사병 묘역,장군 묘역과 대통령 묘역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혼이 깃든 신성한 공간이다. 그런데 왕릉에도 거의 없는 신도비가 커다랗게 우뚝 서 있다. 쑥돌이라 불리는 예석, 곱게 써 내려간 글씨에 홀린 듯 발걸음을 멈춘다. 그 규모에 잠시 머리를 숙여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누구의 신도비일까?

▲ 한강 넘어 공작봉 아래 창빈 안씨_선조의 할머니 신도비 (2)

여주 영릉에서나 볼 수 있는 신도비의 크기와 규모에 한자를 따라 읽어본다. 조선시대 후궁 중 최후의 승자의 신도비다. 방계 출신 중 최초의 왕이 된 선조의 할머니, 창빈 안씨의 묘다.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이자 최초의 대원군인 덕흥대원군의 어머니다. 신도비를 지나 계단에 오르니 그 끝에 봉분이 있다. 묘 보다 크고 왕릉보다는 작은 규모다. 비석에는 이수와 귀부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혼유석과 상석,향로석과 장명등 및 망주석이 그의 지위를 짐작케 한다. 무인석만 없지 왕릉에나 있는 문인석 2개도 묘를 지키며 한강을 따라 중종이 잠든 선정릉의 정릉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500여 년 역사를 담은 동작동, 미래를 향해 날다

▲ 공작봉 아래 창빈 안씨 묘_원찰 호국지장사의 풍경

공작포란형의 산세는 그 누가 보아도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주인답다. 공작이 알을 품고 있듯 상서로운 기운이 돋는다. 동작포란형이라고도 하는데 앞에 흐르는 한강수가 용틀림하듯 용산을 보며 수려하게 뽐내고 있는 형국이다. 선정릉의 원찰이 봉은사이듯, 동작릉이라 불린 창빈 안씨의 묘 원찰은 갈궁사로 화장사라 불리었다. 한강 넘어 오래된 사찰로 동작진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절터다. 이곳에 올라오면 탁 트인 전망이 창빈 안씨 묘역과 국립현충원의 잠든 영혼을 감싸 안은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국립묘지가 되어 수많은 영혼이 잠들자 호국영령을 위해 호국지장사로 사찰 이름도 바꾼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천년 고찰 앞에 잠시 생각을 멈춘다. 바람 속 풍경소리에 마음이 숙연 해 지고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 공작봉 아래 창빈 안씨 묘_원찰 천년 고찰 호국지장사 가는 길

한강을 건너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검은 구릿빛 돌이 많다는 동재기 나루터에는 500여 년 전 역사가 숨쉬는 공간이다. 목멱산을 내려와 둔지미 마을에서 동작진으로 이어진 한강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얽혀있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역사 속 창빈 안씨 묘가 있었다. 하지만 동작대교가 제 역할을 못하여 근접하기 어려운 곳이였다. 한강을 끼고 동작진은 교통의 요지이며, 수운의 중심이었으나 미군기지로 인해 북단이 가로막혀 활용도가 떨어진 곳이었다. 앞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국립공원이 되면 용산과 동작이 새롭게 탈바꿈 하리라 생각한다.

관악산과 목멱산이 연결되는 서달산은 한강의 상류와 하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작과 용산이 이어지는 역사적인 공간에 새롭게 문화가 깃든 다리가 되어야 한다. 2020년 꿈과 미래를 품은 동네로 변화되길 빌며, 동작대교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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