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와 ‘엔드게임’을 연출한 루소 형제가 제작하고 ‘왕좌의 게임’의 브라이언 커크가 연출한 ‘21 브릿지: 테러 셧다운’은 소품처럼 출발해 점층법으로 사이즈가 확장되는 형사 미스터리 액션이다. 32살 레이는 전사한 전우의 동생 마이클을 친동생처럼 아끼지만 범죄에 대동한다.

둘은 동업자 토리아노에게서 코카인 30kg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밤 12시쯤 맨해튼의 모스토 와인 판매점을 급습해 창고 문을 연다. 그런데 코카인은 300kg이나 있었다. 그중 50kg만 챙겨 빠져나가려는데 문밖에서 4명의 경찰이 문을 두드리더니 강제 진입을 시도하고 지원 병력까지 가세한다.

하지만 중동 파병 경력의 두 사람은 준비한 중화기로 경찰 8명을 사살해 탈출한다. 내사를 받던 베테랑 형사 데이비스(채드윅 보스만)에게 이 사건이 배당된다. 현장엔 희생된 85관할 경찰의 동료들이 침통한 분위기로 모여 있고, 그들의 반장인 맥케나(J.K. 시몬스)는 데이비스에게 비우호적이다.

맥케나는 데이비스에게 홀로 딸들을 키우는 미혼모 번스(시에나 밀러)를 파트너로 붙여준다. 수사팀은 금세 범인의 정체를 밝힌 뒤 FBI의 도움을 얻어 21개의 다리, 터널, 강 등을 봉쇄하고 기차의 운행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꺼내든다. 레이는 코카인을 마약상 호크 타일러에게 100만 달러에 판다.

독 안에 든 쥐 신세인 그들은 한 범죄자를 찾아가 탈출을 위한 새 신분증을 만드는데 85관할 소속 켈리 등의 경찰이 급습한다. 그 정보를 들은 데이비스와 번스는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다. 켈리는 어떻게 그 은밀한 장소를 금세 파악할 수 있었을까? 희생된 경찰들은 밤 12시에 왜 그곳에 갔을까?

일단 주연배우들의 연기에 빈틈이 없다. ‘블랙팬서’ 보스만과 ‘위플래시’의 광적인 교수로 인상 깊은 시몬스, 그리고 밀러의 연기 대결은 꽤 탄탄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세계 주식의 중심지인 맨해튼을 장이 열리기 전 잠깐 봉쇄한 채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충분한 재밋거리.

어둠이 깔린 맨해튼의 뒷골목을 누비는 마이클과 그를 쫓는 데이비스의 육탄전과 심리전은 짜릿하다. 미스터리의 결과는 클리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단점임에도 불구하고 킬링타임용으로 특별하게 흠잡을 데가 별로 없다. 데이비스는 용의자에게 총을 마구 쏴댄 걸로 경찰 내부에서 꽤 유명하다.

그래서 내사를 받던 그는 “남북전쟁 땐 장전만 하는 군인이 있었다. 베트남전쟁 땐 30%만 사격을 했는데 나머진 뭘 했냐”고 묻는다. 번스가 자신에 대한 소문의 진실을 묻자 “난 먼저 쏜 적 없다”고 부인한다. 그는 이성의 진리와 계시의 진리라는 이중의 진리를 주장한 프랜시스 베이컨을 믿는 듯하다.

그가 번스에게 대답한 내용은 진실은 소문이나 추측과 다르다는 것이다. 베이컨은 사람이 과오를 범하게 되는 나쁜 습관으로 4개의 우상을 예거했다. ‘동굴, 종족, 시장, 극장의 우상’이다. 다수가 그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은 다분히 시장의 우상이다. 그는 풍문이 만들어낸 폭력적 이미지로 소비된다.

마이클은 데이비스에게 “총을 쏘기 전에 경고한 경찰은 처음”이라며 놀란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생존의 본능과 직업의 윤리 사이의 간극이다. 이원론을 초월한 일원론으로의 도약. 경찰은 투철한 준법정신과 공무원으로서의 윤리관에 기초해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해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도 사람이다. 중무장한 용의자를 검거하려 할 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저항하면 사격하겠다고 경고한 다음에 용의자가 발포하면 그때야 대응사격을 하는 게 원칙이겠지만 매번 그렇게 하다간 절대로 정년퇴직할 수 없을 것이다. 데이비스는 그런 경찰의 고민을 한몸에 담아낸 표상이다.

그건 마이클로 대표되는 흉악한 범죄자도 마찬가지다. 레이와 마이클은 모두 뛰어난 해병이었다. 레이는 매우 절친한 전우를 작전 중 잃었다. 마이클은 형의 뒤를 이어 훌륭한 해병이 되려고 입대했지만 결국 명령불복종으로 불명예제대했다. 상관은 분명히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이원론은 정반대의 두 가지가 공존하는 양가성이다. 선과 악, 흑과 백 같은 식인데 더 나아가 선해야 하는 경찰 인격에 현존하는 선과 악, 비루해야 할 범죄자의 내면에 깃든 선한 영혼과 악령 등으로 발전한다. 맨해튼은 부의 상징 월스트리트가 있는 금융의 중심지이자 할렘이 공존하는 이원론.

킬링타임용으로 손색없으면서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자본주의의 양면성에 대한 서늘한 교훈을 느낄 수 있다. 데이비스가 경찰이 된 이유는 존경받는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마약중독자에게 얼굴이 짓이긴 채 총살당한 데 있다. 복수심, 마약 범죄자에 대한 증오, 영웅 심리적 공명심 때문일 것이다.

그가 먼저 발포한 적이 없는 건 공명정대한 책임감 때문이지만, 어쨌든 내사까지 받았다는 사실에서 매우 폭력적이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경찰의 책무에 대해 ‘사람들의 눈 속에서 악마를 보는 것’이라고 자주 뇌까린다. 천사와 악마는 인간의 상상이 아니라 인간 자체다.

사람의 내면엔 천사와 악마, 오성과 본능이 공존한다. 단 이성과 인격이 앞서느냐, 본능과 욕심이 강하냐의 차이일 뿐. 민주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만 봐도 이원론이 맞다. 음향 효과가 액션을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삶의 가치관과 돈의 정체성을 묻는 스릴러다. 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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