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태수(안재홍)는 국내 3대 로펌 중 하나인 JH로펌의 수습 변호사다. 로스쿨 동창은 당당히 정식 변호사로 근무 중이지만 그는 수습이라 락원그룹 민 이사의 재판이 아닌, 구치소 접견이나 해야 하는 신세. 시위대에 포위된 JH 황 대표(박혁권)를 보고 구해준 인연으로 드디어 그의 시야에 들어간다.

황 대표는 큰 고객 가브리엘이 인수한 동산시의 동물원 동산파크의 경영난을 해소하라며 태수를 새 원장으로 앉힌다. 동물원엔 전임 서 원장(박영규), 수의사 소원(강소라), 사육사 건욱(김성오)과 해경(전여빈)만 남았다. 태수는 그들과 회식을 한 뒤 서 원장과 함께 기숙사로 귀가하다 깜짝 놀란다.

전 직원 하나가 자기 소유라며 가져가던 호랑이 박제를 보고 진짜 호랑이인 줄 착각한 것. 다음날. 동물원에 관람객을 끌어모을 대형 동물은 모두 빚잔치로 팔려나가고 작은 동물만 남은 걸 고민하던 태수는 어젯밤의 경험을 바탕으로 큰 동물의 탈을 제작해 관람객들을 속일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는 친구의 소개로 뛰어난 탈 제작자 고 대표를 만나 북극곰, 사자, 고릴라, 나무늘보 등의 탈을 제작해 4명의 직원들에게 입혀 연기하게 만든다. 대대적인 홍보를 거쳐 야심찬 재개장을 하지만 손님은 그리 폭발적이지 못하다. 북극곰을 연기하던 연로한 서 원장이 지치자 태수가 직접 탈을 쓴다.

힘들게 연기하던 태수는 갈증을 느끼고, 손님들이 사라진 걸 확인한 뒤 조금 전 한 짓궂은 손님이 던진 콜라병을 집어 들어 마신다. 그런데 한 손님이 그걸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찍어 SNS에 올린 후 동물원은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대거 몰려들게 된다. 해경은 근처 편의점주 성민과 사귄다.

해경은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성민은 이별을 통보하고, 해경은 그의 전화를 안 받는다. 참다못한 성민이 직접 동물원을 방문해 놀라운 비밀을 확인한다. 동물원이 잘 되자 땅값이 상승한다. 락원그룹 민 상무(한예리)는 황 대표에게 그 부지를 인수해 일대에 대형 리조트를 세우겠다고 제안하는데.

HUN 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해치지 않아’(손재곤 감독)는 가짜 동물로 동물원의 잃어버린 관람객을 다시 끌어들인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지만 관람하고 나면 납득이 될 만한 플롯이라 아기자기한 웃음을 주는 각 시퀀스에 매료될 만하다. 단, 건욱, 해경, 성민의 신파는 감내할 숙제.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탈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연기하는 사자와 곰이 수많은 눈을 속일 수 있을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태수는 “세상 그 누구도 동물원에 가짜 동물이 있을 거라 생각 안 할 것”이라며 뻔뻔스럽게 사기 프로젝트를 강행군한다.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범주화의 지각의 오류다. 고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교부터 엠페도클레스, 플라톤, 프랜시스 베이컨, 니체에 이르기까지 설파한 ‘동굴의 비유’다. 동굴에 갇혀 살아온 ‘우물 안 개구리’들은 동굴에 비친 그림자가 진실인 줄 착각한다는. 세상엔 거짓, 허상, 왜곡이 난무하기에 섣부른 선입견은 금지다.

유명한 CF에서 차용한 콜라를 마시는 북극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산음료는 건강에 유해한 패스트푸드의 대표다. 북극곰은 인간의 환경 파괴로 멸종 위기에 놓인 대표 종이다. 인간이 동물의 생태계를 교란해 더 이상 먹을 물(생존의 모든 조건)이 없게 되자 곰은 연명을 위해 콜라라도 마신다.

당장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콜라만 먹다 보면 결국 제 명대로 못 산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 운운하는 가식적인 민 상무는 돈을 위해서라면 생태계는 물론 타인의 생존마저도 아랑곳하지 않는 비열한 재벌이다. 이 영화는 드러내놓고 환경 보호, 특히 동물과의 공존을 목청껏 외친다.

12세기 말 아시시의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상속받을 재산까지 포기한 채 가톨릭에 귀의해 평생 청빈하게 산 성 프란치스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평소 새들에게 설교를 하고 마을을 습격한 늑대를 공격하지 말고 먹이를 줄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더 거슬러 신비주의자 피타고라스까지 연결된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동물로 계속 거듭난다는 윤회를 주장했다.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혈연관계라고 설파했다. 그러니 길을 가다 만나는 동물들을 붙잡고 설교하길 주저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 신비주의를 믿건 안 믿건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는 언명은 지극히 당연한 이 시대의 교의다.

소원은 20년 전 이 동물원에서 북극곰 까만코를 보고 반해 수의사가 됐다. 구속에 의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신경질적으로 변한 까만코는 케이지에 갇힌 채 살고 있다. 소원은 까만코를 자연에 돌려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이 능력은 부족한데 욕심만 많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후회하고 있다.

해경은 직장 생활 5년간 모은 3000만 원을 성민의 편의점 인수에 빌려줬다. 그녀는 사랑이라 믿었지만 성민은 자신에게만 진실하기 위해 거짓을 말했다. 태수의 원장 취임 기념으로 황 대표가 빨간색 벤츠 오픈카를 마련해주는 건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프로파간다를 뜻한다.

동물원에 감사를 나온 황 대표의 비서에게 태수는 “주말이라 사람이 없다”고 엉뚱한 변명을 한다. 북극곰 탈을 쓴 서 원장이 두려움에 떠는 걸 보고 유치원생이 이유를 묻자 선생은 “북극곰은 추운 데 있어야 하는데 더운 데 있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코미디지만 가볍지 않아 볼 만하다.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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