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민족, ‘이스라엘(Israel)’ [김권제 칼럼]

김권제 칼럼니스트l승인2020.01.09l수정2020.01.0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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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이스라엘국(State of Israel)은 서부 아시아의 남쪽, 이집트 동쪽의 유대인 국가이다. 남북길이 약 400km, 동서길이 가장 넓은 곳이 121km에 이른다. 북쪽은 레바논, 북동쪽은 시리아, 동쪽은 요르단, 남서쪽은 이집트, 서쪽은 지중해와 접해있다. 훌라 분지, 갈릴리 호, 세계 최고 염도 호수 사해로 흘러가는 요르단강이 만든 내륙분지로 주요 하천들이 유입된다. 옛날의 상록수림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조림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구릉지대는 상록관목(야생 관목식물)으로 뒤덮여 있으며, 네게브 사막에는 야생사막관목이 자란다.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해 아열대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가 교차한다. 여름인 4∼10월엔 덥고 건조하며, 11~3월까지의 겨울은 온난 다습하다. 해안은 여름에 32~37도까지 올라가고 예루살렘 등의 고원지대는 더욱 건조하고 서늘해 여름은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간간이 비가 온다. 북부 산악 끝자락은 최고 1,016㎜까지 오고, 북부 산악지대와 연안지역의 연강우량은 400㎜ 이상으로 10∼4월에 집중된다. 네게브 사막은 102㎜ 이하, 사해 남쪽 아라바 계곡은 25㎜ 이하다. 전 국토의 1/2 이상이 203㎜ 이하라 농업 지역은 305㎜가 넘는 북부에 있다.

역사를 보면, 이곳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적어도 10만 년 전으로 B.C 10000년경 식물재배 및 동물사육 증거가 있다. 선형문자는 B.C 2000∼1000년에 가나안인들이 창안했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인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때는 B.C 13세기말로 추측된다.

성경에 의하면, 유대인 선조 히브리인도 가나안으로 이주했으나, 그 자손은 이집트로 갔다. B.C 1550∼1200년에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다.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은 이 지역을 정복해 B.C 11세기 경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이스라엘은 B.C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누렸으며,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 후 B.C 930년경, 내란으로 남(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단됐다. 북 왕국은 B.C 722년 아시리아인에게 멸망했고, 유다 왕국은 B.C 587년 신바빌로니아에 망하며 B.C 625년까지 많은 포로들은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신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 제국 키루스 2세(B.C 550∼529)에게 망하며, 돌아온 포로들이 터전을 재건했다.

이곳은 다시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되었고 그의 사후, 마케도니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와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안티오코스 4세(B.C 175∼164)의 성전 모독에 반발한 유다 마카베오가 반란을 일으켜 B.C 141년 하스몬 왕조 때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었다. 그러나 B.C 65년 왕족 내분으로 로마 제국에 점령되며 유다 속주가 됐다. 로마 점령기에 그리스도는 A.D 30년경 십자가에 처형됐다. 66년 제1차 유다 전쟁과 132년 바르 코크바(제2차 유다 전쟁)난도 로마에 진압되며 시리아 속주가 됐다. 135년 반란 이후 유대 민족은 국가가 아닌 소수 집단으로 위축되어 건국시까지 방랑을 한다. 636년 동로마 제국이 칼리프에 패한 후 시리아와 예루살렘을 상실했고 오스만 제국 패망까지 이 지역은 이슬람 국가의 것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은 691년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세웠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졌지만,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아이 유브 술탄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 곳은1100∼1291년 이슬람교도들과 십자군이 번갈아 점령하며, 1200년경 예루살렘 왕국의 세력은 지중해 연안으로 국한된다. 이 왕국은 1291년 맘무크 술탄국에 멸망했고,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를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지배한다. 그뒤 1798∼99년 나폴레옹의 침략과 다시 이집트의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았다. 그후 팔레스타인은 1840년 다시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유대국가 건립 '시온주의'가 시작되어 1882년 최초로 시온주의자들의 정착촌이 세워졌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 오스만 제국은 중동 대부분을 잃고, 트랜스요르단(팔레스타인)은 1918년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이곳에 유대인과 아랍 유민들이 유입되어 공동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영국은 샤리프 후세인에게 아랍인들이 참전하면 칼리프 중심의 나라를 세워준다는 맥마흔 선언을 했고, 1916년 6월 5일 스스로 아랍의 왕임을 자처했다. 이후 1917년 유대인의 지원을 위해 영국의 외무장관 밸푸어가 가나안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중 약속은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 유발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지원하에 1947년 11월 29일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영국 철군 다음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이에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가 침공하며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15~1949년 2월)이 일어났다. 전쟁은 열세를 극복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이스라엘은 이후 제2차 중동전쟁(1956년 10/29~11/3, 시나이 전쟁)과 제3차 중동전쟁 (1967년 6/5~10, 6일 전쟁)에서 승리했다. 사다트가 이집트 대통령에 취임하며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이 점령중인 시나이 반도를 기습했지만(제 4차 중동전쟁) 패했다.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1967~1982년), 남레바논(1982~2000년), 가자 지구와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을 부분 합병했지만,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와의 국경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9년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1987년 이후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 아랍인들이 인티파다(봉기)를 일으켰고, 이에 이스라엘은 1992년 이후 아랍 국가와 팔레스타인 대표와 평화 교섭에 나섰다. 1993년 이스라엘과 PLO는 5년 동안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점차 확대한다는데 동의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세워졌으나 아직도 분쟁은 계속된다. 이스라엘은 1994년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민주 공화국 이스라엘은 성문헌법이 없고, 정치는 법률, 행정법령, 의회의 관행에 따른다. 최고권력기관은 단원제 국회로 120명의 임기 4년 의원은 보통선거로 선출된다. 국회가 선출한 임기 5년 국가원수 대통령은 의례적 역할을 수행한다. 총리는 다수당에서 직접선거로 뽑는다. 각료 임명은 다수 연합 정당간에 이루어진다. 사법부 최고기관은 대법원이며,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징병제로 유대교 신자들과 드루즈교 신자들은 남녀 모두 병역 의무를 지며 남자 3년, 여자 2~3년 복무한다. 평화주의 신념의 병역 거부는 정부의 검증을 거쳐 인정한다. 이슬람교 신자나 무종교인의 자원입대는 허용한다. 미국 지원하에 개발한 핵탄두를 네게브 사막에 감춰논 핵 보유국이다. 방위군은 내각 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 육, 해, 공군으로 구성된다.

광업 및 광물탐사회사, 국영철도회사 등을 소유한 정부는 수입관세로 기존산업을 보호한다. 경제의 가장 큰 부문은 공공사업과 지역사회사업으로 GDP의 1/4이며 노동력의 1/4이 종사한다. 1/5인 제조업은 노동력의 1/5 이상이 종사하는데, 주로 원료와 반가공 원료의 가공업 중심이다. 주요 제조품은 전자제품, 무기, 시멘트, 비료, 황산, 면섬유와 의류, 과일 주스, 밀가루, 기계류, 가공 다이아몬드, 자동차, 항공기, 정밀기계 등이다. 건설업은 GDP 약 5%로 그 중 주택건설이 대부분이다. GDP의 3%인 농업에 상당수가 종사하며 토지 1/5이 경작된다.

관개시설은 갈릴리 지방과 네게브 사막에 편중됐고, 키부츠(집단농장), 모샤브(공동농장)가 경작지의 3/4을 차지한다. 자몽과 오렌지의 세계 최고 생산국이고 멜론, 아보카도, 사과, 감자, 포도, 토마토, 바나나, 올리브. 밀, 사탕수수가 생산되며, 유럽 수출용 조생종 채소가 재배된다. 국토의 2/5 목초지에서 소, 양, 염소를 기르는데, 세계 최대의 칠면조 생산국이다. 갈릴리 호와 양어장의 민물고기와 지중해, 흑해, 대서양의 바다물고기가 어획량의 대부분이다. 세계적인 칼륨 생산국이며 한정된 구리, 인산염, 브롬칼리, 마그네슘 혼합물(사해), 석회, 소금, 석고, 점토 등이 채굴된다. 1950년대부터 개발한 석유는 매장량은 많지 않고, 네게브 북부와 지중해 연안에서 적은 매장의 천연가스를 추출한다. 전력은 주로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 연료로 발전한다.

관광업은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주요 수출품은 기계류, 다이아몬드 장식품, 과일, 채소, 섬유, 의류 등이며, 수입품으로는 다이아몬드 원석 및 투자상품, 연료, 윤활유, 소비재, 식품이 주종을 이루는데, 수입액이 수출액을 능가하고 있어 문제다.

2018년 인구는 845만명이다. 전체 4/5는 유대인, 나머지 1/5은 아랍인 등이다. 아랍인들과 네게브 사막 베두인족은 적지만 중요한 집단이다. 그 외 마론파, 사마리아, 아프리카계 히브리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있다. 이스라엘은 비시민권자 외국인 노동자들과 망명 신청자들로부터 이민을 받는다. 인구의 9/10가 지중해 연안 평원에 집중된 도시에 거주한다. 국적 소유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고 국회 의석의 일정 비율도 배당받는다. 그러나 교육과 취업의 기회도 적고 유대인에 비해 사회, 경제적 조건이 열악하다.

유대교가 약 80% 이상이며, 수니파 이슬람교, 기독교, 메시아닉쥬, 사마리아 종교 드루즈교 등이 있다. 가장 큰 그리스도교도 집단은 그리스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멜키트)이며, 로마 가톨릭과 동방귀일교도는 그보다 수가 적다.

공용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는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표기한다. 영어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데, 모든 도로 및 공공장소 표지에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를 함께 표기한다. 아랍어는 2018년 7월 19일까지 공용어로 지정이 되었는데, 유대민족법이 제정되며 특수지위 언어로 격하됐다. 소련 출신 유대인으로 러시아어 사용자는 아랍어 다음이다.

문맹률은 중동에서 가장 낮고 성인 문자해독률은 90% 이상이다. 5∼15세(1~12학년)까지 의무교육으로 무상인데, 초등교육 8년 그후 교육 4년제, 마지막 2년은 의무교육이 아니다. 학교는 국립학교, 종교학교, 아구다트이스라엘 신학교의 3가지 유형이다. 8개 대학과 여러 단과 대학이 있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킹사우드대학교와 함께 200위 안의 대학교다.

이스라엘은 종횡단거리가 짧아 자동차, 버스, 트럭이 주 교통수단인데, 잘 포장된 광범위한 도로망과 4차선 이상의 간선도로도 여럿 있다. 약 570km 철도는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나하리야 등을 중심으로 발달됐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최대 국제 공항이다. 엘알이스라엘항공사는 국제선을, 아르카이스라엘항공사는 국내선을 운항한다. 주요 항구는 지중해의 아슈도드, 하이파, 홍해의 엘라트 등이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로 세계 3대 종교의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나사렛, 갈릴리 지역들은 종교 관광지로서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방랑의 민족 ‘이스라엘(Israel)’은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Israel’은 1948년 독립 후 국가 이름으로 ‘Eretz Israel(the Land of Israel)’, ‘Zion’, ‘Judea’ 등이 거론됐지만 거절되었다. 히브리어 ‘yisra'él(Israel)’이 고대 그리스어 ‘Israḗl’로 유입됐고, 라틴어에서 ‘Israel’을 차용했다. 이 말이 고대 영어를 거쳐 중세 영어 ‘Israel’로 최종 정착했다. 성서 창세기 32장 29절에 Jacob에게 ‘yisra 'él(신성한 천사와 투쟁 한 사람, 하나님과 함께 지배한 사람)’이란 이름이 주어지면서 그의 후손들은 ‘Israelites’로, 그들의 땅(나라)은 ‘kingdom/land of Israel’로 알려졌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김권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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