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 시대 할리우드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걸작 ‘인셉션’이 오는 29일 9년 6개월 만에 롯데시네마 단독으로 재개봉된다. 워쇼스키 형제(당시)가 ‘매트릭스’의 시나리오를 쓰고 찍을 때 보드리야르를 끼고 살았듯 놀란은 플라톤을 베개로, 장자를 이불로 삼아 지내지 않았을까?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일로 먹고사는 미국인 코브(리어너도 디캐프리오)는 국제적인 수배자라 수년째 딸과 아들을 만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회사 CEO인 사이토(와타나베 켄)가 그에게 아이들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신분 세탁을 조건으로 인셉션을 제안한다.

사이토의 강력한 라이벌은 모리스 피셔 회장. 노쇠한 모리스는 곧 아들 로버트(킬리언 머피)에게 회사를 물려줄 상황인데 사이토는 코브에게 로버트의 생각에 침투해 회사를 쪼개도록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 코브는 팀워크가 좋은 아서(조셉 고든 래빗), 임스(톰 하디), 유서프를 불러 팀을 짠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내 맬을 아직도 사랑한다. 어린 딸과 아들은 장인 마일즈(마이클 케인) 교수가 돌보고 있다. 그는 파리로 날아가 마일즈를 만나 꿈 설계자를 부탁해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를 팀에 합류시킨다. 팀은 로버트가 비행기에 탄 10시간 동안 임무를 끝낼 작전에 돌입한다.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고 풍부하며 그만큼 쉽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그래서인지 N차 관람이 많은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용어를 아는 게 중요하겠다. 먼저 ‘시작’이란 뜻의 인셉션은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심어 새롭게 시작하게끔 만든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킥은 내 꿈에 타인을 들어오게 만들거나 타인의 꿈에 들어간 상태에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충격 장치다. 꿈속의 통증은 실제 육체에 전달되지만 죽음은 무의식이 꿈에서 깨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그러나 꿈속의 꿈에서 죽는다면 다르다. 일종의 코마 상태에 빠지는데 그걸 림보라고 한다.

코브의 팽이는 현재 꿈속에 있는지 아니면 현실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토템이다. 즉 신앙, 신, 규준이다. 킥의 장치로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사용된다. 피아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라 비 앙 로즈’의 주인공을 맡은 마리옹 코티아르에게 맬 역을 맡긴 센스가 재밌다.

이 영화는 크게 플라톤의 침대, 장자의 호접몽,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펜로즈의 계단이 근간을 이루는데 사실 이 4가지는 합치하는 지점이 있다. 즉 도대체 어떤 게 진짜냐는 역설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따르면 이 세상은 미메시스(모방, 재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다.

장자는 꿈속에서 호랑나비가 돼 훨훨 날아다녔는데 깨고 나서도 그 꿈이 워낙 생생해 도대체 자신이 사람인지, 호랑나비인데 현재 꿈에서 사람이 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시뮬라크르다. 그리스 신화의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아테네를 정복한 뒤 그들에게 매년 7명의 젊은이를 조공으로 받았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이 오랜 비극을 마무리하기 위해 희생양을 자처했는데 그에게 반한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가 실타래를 줘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따라 미궁을 탈출하도록 도왔다. 영화 속 아리아드네는 코브가 로버트의 생각을 추출할 수 있도록 꿈속에 미로를 설계한다.

펜로즈의 계단은 2차원에서는 구현이 가능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계인 3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즉 역설이다. 그건 곧 ‘내가 사람인가, 나비인가?’, ‘이 침대가 진짜인가, 재현에 불과한가?’, ‘내가 하는 행동이 선인가, 악인가?’라는 궁극적인 인식론을 묻는다. 그 모든 걸 그러모으는 탄착점은 림보다.

코마는 육체는 살아있지만 사실상 죽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림보는 꿈속에 창조한 또 다른 세상에서 잘 살고 있는 상태다. 영화에서 보듯 사이토는 림보 안에서 80대가 될 때까지 나름의 인생을 잘 꾸려간다. 결정적으로 놀란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 의식보다 더 중요하게 설계한다.

코브는 맬에게 “당신과 함께 늙고 싶다”며 청혼했고, 남매를 낳은 후 그들만의 꿈속의 세계를 창조하고 거기서 늙어갔다. 그러나 코브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현실로 돌아가길 원했고, 이를 위해 맬에게 인셉션을 실행했다. 그러나 맬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끝에 자살했고, 코브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후반부에 모든 팀원들이 킥을 통해 현실계로 돌아가고, 코브는 맬이 숨긴 사이토를 찾아 뒤따라가겠노라고 말한다. 그 후 림보의 시간으로 40년 정도 헤맨 끝에 해변에서 기절한 채 사이토의 부하들에게 발견된 시퀀스가 수미상관으로 장식된다. 이 엄청난 147분은 10시간의 비행을 통해 이뤄진 꿈이다.

80대의 사이토는 팽이와 권총을 지닌 채 나타난 40대의 코브를 몰라보고 “날 죽이러 왔는가”라고 묻는다. 그렇게 사이토를 무사히 귀환시킨 코브는 착륙을 앞둔 비행기에서 잠에서 깬 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오랜만에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한 그는 달려드는 딸과 아들을 품에 안고 행복을 느낀다.

그는 책상 위에 팽이를 돌린다. 팽이는 멈출 줄 모를 듯하더니 점점 동력을 잃고 살짝 흔들리지만 그림은 거기서 블랙아웃된다. 과연 그는 현실로 돌아온 것인가, 맬과는 또 다른 림보에 빠진 것인가? 우리의 삶은 선험적인 개념인가, 경험적인 게 현사실적일까? 생득관념이 맞을까, 습득관념이 맞을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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