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264, 이육사 [김문 작가]

김문 작가l승인2020.01.21l수정2020.01.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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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김문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4인과의 인터뷰-김원봉]

▲ 김원봉 : (사진 출처-김문 작가: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졸업생 중에는 민족시인 이육사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는 일찍부터 의열단에 가입했습니다. 이육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로 삼았습니다. 본명은 이활입니다. 이육사는 1933년 7월 14일 공작금 80원을 받고 서울로 잠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조선혁명간부학교 학생을 모집해 남경으로 보내는 일이었는데 1934년 3월 일경에게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의열단’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구국 항일의 지하운동에 몸을 던졌으니 일본의 요시찰 인물이 됐고 무려 17번이나 검거되고 참혹한 고문을 받았지요. 그러면서도 일제에 절대 순응하거나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김원봉은 1932년 10월에서 1935년 9월 3년동안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이끌면서 1930년대 중국에서 독자적인 활동공간 확충하게 된다. 이에 대해 김삼웅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 중국지역 한국독립운동진영은 인적자원이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일제의 식민통치 20여년이 지나면서 혹독한 탄압과 좌절로 읺해 해외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진영에 가담한 청년의 수가 해마다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25명에 달하는 정예 혁명분자 양성은 대단한 인적기반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중국 관내에서 김구 진영을 제외하고 김원봉이 가장 막강한 인력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김원봉은 이로써 의열단장이라는 일개 독립운동단체의 리더에서 중국 관내 독립운동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서게 됐다. 김구가 1930년대 중반 이후 민족주의 우파세력의 지도자였다면 김원봉은 좌파세력의 한 축을 이룬 지도자였다.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아내로 맞이한 박차정은 어떻게 해서 만났습니까.

“1930년 4월이었습니다. 비밀숙소에서 모처럼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의 영문판이었습니다. 그때 노크소리가 났습니다. 느리게 네 번, 빠르게 두 번, 안전하다는 암호였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동지 박문호가 젊은 여성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누이 동생이라고 소개하더군요. 이름이 박차정이고 나이는 21살이라고 하더군요. 달걀형의 얼굴에 눈에는 총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오빠를 통해 비밀리에 의열단과 연계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알고 보니 8세 때 강직한 선비였던 아버지는 왜놈들의 종이 되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뒤 혹독한 가난 속에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살아가면서 자식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박차정은 15세 되던 해 부산 동래의 일신여학교 고등과에 입학하면서 지하운동가로 나섰고 19세 때 근우회 중앙상무위원 겸 상무집행위원이 됐습니다. 근우회는 신간회와 함께 광주 학생시위와 서울 여학생 시위를 배후에서 지도했습니다. 그로 인해 구속됐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모진 고문으로 몸이 상한 채 풀려나 있다가 의열단에서 보낸 청년에 의해 중국으로 망명하게 됐습니다. 그때 첫만남 이후 나는 박차정을 화북대학에 입학시켰습니다. 대학교육을 받고 중국인들과의 교유의 폭을 넓히게 하려는 의도에서였죠.”

-애틋한 마음도 생기지 않았습니까.

“허허, 아니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박차정은 그때 한국 여성독립의 샛별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독립운동가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도울 것이 있다면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 인용했다>
약산 김원봉(이원규, 2005, 실천문학사), 경성의 사람들(김동진, 2010, 서해문집),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김영범, 1997, 창작과 비평사), 양산과 의열단(박태원, 2000,깊은샘), 약산 김원봉 평전(김삼웅, 2008, 시대의창)

▲ 김문 작가 –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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