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 겸 배우인 사모안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출하고 히틀러 역을 맡은 ‘조조 래빗’은 여러모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를 떠올리게 만드는 수작이다. 그만큼 슬프면서 더 많이 웃기고 더욱 많은 상념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판타지 코미디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 독일. 아버지가 이탈리아 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 10살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산다. 나치 ‘광팬’인 그는 히틀러에게 충성하기 위해 독일소년단에 입단하지만 조교의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에 겁을 먹어 놀림감이 된다.

땅에 떨어진 위신을 세우고자 교관 클렌첸도프(샘 록웰) 대위의 손에 들린 수류탄을 순식간에 낚아채 호기롭게 던지지만 나무에 맞고 되돌아와 터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는다. 얼굴엔 흉터가 남는다. 요키 등 많은 친구들은 당당히 입대하지만 조조는 고작 징집영장을 돌리고 금속 기부를 독려한다.

2층 방엔 누나 잉게가 살았었는데 요절했다. 그곳에서 웬 소리가 들려 확인하던 중 벽 한 쪽에서 비밀 공간을 발견한다. 문을 여니 누나 또래의 소녀가 있어 기겁한다. 그녀는 누나의 친구인 유대인 엘사(토마신 맥켄지)로 로지가 숨겨준 것. 엘사는 자신을 고발하면 엄마를 폭로하겠다며 협박한다.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는 수시로 나타나 조언을 해준다. 골수 나치스트인 조조에게 유대인과 한집에 산다는 사실은 매우 치욕스럽지만 유대인에 관한 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도움을 받는데 히틀러는 못마땅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게슈타포들이 집을 방문하는데.

와이티티는 마오리족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등 유럽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뉴질랜드인이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선 매우 특별한 작품일 텐데 히틀러 분장을 한 게 꽤 잘 어울린다는 게 재미있다. 히틀러는 조조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격이자 어그러진 욕망을 뜻한다.

나치에 대한 통쾌한 풍자가 골격을 이루는데 그건 곧 현대 정치에 대한 조롱이고, 종교적 광신도에 대한 비판이다. 조조는 식사 중에조차 정치 얘기를 화제로 삼는다. 로지는 “식탁은 스위스 같은 중립지대니 정치 얘기는 그만해”라고 점잖게 타이른다. 지하운동가인 로지는 이념을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조조가 나치의 전쟁의 광기와 정복의 야욕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아이답게 성장해 어른이 되는 등 인생을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반전운동은 은폐한 채 “삶은 신의 선물이니 즐겨라”라고 가르친다. 남편도 자신처럼 반전운동을 하다 죽었지만 조조에겐 전장에 있다고 속인다.

정치엔 조숙한(?) 조조는 그러나 실제론 심신이 미약하고 행동거지가 어설퍼 구두끈 하나 제대로 못 매 수시로 로지가 매준다. 로지가 조조를 평화롭게 가르친다면 엘사는 노골적으로 대립하면서 가르침을 준다. 조조는 유대인은 머리에 뿔이 달렸고, 여왕 ‘한 마리’가 알을 낳아 번식한다고 믿고 있다.

또 할례로 잘라낸 부위를 랍비의 귀마개로 쓴다고 주장한다. 그 모든 애국 행동은 독일의 구원자 히틀러에게 바치는 것으로 뱀의 마인드, 늑대의 체력, 독일인의 영혼이 근원이다. 나치 광신도인 여자 조교는 “난 독일에 자식을 15명이나 바쳤다”고 자랑하며 아이들을 가미카제 식으로 전장에 투입한다.

그런 환경에서 나치즘에 푹 빠진 조조에게 엘사는 나치가 감추고 왜곡한 진실을 하나하나 깨우쳐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 조교는 “남자는 용맹을, 여자는 임신하는 법을 배워”라고 강요하지만 엘사는 “사랑은 제일 강해”라며 총칼도 사랑을 막을 순 없다고 가르친다. 어느새 조조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금발이 아니라는 충격을 극복하는 데 3년이나 걸렸던 조조를 마음씨 곱고, 현명하며, 예쁜 엘사는 짧은 시간 만에 개종시킨다. 심심했던 아리안족 순종 조조는 유대인 엘사와 각자의 민족의 영웅들 이름을 대는 놀이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마음을 열고, 그녀의 가슴속에 들어간다.

조조는 극단주의에 대한 은유다. 이념이든, 신념이든, 종교든 극단적으로 치달아 다른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이단시하는 정치나 종교를 통렬하게 비웃는 장치다. 히틀러는 그런 종교적 맹신의 외화. 조조가 가진 선민의식은 종교의 맹점을 비웃는 장치다. 내용은 진지하지만 매 시퀀스마다 재미있다.

‘하일 히틀러’라는 소름 끼치는 구호가 훌륭한 코미디 장치로 쓰이는가 하면 수류탄으로 생긴 흉터를 피카소에 비유하는 유머까지. 히틀러가 조조가 고민하거나 화낼 때 담배를 권하는 것도 웃긴다. 나치의 프로파간다에 속아 하루빨리 어른이 돼 멋진(?) 나치당원이 되고픈 조조의 일그러진 욕망이다.

이렇게 매 시퀀스마다 폭소를 터뜨리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서스펜스를 느끼다가 울컥하게 된 후 계속해서 절로 눈물을 훔치게 된다. 특히 조조가 로지의 구두끈을 매줄 땐 코가 시리다 못해 아프다. 조조의 내면에 변화가 생길 즈음 히틀러가 ‘기생충’의 송강호처럼 인디언 모자를 쓰는 게 재미있다.

조조의 나치에 대한 충성심은 ‘기독교는 노예 도덕’이라던 니체나, ‘아내와 자식은 아버지 소유’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오역한 시대착오다. 조조와 로지가 자전거를 탈 때 패잔병들이 트럭을 타고 귀국하는 시퀀스는 ‘감각의 제국’ 같다. ‘공주교’가 판치는 요즘에 딱 필요한 영화다. 2월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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