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캐나다는 북미 북부의 연방국가로 수도는 오타와, 최대도시는 토론토이다. 동쪽에 대서양, 서쪽에 태평양, 북쪽에는 북극해가 접해있다. 국토가 러시아 다음 2번째로 크며 10개 주와 3개의 준주로 구성된다.

로키, 코스트, 로렌시아 산맥이 있고, 최고봉은 유콘 준주의 로건 산(5,951m)이다. 오대호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세인트로렌스 강, 최장 4,241km로 북극쪽 보퍼트 해로 흘러가는 맥켄지 강, 유콘 강, 프레이저 강, 넬슨 강은 세계 최장 40개 강에 속한다. 미국과 공유한 슈피리어 호와 휴런 호 외에 그레이트베어 호와 그레이트슬레이브 호는 세계 11대 호수이다. 약 200만개의 호수와 빅토리아 섬 등 수 많은 섬들이 있다. 미국과 접경 길이가 8,890k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캐나다의 모든 강과 호수의 물 절반은 허드슨 만과 허드슨 해협으로 흘러간다. 강은 급류와 폭포가 많은데,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 사이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대표적이다. 국토의 북쪽 절반은 툰드라로 사람의 거주지역은 미국과 국경에서 200∼300km 사이의 지대에 한정된다. 자연식생분포는 삼림 65%, 툰드라 20%, 초원 10%, 나머지 5%는 암반, 대륙빙하, 만년설로 덮여 식생이 없다.

태평양 연안의 해안산맥이 동쪽으로의 대기 흐름을 막아 습하고 따뜻한 태평양 기단은 진출하지 못한다. 그래서 산맥 배후의 내륙지방은 비나 눈이 많이 오지 않지만, 봄과 여름에 대기에 수분이 많아 겨울보다 강수량이 많다. 서쪽 태평양 연안은 해양성 기후라 온난하여 연중(연평균 2,500㎜ 이상) 특히 겨울에 비가 많다. 동쪽 대서양 연안도 내륙보다 연교차가 작고 강수량이 많다. 11월에 겨울이 시작되어 다음 해 4월에야 끝난다. 밴쿠버는 1월 평균 3℃, 7월평균 18℃ 정도이나, 내륙 프레리의 리자이나는 1월평균-18℃, 7월평균 19℃로 연교차가 심하다. 내륙으로 갈수록 눈이 많이 와서 로키 산맥과 세인트로렌스 만 부근에서 연평균 6,000㎜ 이상 온다.

역사를 보면, 수천년 간 인디언과 이누이트족이 살았던 캐나다는 1,000년경 유럽인들이 처음왔다. 1500년경부터 영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인 등이 뉴펀들랜드 연안에 조업하러 왔다. 프랑스는 1534년 자크 카르티에가 세인트로렌스 만에 도착해 캐나다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1604년 노바스코샤에 소규모 정착이 이루어졌고, 1608년 사뮈엘 드 샹플랭이 퀘벡에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본격적 식민화는 1600년대 중반 뉴프랑스사의 설립 때 시작됐다. 초기에는 모피교역이 식민지 개척을 촉진했는데, 중서부의 원주민과 프랑스인들의 모피무역이 성행했다. 그들 사이의 혼혈인을 메티스라 부른다. 영국인 존 캐벗이 16세기 후반 동부 해안 탐험을 시작했고 1670년 프랑스에 대한 대응으로 허드슨스베이사를 세우고 60년 전 헨리 허드슨의 허드슨 만 탐험을 근거로 캐나다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영국인들이 모든 모피교역을 장악하려 하면서 프랑스와 거의 1세기 동안 전쟁을 했다. 프랑스는 1713년 앤 여왕 전쟁(스페인 왕위전쟁)으로 노바스코샤와 뉴펀들랜드를 영국에게 넘겨줌으로써 최초의 영토를 상실했다.

이후 프랑스는 오하이오 강과 미시시피 강 유역을 개척했는데 이는 프렌치-인디언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전쟁 결과 1763년 프랑스는 북미 대륙을 잃었고 영국은 뉴프랑스를 퀘벡 식민지로 재조직했다. 미국 독립전쟁(1775∼85) 뒤 국왕파들, 성공회 성직자와 신도들이 탄압을 피해 이민와서 1784년 뉴브런즈윅을 세웠다. 퀘벡 국왕파들의 수효가 증가하자 영국은 1791년 캐나다를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로 분리하고 양쪽 지역에 영국 헌법이 보장한 권리와 영국제도를 적용했다. 로어캐나다의 다수인 프랑스인들은 영국의 통치 아래 정치적 불만과 경제문제로 1837년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영국 정부는 1841년 양쪽 지역을 통합했고, 1848년 식민지 캐나다에 자치정부를 허용했다. 퀘벡주는 영연방으로 편입됐지만, 영국 정부는 정치적 독립 대신 프랑스인들의 로마 카톨릭교회와 프랑스어 사용 등 지역 내 문화와 정체성을 보장했다.

1800년대 중반 영토 확장을 꾀하는 캐나다와 캐나다 내륙 방어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영국의 이해가 맞아져 연방 형성 운동으로 이어졌다. 1867년 영국령 북미법으로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퀘벡, 온타리오가 통합되어 캐나다 연방을 형성했다. 이어 타 5개 주가 연방에 가입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영토가 확립됐고, 1949년 뉴펀들렌드주가 가입하여 현재의 10주, 3준주의 캐나다 연방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갈등이 19세기 말까지도 계속되었다. 서부의 프랑스인들 반란은 실패로 끝났으나 지도자 루이 리엘은 순교자와 영웅이 되었다.

캐나다는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적용으로 대영제국 내 자치령이 되어 행정적으로 본국과 분리됐다. 1951년 12월 정식 국명을 캐나다 자치령에서 캐나다로 변경했다. 1976년 르네 레베크의 퀘벡당이 퀘벡 주 선거 승리로 분리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1980년 퀘벡 주 유권자들은 레베크의 '주권연합'안을 거부했으며 1985년에는 자유당이 다시 퀘벡 정권을 장악했다. 1982년 캐나다 법으로 영국은 캐나다에 통치권을 이양했고 두 나라의 법적 연관성들을 완전히 분리됐다. 퀘벡의 정치적 자치권을 확대를 위한 1992년과 1995년의 국민투표는 기각되었다.

경제는 민간부문이 주도하고 우편, 전기, 일부 항공 및 철도만 국가가 운영한다. 경제는 미국에 의존해서 미국의 경제동향은 농업 이외의 산업에 영향이 크다. 주요 산업은 항공, 우주, 자동차 부품 제조, 제지, 철강, 기계, 에너지 산업, 광업, 화석연료 채굴, 임산, 농업, 어업, 관광업, 영화 산업, 멀티미디어 산업, 하이테크 산업, 게임 제작, CG, 애니메이션이다. 제조업 특징은 외자 특히 미국 자본의 설립 기업 생산 제품이 캐나다 제품 생산액의 30%를 넘으며, 생산액은 캐나다 총생산의 1/5이다.

동토에 지하자원이 많아 고수송비 및 개발이 어렵지만 정부는 지하자원 개발에 적극적이다. 세계 10위권 광물이 17개인데 니켈, 아연, 석면, 우라늄, 염화칼슘, 유황, 몰리브덴연광의 생산량이 1, 2위를 다투며, 석유(2위 부존량), 구리(8위), 철광석, 텅스텐(3위), 칼륨, 염화나트륨(5위), 황, 석회, 은, 카드뮴, 코발트(5위), 마그네슘, 인, 금(7위), 납(5위), 백금, 안티몬(8위) 및 천연 가스(3위), 다이아몬드(6위), 석탄, 갈탄(9위) 등이 많이 생산된다. 광물 수출액은 수출 총액의 1/3 이상이다. 수력 발전은 미국 다음 세계 2위지만 송전비용 때문에 점점 원자력이나 석탄으로 대체된다. 캐나다는 대량으로 원유를 수입하는데 유정 생산이 아닌 오일샌드(oil sand)로 부존하기 때문이다. 천연 가스는 주로 미국으로 수출한다. 광업부문의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2% 이하로 광업은 미국 자본에 예속되어있다.

경제 비중이 큰 농업 인구는 3.4%로 감소하나 생산성은 상승하고 있다. 국토의 5%만이 작물재배나 가축사육에 적합하다. 곡류, 감자 등 농산물 중 오대호~로키 산맥의 기름진 평탄한 프레리 3주에서 생산되는 경질 밀은 질이 좋고 생산량의 3분의 2를 수출한다. 낙농과 가축 사육도 왕성해서 소, 돼지, 양이 많이 생산된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는 온실 농업이 성행한다. 온타리오 주 최남단에서 담배와 과일 생산이 많은데 담배는 영국으로 수출된다. 국토의 절반이 숲으로 그중 일부가 침엽수림대인 타이가로서 임산자원이 풍부하다. 임업 인구는 적지만 임업은 전 수출액의 30%를 차지한다. 그중 펄프, 제지업은 생산액, 취업자수, 수출액 등 캐나다 최대 산업이며 세계 신문 용지 수용의 1/2을 공급한다. 수산자원은 빈약하지만, 연어, 송어, 참치가 많이 잡힌다. 새우, 대구 중심의 대서양 연안에서 청어, 정어리 등이 35%를 차지하고, 오대호는 10%에 불과하다. 어업인구는 1%도 안되지만 많은 수산물을 수출한다.

20만명 정도였던 원주민은 이민자들에게 내몰리며 감소했지만 1900년대에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인구는 2018년 기준 3,695만명으로 82%가 도시에 거주한다. 전체 12%인 남쪽 국경 지역에 인구의 90%가 사는데 이중 동쪽 평야지역에 3/4이 살고, 나머지는 서부에 산다. 백인은 86.9%인데 영국 19.2%, 프랑스 15.7%, 스코트랜드 14%, 아일랜드 12.9%, 독일 9.0%, 이탈리아계가 4.3%이다. 아시아계는 전체 9%로 온타리오주 남부와 밴쿠버 지역에 거주하며, 원주민은 3.3%, 흑인은 2.8%이다. 캐나다 원주민은 인디언, 이누이트, 메티스이다. 법 제정 당시 'Indians'를 현재는 'First Nations(선주민)'으로 지칭한다. 원주민 중 62%가 퍼스트네이션, 30%가 메티스, 5%가 이누이트이다. 영국계가 뉴펀들랜드에서는 약 80%인 반면 퀘벡 주에서는 5%이고, 퀘벡 주의 80%인 프랑스계는 뉴펀들랜드, 브리티시컬럼비아 및 준주들에서는 3% 미만이다.

캐나다인의 77%가 기독교 신자로 이중 가톨릭교도 46%, 캐나다 연합교회교도 16%, 영국성공회교도 10% 정도이다(1990). 이밖에도 개신교 교파나 유대교, 그리스 정교 등의 교도도 상당수 있다. 캐나다인의 17%는 무교, 나머지 6%는 힌두교, 시크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이다.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다. 2007년 12월 조사에서 모어는 영어 57.8%, 프랑스어 22.1%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1969년 7월 7일 공용어법으로 프랑스어가 영어와 동등해졌고 프랑스어 사용 인구는 약 600만 명이다. 캐나다인의 98%가 영어나 프랑스어 중 하나를 구사한다. 캐나다의 모든 고등학교에서는 영어가 필수 과목이고,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이 있다. 제1언어로 프랑스어 사용자 중 80%가 퀘벡주에 거주한다.

국토가 넓어서 주 교통 수단은 항공기이다. 인구 밀집 지역만 도로망이 발달했고, 변방의 도로는 목재회사나 광업회사가 건설했기에 이용하기 어렵다. 최초의 캐나다 횡단고속도로가 1962년 개통됐는데 세인트존스 시에서 빅토리아 시까지 8,000km이다. 3명당 2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화물 트럭 수송량도 상당하다. 철도는 주로 최대 국영 캐나다국립철도회사와 민간합자 캐나다퍼시픽철도회사가 운영한다. 1885년에 개통한 대륙횡단철도에서 파생한 철도망이 발달했다. 이밖에 소규모 지방 철도회사들이 남북을 연결한다. 지하철은 토론토와 몬트리올 시에서 운영된다. 화물 수송에 수상교통도 많이 이용된다. 내륙 수로 중 대서양과 내륙을 연결하는 세인트로렌스~오대호 수로가 중요하다. 대서양~슈피리어 호까지 3,747km로 여러 운하의 16개의 갑문은 수위를 조절해서 177m 오대호와 몬트리올 사이의 수위 차에도 배가 지나간다. 에어캐나다와 캐나다항공이 국제선과 국내 항공의 중추를 이룬다. 기타 5개의 민간항공사가 국내선에 취항하고 700개 이상 소규모 항공사가 오지를 연결한다.

양원제 국가로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며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형식상 캐나다 총독이 영국 국왕을 대표하며 임기는 6년이다. 행정은 연방 정부, 입법은 연방 의회, 사법은 연방 법원의 3권 분립이다. 연방 정부는 연방 하원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며, 내각의 수장 총리는 총독의 임명으로 연방 하원 내 다수당 대표가 겸임한다. 내각은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회계규정, 행정조항 등 법안을 가결한다. 연방 의회는 국왕, 상원,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정부가 임명한 104명이며 임기는 75세까지이고, 하원은 선거로 선출되는 295명으로 임기는 5년이다. 의회는 국군통수, 무역과 상업, 은행, 우편, 특허권, 저작권, 조세 등과 관련된 법을 총괄한다. 그밖에 주의회의 영역이 아닌 국가의 안녕과 질서 등을 위한 입법권을 가진다.

캐나다는 1949년 NATO 창립 회원국이며, 북미방공사령부에도 참여한다. 유엔의 군사작전 일환으로 여러번 해외로 군을 파병했고, 그중 최대 규모는 한국 전쟁이었다. 경찰은 캐나다 기마경찰대인 연방경찰과 주경찰, 시경찰로 조직된다. 기마경찰대는 1873년 노스웨스트 지역 치안을 위해 조직되었으나 캐나다 전역의 치안을 담당한다. 캐나다는 지원병제로 국방장관이 3군의 통솔권을 가진다. 군은 육군, 해군, 공군, 기동부대로 구성되며, 병력은 10만 명 정도이다. 장비는 1,400여 대 군용기와 34척의 군용선박 그리고 161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문맹자는 1% 이하고 의무교육은 6∼16세이며 교육비 지출은 GNP의 7.2%정도이다. 공공교육은 주정부 책임이지만 유콘 및 노스웨스트 준주의 학교와 캐나다 전국의 원주민 교육, 교도소 재소자 교육, 군인 및 군인가족의 교육, 사관학교, 직업훈련학교와 대학교의 재정 지원을 연방정부가 한다. 65개 이상 종합대학과 180개 이상 전문대학이나 예술대학이 다양한 고등교육을 행한다. 대규모 대학교는 몬트리올대학교, 토론토대학교,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등이다. 가장 오래된 대학은 퀘벡 주 라발대학교로 프랑스 식민시대에 설립되었다. 영어권 대학은 미국 독립 후 설립되었다. 미국과 달리 캐나다에는 사립대학이 없다.

캐나다의 유명 관광지는 오대호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서부 로키산맥 및 호수들이다. 역사가 짧아 고풍스러움은 없지만 여러 볼거리가 있다. 밴쿠버 스탠리 공원, 토론토 CN타워, 카사로마(영주의 성), 신청사, 구청사, 킹스턴의 천섬, 앨버타 요새, 몬트리올 성요셉성당, 노틀담 성당, 퀘벡 시의 올드 퀘벡(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샤토 프롱트낙, 헬리팩스 요새, 캘거리 요새, 오타와 국회의사당 등이 있다. 국가적인 보물 보관을 위해 국립자연과학박물관, 국립과학기술박물관, 국립 캐나다 미술관 등 4개 박물관은 연방정부가 관리한다. 수 많은 주 운영 박물관과 개인 운영 박물관이 있는데 주 토론토의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과 서스캐처원 주의 자연사박물관 등이 유명하다.

북미의 최대국 ‘캐나다(Canada)’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Canada’는 세인트 로렌스 이로쿼아 부족어로 ‘kanata(마을, 정착)’가 프랑스어 ‘Canada’가 되면서 최종 정착을 했다. 1535년 퀘벡시의 토착민이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에게 스타다코나 마을을 ‘kanata’라고 직접 지칭했다. 이후 카르티에는 ‘Canada’를 특정 마을과 도나코나(스타다코나의 족장)가 지배하는 지역 전체를 함께 지칭하는데 사용했다. 1545년부터 유럽인들은 지도와 책에서 세인트 로렌스 강에 있는 이 작은 지역을 ‘Canada’라 언급했고, 16~18세기 초부터 ‘Canada’는 세인트 로렌스 강에 있는 뉴 프랑스의 일부분을 지칭했다. 1791년 이 지역은 영국 식민지로서 ‘Upper Canada’와 ‘Lower Canada’로 불렸고 1841년 자치정부가 될때까지 합쳐서 ‘the Canadas’로 명명되었다. 1867년 ‘Canada’는 연방정부의 새로운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