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인간이 생존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즉, 옷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옷을 사면 되고, 한끼 식사가 문제가 있었다면 다음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住)”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쉽게 바꿀수도 없고, 기회비용이 막대하여 하자가 생기는 경우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질에 현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집이라 함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 행하는 필수적인 활동이 이루어 지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즉, 직장 생활이나 학교 생활에서 얻은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정신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입니다. 하다못해 우리가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주인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들만의 집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택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터전이며, 노인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께서는 남향집을 단연코 선호하셨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다녀보면 오히려 동향이나 서향의 주택이 많이 있고, 남향주택은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는 일조량(日照量)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사시사철 일조량이 풍부하였기에 일조에 대한 궁핍함이 상대적으로 덜하였고, 따라서 보다 양질의 일조량을 얻을 수 있는 남향을 선호한 것입니다. 반면 유럽은 일조량이 부족하므로 보다 많은 일조량을 확보할 수 있는 동향과 서향의 집을 선호하는 것일 겁니다.

결국 집의 조건을 결정함에 있어서 일조량이 얼마나 중요한 조건을 차지하는 지는 굳이 의학적인 전문지식을 들이대지 않더라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집의 고려요소 중 핵심인 일조라는 기능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침해된다면 법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될까요? 이에 관하여 최근 의미있는 판결이 선고되어서 지면을 통하여 소개시켜 드리려 합니다.

피고는 2007. 10.경 대구 일대에 지하 2층, 지상 28층 규모의 아파트 9개동 854세대를 신축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2012. 10. 13. 아파트 최상층 골조를 완성하였고, 2013. 8. 이 사건 공사를 완공하였습니다. 원고들은 이 사건 아파트 주위에 있는 건물 및 토지를 소유하는 자들입니다. 원고들은 이 사건 아파트건물신축으로 인하여 일조방해 및 조망권 침해등을 이유로 피고들을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원고들이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① 기존에 원고들의 건물에서 받아 누려왔던 일조권이 피고의 건물 신축으로 인하여 침해당하였다는 주장, ② 원고들이 대구 앞산을 조망할 수 있었는데, 이 사건 아파트로 인하여 더 이상 앞산을 볼 수 없는 조망권침해가 발생하였다는 주장, ③ 사생활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등의 인격권 침해를 받게 되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주장 및 ④ 결국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원고들의 건물 등의 시가하락으로 인한 재산상,정신상 손해를 받게 되었다는 주장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조권침해에 관한 판단 판단

건물의 신축으로 인하여 이웃 토지의 거주자가 직사광선이 차단되는 불이익을 받은 경우, 그 신축행위가 정당한 권리행사로서의 범위를 벗어나 위법한 행위로 평가되기 위하여는 일조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인용되는 수인한도를 넘어야 한다.

이 경우 건축법 등 관계법령에 일조방해에 관한 법규가 존재한다면 그 기준 충족여부가 위법성을 판단함에 중요한 판단자료가 되지만, 이러한 법정기준은 최소한도의 기준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구체적인 사건에서 신축행위가 공법적 규제를 준수하였더라도, 현실적인 일조방해의 정도가 현저하게 커 사회통념상 수인한도를 넘은 경우에는 위법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의 건물신축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동짓날을 기준으로 09시부터 15시까지 사이의 6시간 중 일조시간이 연속하여 2시간 이상 확보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08시에서 16시까지 사이의 8시간 중 일조시간이 통틀어서 최소한 4시간 이상 확보되지 않게 된 사실이 인정되므로, 원고들은 이 사건 각 건물의 소유자로서 이 사건 아파트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수인한도를 넘는 일조방해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들에게 이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위와 같이, 법원은 일조권 침해에 관하여는 뒤에서 살펴볼 조망권과 인격권 침해와는 다르게 피고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는 서두에서 언급해드린 대로, 일조권이란 것이 인간의 주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법원이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원인인 조망권 및 인격권 침해부분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조망권 및 인격권 침해

어느 토지나 건물의 소유자가 종전부터 향유하던 경관이나 조망이 생활이익으로서 가치를 가지기 위하여는 법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즉, 특정의 장소가 그 장소로부터 외부를 조망함에 있어서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와 같은 조망이익의 향유를 중요한 목적으로 하여 그 장소에 건물이 건축된 경우와 같이 당해 건물의 소유자나 점유자가 그 건물로부터 향유하는 조망이익이 사회통념상 독자적 이익으로 승인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 특정 장소로부터 향유되는 조망의 이익이 이러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각 건물의 소유자들에게 법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는 조망이익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조망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인격권 침해 주장에 관하여 보건대, 이 사건 아파트로 인하여 이 사건 각 건물에 거주한다는 원고들의 사생활이 수인한도를 초과하는 정도로 침해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인격권 침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이번 판결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고층건물의 등장으로 인하여 개인이 행사하는 재산권의 행사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 그 위법성에 관하여 내린 판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법원이 내세우는 잣대는 이른바 “수인한도론” 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된 수인한도론이라는 것도 결국에 있어서는 법의 일반원칙의 구체화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사법체계에서는 그들간에 계약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으로 해결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불법행위책임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어느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이 없는 것처럼 수인한도론 이라는 것도 특별결합관계인 채무불이행의 위법성이나 일반결합관계인 불법행위의 위법성과 마찬가지로 개별사안에서 구체적 사정에 의하여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침해행위의 태양, 피침해 이익의 성질, 침해건물의 사회적 용도,지역성, 토지이용의 선후관계,가해방지를 위한 노력여부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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