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Closet은 명사 ‘벽장’과 ‘드러나지 않은’ 혹은 ‘본인만 알고 있는’이란 형용사다. 벽장은 사람들에게 판타지가 있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할 때 한 번쯤 이곳에 숨었던 적이 있었을 만큼 나만 알고 있는 은밀한 장소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선 ‘나니아 연대기’처럼 다른 세계로 가는 판타지의 통로다.

‘클로젯’(김광빈 감독)은 한국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벽장을 공포의 소재로 삼은 오컬트 호러다. 품격과 교훈에 재미까지 갖췄다. 건축 디자이너 상원(하정우)은 지난해 교통사고로 아내 승희를 잃고 외동딸 이나(허율)와 함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둘 다 정신병을 앓으며 소원해진 사이.

건강을 위해 경기도 한적한 단독주택으로 이사한다. 이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느라 일에 소홀했더니 건축 회사에서 다른 디자이너를 중복 고용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상원은 도우미에게 이나를 맡기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도우미는 왠지 시간도 못 채우고 퇴근하고, 그 후 이나가 사라진다.

그로부터 한 달간 상원은 인근을 이 잡듯 뒤지고 경찰에게 더 치열한 수사를 촉구하지만 이나에 대한 실오라기 같은 단서 하나도 찾지 못한다. 그러자 지역 방송사가 이 사건을 놓고 저인망식 취재와 인터뷰로 방송을 꾸미자 인터넷에선 상원이 범인으로 의심된다는 댓글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이 끊기고 상원은 수리 기사를 호출한다. 기사라며 나타난 경훈(김남길)은 이상한 행동을 하며 이나의 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러는 사이 진짜 수리 기사가 방문해 누군가에 의해 끊긴 케이블을 보여준다. 상원이 경훈을 다그치자 이나 얘기를 꺼내며 찾을 길이 있다고 한다.

웰메이드 호러 한 편이 등장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 가슴이 저미는 슬픔, 그리고 따뜻한 감동에 살짝 유머까지 갖춘 오컬트 호러라니! 인트로는 1998년 촬영된 거친 화면의 굿 시퀀스로 시작된다. 손에 칼과 방울을 쥐고 열심히 굿을 하던 무녀는 그만 벽장 속의 악귀에게 희생되고 만다.

그리고 이나가 사라지기 직전 밤샘 작업을 하던 상원은 잠깐 잠이 들었다 악몽을 꾸는데 바로 그 무녀를 본다. 벽장 겉의 문양은 마치 이집트 미라의 관 같다. 호러 장르지만 단순히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해 돈을 벌겠다는 의도보다는 명확하게 집중하는 지점이 있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징하다.

어른의 어긋난 이기심이다. 저 천재적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아내와 자식은 남편 소유’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을 정도니 유교 문화권인 우리에게 아직도 그런 정서가 남아있다는 엄연한 현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린 아직도 가끔 어른이 자식들과 동반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그건 자식을 자신이 낳았으니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엄청난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상원은 지난해 이나의 생일 때 한정판 인형을 사주고 그걸로 아비 노릇을 다했다고 착각한다. 아내 사후 이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자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내면서까지 캠프에 보내려고 한다.

종교에 따라, 인식론에 따라 저마다의 신은 다른 모양과 존재자로서 존재하는데 자연법에 따르면 우주의 코스모스와 자연의 질서가 신이다. 생물이 번식을 하고, 동물이 자신의 새끼가 자립할 때까지 먹여주고 보호해주는 건 목적 의식 때문이 아니라 신 코스모스에게 배운 선험적, 생래적 본능이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다 못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만들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학대만큼은 아니더라도 방치나 무관심도 일종의 무책임이다. 삼시 세끼 밥 먹여주고, 좋은 옷 입힌다고 부모의 사명을 다하는 건 아니다. 능력의 한도 내에서의 경제적 지원은 기본이고 관심까지 필수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성정이 함양되고, 관심으로 정서가 올바로 선다는 교훈은 IMF 시절 생활고로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을 한 한 가장의 절규로써 반면교사를 한다. “숨 쉰다고 다 사는 게 아니더라.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몰라. 다시 태어나 빚지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콘스탄틴’(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2005)에서 여형사 안젤라는 퇴마사 콘스탄틴에게 쌍둥이 이사벨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 달라는 의뢰를 하고 콘스탄틴은 지옥에 가기 위해 물을 이용한다. 상원은 이나를 구하기 위해 경훈에게 ‘이계’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콘스탄틴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지역 방송 보도가 오리무중인 이나 실종사건의 범인을 상원인 듯 몰아가는 시퀀스는 사이비 언론의 행태를 비꼬는 것이고,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댓글이 달린 디테일은 온라인상의 무책임하고 무지한 가짜뉴스 형성을 꾸짖는 것이다. 김남길은 하정우의 대표작 ‘신과 함께’를 거론하는 유머를 구사한다.

이 시퀀스는 마치 방백처럼 ‘신과 함께’로 흥행의 희열을 맛본 하정우에게는 정작 들리지 않고 관객만 알아듣는 듯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렇듯 처음 만난 하정우와 김남길의 조화는 그 신선도만큼 효과 만점이다. 다소 가벼운 듯한 경훈과 진지하지만 어딘가 허술한 상원의 캐릭터를 잘 잡았다.

이 작품에서 소리와 주파수가 매우 중요하다. 한을 품은 악령은 소리로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 등을 표현하고, 공명 주파수(공명을 일으키는 진동계의 파장) 측량으로 악령을 쫓는 경훈은 무당의 굿은 일종의 라디오 주파수라고 설명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미쓰백’의 연장선상에서 교훈을 준다.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