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레이디 버드’로써 썩 훌륭한 감독으로 우뚝 선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미국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1868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7번째 제작된 영화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북군으로 참전한 마치의 네 자매의 성장기로 미국의 개척사와 인생사를 그려냈다.

메그(엠마 왓슨)는 배우를, 조(시얼샤 로넌)는 작가를, 베스(엘리자 스캔런)는 피아니스트를,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화가를 각각 꿈꾸지만 집안은 가난하고, 당시 형편은 여자들의 독자적인 성공이 막막한 상황. 더구나 참전 중인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자매들은 우애를 나누면서도 경쟁을 한다.

메그와 조는 무도회에 참석한다. 수줍음이 많은 조는 자신과 유사한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를 알게 되고 신나게 춤추던 메그는 발을 삔다. 자매는 로리의 마차로 집에 가고 공교롭게도 이웃인 로리는 네 자매와 각별한 사이가 된다. 로리는 숲속에 우체통을 설치하고 네 자매와 열쇠를 나눠 갖는다.

로리의 할아버지 로렌스 경은 아들이 이탈리아 여자와 눈이 맞아 가출하자 오직 손자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네 자매를 알게 된 그는 죽은 딸이 생전에 아꼈던 피아노를 베스에게 마음대로 연주하라고 배려한다. 베스가 고마운 마음에 손수 실내화를 만들어 선물하자 로렌스 경은 피아노로 보답한다.

감격한 베스는 외로운 로렌스 경의 좋은 친구가 돼주지만 건강에 이상 징후가 생긴다. 로리와 그의 가정교사 존으로부터 연극 관람 데이트 신청을 받은 메그와 조가 요란스레 외출 준비를 하자 에이미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메그와 존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대학을 졸업한 로리는 조에게 프러포즈하지만 거절당해 상심한다. 조는 작가가 되고자 뉴욕으로 가 국어 교사인 프리드리히와 친분을 쌓게 된다. 로리의 마음은 에이미에게 옮겨가지만 그녀는 갑부 아들 본의 청혼을 기다린다. 메그와 존은 결혼하고, 베스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며, 전쟁은 계속되는데.

영화는 한 가정의 자매들의 사사로운 개인 성장통을 그리지만 사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연방제로 북미 대륙을 점령해가던 미국의 각종 이해관계에 따른 역사적 과정을 암시한다. 신생의 공화당은 16대 대선에 링컨을 후보로 내세워 노예제 폐지를 공약을 내걸고 승리하지만 연방은 무너진다.

이후 4년의 내전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당시 미국은 계속 서쪽으로 진출하는 가운데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등의 광활한 영토를 편입시켰다. 하지만 노예제도, 정확하게 연방정부와 주정부와의 이해득실 혹은 주도권 다툼이 문제였다. 남부의 목화 사업이 대표적인 근거였다.

영화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얘기를 쓴다’라는 작가의 집필 의도로 시작된다. 조가 주간지 편집장 대쉬우드에게 원고를 내밀자 그는 “요즘은 도덕이 안 팔린다. 주인공이 여자라면 결혼시키든가 죽이든가 해야 팔린다”며 수정을 요구하고 조는 “궁핍한 내 생활엔 돈이 목적”이라며 받아들인다.

“혼자 힘으로 사는 이는 없어. 특히 여자는 결혼하지 않으면 배우가 되거나 사창가로 가야 해”, “여자는 돈을 벌 방법이 없어. 결혼해도 남편 소유, 아이도 낳으면 남편 소유”, “여자는 사랑이 전부라는 말 신물이 나. 하지만 외로워” 등 각종 대사로써 당시에 여권이란 게 있기나 했는지 한탄한다.

자매에겐 갑부인 대고모가 있는데 그녀는 전형적인 보수층을 의미한다. 자신은 결혼을 안 했으면서도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는 ‘꼰대’ 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녀는 유일하게 믿는 에이미에게 “네가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가서 가족들을 돌봐줘야 한다”며 반드시 본과 결혼할 것을 종용한다.

그녀의 반대편에 선 인물은 조에게 “여자도 세상에 나가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해”라고 충고하는 엄마다. 크리스마스에 잔뜩 차린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딸들에게 음식과 담요를 챙기라고 하더니 이웃의 더 가난한 집으로 가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돕는다.

그녀는 “평생 조국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다”고 독백한다. 연방국가라는 대의명분 대신 집단이기주의를 선택,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전을 일으켜 국민들을 불행으로 내몬 나라. 인종차별도 모자라 성차별이 횡행하는 나라. 대놓고 여자를 남자의 소유로 치부하는 나라. 신분의 차이가 있는 나라.

조는 올컷을 모델로 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의외로 에이미가 부각된다. 그녀는 로리에게 “천재로 불리는 여자가 있기는 해? 천재는 누가 정해?”라며 여자들이 불이익을 당하다 못해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걸 항의한다. 소녀 때 그녀는 사사건건 조의 그늘에 가렸던 게 큰 콤플렉스라 한으로 남아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인해 가장 천박한 속견의 이념을 갖추지만 참된 사랑을 통해 선과 덕을 깨닫게 된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후의 결정은 이 아름답고 유려한 드라마에서 꽤 큰 진동으로 작용하는 반전이다. 운명론에 기대는 듯한 결론은 다소 아쉽지만 매 시퀀스가 정말 아름답다.

엉너리 치는 부담스러운 잉여 없이 내내 가슴이 아리거나 따뜻한 명화 같은 감동을 준다. 가난한 메그 부부에게 오두막에서 지지리 궁상맞게 살라는 대고모의 독설의 유머도, “죽음은 서서히 떠나는 썰물 같은 것”이라는 철학도 긴 여운을 준다. 자매들의 플럼필드는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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