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보헤미안 랩소디’의 격정, ‘스타 탄생’의 허무주의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0.02.05l수정2020.02.0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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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39년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되던 해 할리우드에선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가운데 도로시 역의 주디 갈랜드(1922~1969)가 크게 두드러지진 않지만 옆집 소녀 같은 친근함과 더불어 주제곡 ‘Over the rainbow’로써 배우 겸 가수로서 한자리 차지한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관객을 끌어들인 이유는 퀸이 인기 있는 록밴드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외려 퀸은 집안 어딘가에 있는 음반을 재생함으로써 더 감동적이고 추억이 생생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좋아했던 퀸의 음악이 머큐리라는 특별한 사람의 범상치 않은 인생과 버무려졌기에 관객이 든 것이다.

영화 ‘주디’(루퍼트 굴드 감독)가 그렇다. 요즘엔 생소할 20세기 중반의 대스타 주디가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의해 스타로 길러지고, 문화산업적 소비재로 소모됐는지, 죽기 직전과 막 스타덤에 오른 이후의 교차 편집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는 무섭진 않더라도 서늘한 스릴러의 서스펜스가 풍긴다.

메이저 스튜디오 MGM은 개천에서 나온 용 같은 그녀를 금고아(손오공의 머리테) 같은 계약서로 꽁꽁 묶었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과 영화를 통한 낭만으로써의 휴식이 필요했던 1940년대에 그녀는 옆집에 사는 천사였다. 특히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1944)의 연기와 노래의 조합은 절정이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물론 ‘The trolley song’, ‘Be myself’,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등 주디의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주인공 르네 젤위거가 직접 열창해 당시에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한다. 총성만 없을 뿐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아비규환인 경제적 생존경쟁의 시대이기에!

주디의 노래와 영화는 전쟁으로 지친 유럽과 승전으로 나라는 번성해졌지만 일반 국민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무기력증에 빠진 미국인의 피로회복제였다. 하지만 정작 주디는 MGM의 깐깐한 통제와 빈틈없는 스케줄 강행군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피폐해져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그녀는 ‘클락’(1945), ‘지그프리드 폴리즈’(1946) 등의 영화로 인연을 맺은 빈센트 미넬리 감독과 결혼해 스타로 성장하는 딸 라이자를 낳지만 이혼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혼하고 나서야 MGM과도 이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클래식의 리메이크작 ‘스타 탄생’(1954)으로 홀로 우뚝 서게 된다.

이 작품은 1976년에도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주연으로도 또 리메이크돼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할리우드를 뒤에서 조종하는 스튜디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그로 인한 아티스트들의 알코올 중독을 전면적으로 거론한 이 영화는 마치 주디의 인생과도 같았다.

전 남편 시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로나와 아들 조이를 데려오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녀는 라이자의 파티장에서 만난 젊은 미키와 사랑에 빠진 뒤 런던 대형 극장에서의 장기 공연 제안을 받아들인다. 미키와 결혼하고 미키는 주디의 명성을 이용해 미국 전역에 대형 극장 체인 사업을 구상한다.

주디는 평소 약과 알코올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다. 하루빨리 큰돈을 벌어 지긋지긋한 무대에서 내려와 아이들과 너른 집에서 편하게 지내는 게 꿈이다. 그러나 곧 결실을 볼 듯했던 미키의 사업은 성사 직전에 무너지고 미키는 그게 주디 탓이라고 몰아세운다. 애초부터 맑지 못했던 결혼은 끝난다.

그녀는 툭하면 공연에 지각했고, 술 혹은 약에 취해 무대에서 넘어지는 등 공연을 망치기 일쑤였다. 심지어 야유를 퍼붓는 관객과 시비가 붙는 등 연예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녀에게 찾아오는 건 해고뿐. 어느 날 시드가 찾아와 아이들의 그와 살겠다는 의사를 전한다.

짙은 검은색이 배색인 한밤중. 유일하게 빨간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간 그녀가 로나와 통화를 한다. 시드 집의 벽장 속에 들어가 “엄마 여기서 살까?”라며 아이들과 함께 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던 주디는 속내와 다르게 말한다. “만약 너희가 아빠랑 살고 싶다고 한다면 엄마도 찬성”이라고.

그녀는 MGM에 의해 사육에 가깝게 자랐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시키기 위해 스튜디오는 수시로 약을 먹였다. 햄버거나 케이크는 언감생심이었다. 런던에서 참된 우정을 나눈 친구 둘이 그녀와의 식사 자리를 만들고 내민 케이크를 먹는 그 행복한 표정은 연예계의 비정함의 증거.

그녀는 “자식은 몸 밖의 심장”이라는 명제를 던지며 애를 낳지 말라고 덧붙인다.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했다는 걸 잘 안다. 배우나 가수로서 한때 최고였지만 지금은 그냥 동인도 목적인도 없는, 동력이 다한 폐품. 여자로서, 또 엄마로서는 최악이었다. 할리우드의 소모품이었을 뿐.

‘브리짓 존스의 일기’와는 딴판으로 엄청나게 감량한 르네 젤위거의 투혼, 연기력, 노래 솜씨는 완성도에 방점을 찍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내내 시달리는 불면증과 약물중독, 그리고 무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러나는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대한 표현력으로 주디 갈랜드가 살아난 듯하다.

스튜디오는 자본이 획책한 무질서 속에서 썩어가던 모든 도덕의 최음제였고, 그런 광란 속에서 주디는 오성과 이성 대신 감성과 직관만 언명하는 자기 파괴적인 여로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광기와 나른함의 미망이 영화 전편에 걸쳐 버퍼링처럼 진동한다. 또 다른 ‘스타 탄생’이다. 2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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