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뉴질랜드(마오리어: Aotearoa)는 태평양 남서부의 섬나라로 32km 폭의 쿡 해협을 끼고 북섬, 남섬과 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주와 태즈먼 해를 두고 1,600km, 피지, 통가, 누벨칼레도니 등 태평양 섬들과 1,000 km 정도 떨어져 있다. 주요 도시는 웰링턴, 오클랜드, 해밀턴, 더니딘, 크라이스트처치 등이다.

북섬의 18% 그리고 남섬은 70%가 산악지대이고 원시림이 많아 평지는 9%에 불과하다. 해발 200m 이하의 땅은 온 섬의 6분의 1 정도다. 전체 면적의 44%가 북섬, 56%가 남섬인데, 북섬은 남섬보다 완만하며 화산지대, 온천과 간헐천에 많은 호수가 있고 비옥한 목초지가 있다. 최고봉은 루아페후 산(2,797m)이고 현재도 화산이 돌출한다. 호수는 화산폭발로 생성된 북섬 타우포 호가 최대이다.

구릉지에서는 주로 목양과 낙농이 행해진다. 남섬은 서던알프스 산맥이 3,000m 이상 봉우리 22개에 만년설의 고산지형이 탁월하다. 최고봉 쿡 산(3,764m) 주변에 태즈만, 폭스 등 대빙하가 발달했고 서해안에 밀포드 사운드 등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했다. 서던알프스 산맥 목축지는 양모를 많이 생산한다. 동부 구릉들은 고도 1,800m 이상이 거의 없고 캔터베리 평원 쪽으로 경사져 있다. 국토 최남단에 스튜어트 섬과 크라이스트 처치 동편으로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 캐썸 섬이 있다. 강은 대부분 짧고 물살이 빨라 수력발전에 유용한데, 가장 긴 강은 북섬의 425km 와이카토강이다.

서안 해양성 기후로 연강수량은 대부분 600∼1,500mm인데 남섬 남알프스 서쪽 경사면에서 5,000mm 이상도 내려 동쪽지역과 많은 차이가 난다. 전지역이 편서풍대고 연평균 10℃ 정도인데 북섬 오클랜드 반도에선 15℃, 남섬 남부는 10℃ 안팎이다. 지구 온난화로 만년설이 녹는다. 북섬 최북단은 대부분 따뜻하며 눈을 보기 힘드나 남섬 최남단은 겨울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온다.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테와히포우나무 국립공원은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타 지역에서 사라진 신생대, 중생대 생물이 발견되는데 약 8,500만년 전에 타 대륙과 격리됐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누벨칼레도니와 함께 유일하게 뱀이 없다는 것이다. 오랜 격리로 독자적인 동물, 식물, 균류 등이 발전됐다. 원산 동물은 도마뱀, 개구리, 박쥐, 키위와 흰눈썹뜸부기 등 많은 조류가 있으며, 참치, 물퉁돔, 대구등 물고기가 연안에 서식한다.

살아있는 화석인 카우리 나무는 높이 40m에 가지가 20m나 된다. 인간 이주 후 저 지대의 늪과 습지대의 고유 동식물 85%가 멸종됐다. 북쪽의 갈색 키위는 멸종위기며 타 키위들은 해마다 6% 감소한다. 고유종 새는 모두 93종이었으나 이중 43종이 멸종됐고, 37종은 멸종 위험에 있다. 고양이, 개, 흰족제비, 주머니 쥐 등 외국에서 유입된 동물이 생태계 위협요인이다.

역사를 보면, 1250~1300년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해 마오리족 문화가 형성됐다. 1642년 12월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 유럽인 최초로 남섬 웨스틀랜드 해안에 상륙하며 마오리족과 충돌했다. 그는 이곳을 네덜란드 제일란트주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 명명했고, 뉴질랜드는 이 말의 영어식 번역이다. 1769~1777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은 남섬과 북섬들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도 처음에는 마오리족과 충돌했으나 다시 와 접촉할 때는 보다 협조적인 분위기였다. 1814년 런던의 선교사가 개신교 선교를 시작했는데, 당시 이곳은 호주 사우스웨일스주 식민지로 고래와 바다표범잡이 기지였다.

1840년 마오리족은 자신들의 신변과 토지 소유권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했다. 식민지가 된 후 각지에서 이민자가 오기 시작했다. 증가한 이민자와 토지강탈 등 갈등이 커졌고, 마오리족과의 전투는 1847년까지 계속되었다. 1852년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식민지는 6개 주로 나뉘고 정부가 들어섰다. 1865년 수도를 오클랜드에서 웰링턴으로 옮겼다. 1860년 백인들이 강제로 매각한 땅에서 마오리족을 몰아내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자 전쟁이 일어나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1870년 결국 영국군과 민병대 그리고 정부편의 마오리족이 토지매각에 반대하던 부족들을 굴복시켰다. 갈등이 계속되자 영국은 유화정책으로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회유하여, 1870년부터 분쟁이 약해지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됐다. 19세기 중반 금의 발견은 식민지에 번영을 가져왔고 더 많은 유럽인이 들어왔다. 1880년대 초 냉동선 개발로 영국에 버터, 육류를 출하하며 농업기반의 경제가 정착했다. 1898년 자유당은 사회보장제를 도입하고, 노동조합 결성을 장려하며 성공적인 토지정책을 실시했다.

1890년대 여성의 투표권과 함께 경제 불황이 왔다. 1907년 뉴질랜드는 대영제국 내 자치령 지위를 얻었다. 1920년대 개혁당 정부는 생산자와 국가가 권한을 갖는 수출판매 대리제도로 유제품 및 타 제품들에 대한 판매 협조 체제가 확립되었다. 1930년대부터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노력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갔다. 제1, 2차 세계대전에 군대, 양모, 식량으로 영국을 지원했다. 1941년 이후 일본 위협으로 태평양 전쟁에 휘말렸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법으로 자치정부 수립이 허용됐으나 자치국의 정식 인정은 1947년에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 미국과 태평양 안전보장 조약(ANZUS)에 가입했으며, 1951년 군사 동맹 체제로 전환됐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64~72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대 뉴질랜드는 세계 최고 생활수준의 나라였지만 1970년대 초 오일 쇼크와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은 경제에 인플레이션 급등과 실업 증가로 돌아왔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경제를 다각화했다. 1985년 남태평양 국가들과 비핵화선언인 라로통가 조약을 체결했다.

국민당 정부는 강력한 개입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1980년대 초 임금, 가격 동결 및 이자율 제한 등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래서 1984년 승리한 노동당 정부는 정책을 급선회하여 기업활동 규제 철폐, 농업보조금 폐지, 소득세 삭감, 임금, 가격, 이자율 등 규제완화 개혁 단행 및 핵무기 확산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대외정책도 영국과 미국 영향력이 줄고 독자 입장이 강화되었으며 주변국들과 관계도 개선됐다.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고 뉴질랜드 정부 추천으로 영국 국왕이 지명하는 5년 임기 총독이 대표한다. 총독의 권한은 제한적이나 의회 해산 등 국가적 위기에서 비상조치를 한다. 정부형태는 영국식 의원내각제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나 실제 강력한 중앙집권제다. 노동당, 국민당 양당제로 정치적 안정을 누린다. 의회가 입법권을 행사하며, 의원은 3년 임기에 총 120석(지역구 62 + 마오리특별지역구 7 + 전국구 51)을 정당득표율로 나누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다.

다수 의석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다수당 총재가 총리가 된다. 행정권은 내각에 있다. 법안은 내각의 결정으로 의회에서 발의되며, 다수결 통과로 법률이 된다. 2004년 독자적 최고법원인 뉴질랜드 대법원이 창설됐다. 그 아래 항소법원과 3개 지역의 고등법원, 지역 주요 도시들마다 지방법원이 있다. 뉴질랜드의 헌법은 성문법과 관습법으로 구성되어 둘이 충돌하면 관습법이 우선이다. 경찰은 내각 차원의 한 부서로서 법 집행과 관련해 행정 당국으로부터 매우 독립적이다.

화폐는 뉴질랜드달러(NZ$)이고 총 재정의 1/3은 사회복지에 쓰인다. 경제는 농업, 중소기업, 서비스업에 기반한 시장경제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선진국 수준이나 호주, 캐나다보다 생활 수준은 낮다. 농업은 국내총생산의 9%로 노동인구의 10%가 종사한다. 목초지가 국토의 1/2이나 경작지는 2% 정도다. 목양업이 농업을 주도하며 생산성이 높다. 목양은 제1 산업으로서 양은 북도에 60%, 남도에 40%가 분포한다. 육류, 양모, 버터, 치즈는 대개 수출된다. 밀 생산량은 국내 수요를 충당하며 보리, 옥수수, 콩, 감자는 소비용으로, 키위, 사과, 배는 수출용으로 재배된다.

남도의 동쪽 및 남쪽 연안에 혼합농업이 발달해 목초 등과 윤작하면서 곡류의 생산이 활발하다. 임업은 외화 수입원으로 제재용 침엽수를 비롯해 목재, 목재 펄프를 수출한다. 제조업은 GDP의 1/5을 차지하며, 노동인구 비율도 그 수준이다. 공장은 중소 규모로 내수용 제품을 생산한다. 광업은 GDP 비중이 작다. 생산된 천연가스 상당량은 발전소가 사용하고 원유는 타라나키 반도의 유전에서 생산된다. 석탄은 년 200만t 이상 채굴이 되는데, 그중 소량은 수출된다. 사철, 금이 상당량 채굴되나 경제에서 광물자원의 비중은 작고, 수력, 지열 등의 재생 에너지가 경제발전에 중요하다. 전력은 주로 수력발전으로 생산되나 대규모 지열발전소와 화력발전소도 있다. 수출품은 낙농품, 육류, 양모, 목재, 과실, 약재 등이고, 수입 품목은 엔진과 기계류, 자동차, 석유 제품, 통신 장치, 공산품, 철강, 비료, 금속제품 등이다.

2018년 475만명으로 인구의 86%가 도시에 거주하며, 남섬이 더 크나 인구 75%는 북섬에 산다. 주민은 유럽계 백인(82%), 마오리족(9%), 기타 폴리네시아인과 화교, 인도인 등이 있다. 백인은 영국계, 아일랜드계와 네덜란드계 등이 섞여있고, 마오리족은 여러 종족들로 나뉘어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6~15세)이고 문맹률은 거의 0%다. 거의 모든 어린이가 국영 유치원에서 취학 전 교육을 받고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고등교육의 기반은 기술대학, 지역대학(지역 주민에게 대학 과정을 가르치되 학위는 수여않함), 사범대학이며 그밖에 몇몇 종합대학과 농업대학이 있다.

영어와 마오리어가 공용어다. 인구의 90%가 영어를 사용하며, 1987년부터 마오리어가 채택되어 두 언어가 공용어다. 모든 마오리족도 영어를 사용하며, 그중 약 1/3은 마오리어도 사용한다. 많은 학교에서 마오리어를 가르치며 그외 주 언어는 일부 국민이 사용하는 사모아어다.

명목상 그리스도교(69.9%) 국가다. 성공회(24.3%), 장로교(18.0%), 로마 가톨릭(15.2%), 감리교 신자 등이 인구의 약 3/5이고,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동방정교회, 유대교회, 그리고 마우리족에게 전래된 그리스도교인 라타나교회와 링카투교회 신자도 상당수다. 불교, 힌두교 신자도 있지만 인구의 약 1/4은 무종교다.

주요 도시는 철도로 연결되며 고속도로도 잘 발달되어 있다. 남섬과 북섬 사이를 여객선이 운행한다. 오클랜드,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에 공항이 있고 오클랜드, 웰링턴에 항구가 있다. 오클랜드 국제공항은 타 대륙으로 통하는 주요 관문이다.

육, 해, 공군 약 9000명의 정규 병력을 보유하고 있고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와 세계 3대 복지국가로 무료 요양 및 노인연금과 실업수당이 지급된다. 1890년 최저 임금법 시행, 1898년 노인연금 채택 및 1920년대 미망인, 광부 연금과 16세까지의 어린이 수당을 채택했다. 1938년 무상 치료와 의약조제, 개인병원 진료에 국가 보조금 지급 등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연금, 복지 제도를 채택했다. '전국민 퇴직연금제'로 60세 후 퇴직하면 세금 공제 후 자신 임금의 80%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 기타 결손가정, 장애인, 환자 수당과 저소득 가정 생활보조금 등 많은 연금, 복지수당이 있다.

세계적인 급류타기, 제트 보트, 스키, 트레킹, 번지점프 등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 속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며, 황금빛 해변, 광활한 초원 등이 대표적이다. 와이탕이의 트리티하우스와 여러 부족 조각 작품들이 전시된 37m의 거대한 마오리 공화당이 유명하다. 북섬 타우포의 달분화구 지열지대 그리고 로토루아 와카레와레는 마오리족 마을 내의 최대 온천지이다. 로토루아 호수는 화산활동으로 생성됐는데 로토루아 내의 9개 호수 중 가장 크다. 레드우드 그로우브는 세계 각국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와이토모 동굴은 개똥벌레인 그로우웜이 서식한다.

‘New Zealand’는 네덜란드어 ‘Nieuw-Zeeland’에서 온 말로 Zeeland 지방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다. 1642년 12월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 남섬 웨스틀랜드 해안을 발견하고 이곳을 네덜란드의 제일란트주 이름을 따서 '노바 젤란디아'라 명명했다. 다른 설에는 1645년 네덜란드 지도학자가 Zeeland 주 이름을 따 ‘Nova Zeelandia’로 명명했다고 한다. 후에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영어식으로 지금의 New Zealand로 불렀다. 국명 아오테아로아(하얗고 긴 구름 나라)는 마오리어식 명칭이다. 이 명칭은 유럽인 정착 이전부터 이 곳을 말하는 단어였는지 아니면 단지 북섬만을 뜻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마오리어로 북섬은 ‘Te Ika-a-Māui(마우이의 물고기)’, 남섬은 ‘Te Waipounamu(녹색돌의 물)’ 또는 ‘Te Waka o Aoraki(아오라키의 카누)’라고 한다. 초기 유럽인들은 지도에 노스(북섬), 미들(남섬), 사우스(스튜어트 섬)로 표기했다. 1830 가장 큰 두 섬을 구별하기 위해 지도에 북섬과 남섬으로 표기했고, 1907년에는 이 표기가 표준이 됐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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