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67년 개봉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 ‘졸업’(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오는 13일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친 106분 무삭제 버전으로 재개봉된다. 당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동시에 감독상을 수상한 이유를 새삼스레 느끼게 할 만큼 재치, 유머, 사회적 통념에 대한 반항이 넘실댄다.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이 대학을 졸업하고 LA의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는 대학 4년간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학내 활동이 두드러졌던 그를 축하하는 대대적인 파티를 열어준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이 남편이 차를 가져갔다며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들어준다.

집은 텅 비어있고 이상하리만치 부인은 벤자민에게 끈적거린다. 벤자민은 “지금 저를 유혹하시는 겁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들었다가 망신을 당하고 구렁이 같은 부인의 수법에 궁지에 몰릴 즈음 로빈슨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부인은 딸 일레인(캐서린 로스)을 거론한다.

부모와 친척들은 미래를 묻고 벤자민은 확신이 안 서 방황한다. 그러던 중 로빈슨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한잔하자고 청하자 부인은 호텔 방을 잡으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시작된 부적절한 관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밤마다 이뤄지고, 부모는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이 밤을 낭비하는 아들을 걱정한다.

벤자민의 아버지와 동업자인 로빈슨은 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벤자민과 일레인의 결혼을 원하고 로빈슨은 때마침 버클리의 대학에서 방학을 맞아 집으로 온 일레인을 벤자민에게 소개해준다. 그러나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게 일레인과 사귄다면 자신과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는데.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 5년 만에 한국전에 참전하고 적극 간섭해 3년 뒤 아시아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1960년 베트남 내전에 뛰어든 미국은 무려 15년이란 긴 전쟁을 패전으로 마무리한다. 1967년은 2년 뒤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시기다.

‘졸업’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세계 최강국 미국을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한 영화다. 전편에 걸쳐 재미있는 코미디가 흐르고 그 풍자에서 재치가 넘친다. 벤자민은 오지랖 넓은 미국의 미래를 뜻한다. 세계 각국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며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은유다.

벤자민은 LA에 수영장을 갖춘 호화 주택에 살고 로빈슨도 부유하다. 아버지는 벤자민이 대학원에 진학한 뒤 자신보다 더 큰일을 하기를 바라지만 벤자민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뭘 할 수 있을지는 더 불투명하다. 로빈슨이 아내와 각방을 쓴 지 오래됐기에 부인은 육체적 정신적 외로움이 크다.

가족들의 이런 불협화음은 신흥 강대국 미국의 불균형을 바라본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전통을 잇긴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뿌리로 삼을 수 없는 개신교도의 신흥국가인 미국이다. 존 로크의 자유 의지를 뿌리로 법과 이념을 세웠지만 스페인, 영국과는 다른 유대인의 민족주의까지.

벤자민의 아버지는 손님들 앞에서 아들의 대학에서의 활약상을 자랑하느라 입에 침을 튀긴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흔히 미국을 자유분방한 나라라고 선입견을 갖는데 의외로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 로빈슨과 부인은 포드 안에서 첫 관계를 갖고 속도위반을 하는 바람에 결혼했다.

그게 내내 그들 부부의 발목을 잡았고, 그래서 비교적 일찍 각방을 쓰게 됐다. 로빈슨이 벤자민에게 적극적으로 일레인을 연결해주고, 벤자민의 부부도 노골적으로 결혼을 부추기는 시퀀스 역시 부모의 뜻대로 자식의 배우자를 정하려는 우리 풍속과 유사하다. 그 의도대로 가는 건 기계론의 차용.

파티 중 벤자민이 집안으로 들어와 물끄러미 어항 속 금붕어를 들여다보는 시퀀스는 갇힌 자아의 고찰이다. 결혼식장에서 일레인을 빼돌린 뒤 십자가로 빗장을 거는 신은 여전히 통쾌하고 ‘The sound of silence’, ‘Scarborough Fair’, ‘Mrs. Robinson’ 등 사이먼앤드가펑클의 OST는 변함없는 감동을 준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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