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예멘 공화국, 예멘(아랍어: 알야만)은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의 국가로 천일야화 주요 배경지 중 하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길목으로 예로부터 중동 국가 중 아랍인의 기질과 문화적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나라다. 북쪽 사우디아라비아, 동쪽에 오만과 접하고, 홍해, 아덴 만, 아라비아 해에 접해 있으며 아덴 만 건너 지부티와 소말리아와 만난다. 남서부 해안 전체는 아라비아 해에 속한다. 소말리아 앞바다의 인도양 소코트라 섬과 인근 작은 도서군인 브라더 제도,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위치한 페림(바림) 섬, 홍해에 속한 카마란 섬 등도 예멘 영토다. 수도는 사나이고 22개 주로 구성된다.

지리학적으로 4개 지역으로 나뉜다. 홍해 연안 해안 평원, 서부 산지 고원, 동부 산지 고원, 북쪽 룹알할리 사막 지역이다. 너비 25~40km 좁은 해안 티하마 평원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쪽 홍해 연안에 펼쳐져 있고, 아덴 만쪽에도 불연속 형태로 너비 8~16km의 해안평원이 있다. 홍해 연안은 산지에서 흐르는 강은 보기 힘들며, 와디 또는 지하수 형태로 존재한다. 아덴 만 연안 해안 평야에서는 수리를 이용한 농작물을 경작한다.

해발 450~1,500m 서부 고원지대는 동쪽으로 펼쳐졌고 영구하천 와디 하드라마우트와 간헐천 와디 마실라 등으로 형성된 건곡을 중심으로 오만 국경 부근인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나뉜다.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 건조지대이나 서부 고원지대는 토양이 기름지다. 2번의 우기에 내리는 강수량이 많아 계단식 농업으로 수수, 곡물류, 감자 등을 생산하고 면화와 망고 등도 재배된다.

남부 해안 근처 고원지대 곳곳에서는 가시관목, 유향, 몰약의 원료를 채취할 수 있는 수종과 키작은 나무 등 천연식생이 어느 정도 분포한다. 동부 산지 고원은 해발 2,000m 지역으로 기온차가 서부 산지보다 더 커 낮 30℃, 야간 0℃이다. 동부 지역은 보리나 밀이 재배된다. 예멘 고원 북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전 국토의 절반가량인 룹알할리 사막이 남쪽과 연결된 모래사막이다. 이 사막에 베두인 유목민이 낙타 유목만을 한다.

기온은 홍해 연안이 높고 중부 고지가 쾌적하다. 홍해 연안은 여름 한낮이 38℃가 넘는 경우가 많고 상대습도는 80%가량이다. 서부 고원지대는 여름은 서늘하고 겨울은 매우 춥고 눈이나 서리가 자주 내리며, 밤낮의 기온차가 크다. 강수량은 고도에 따라 편차가 커서 동부 해안저지대와 북부의 사막지역은 연평균강우량이 100㎜정도, 남서부 고원지대는 400㎜ 남짓이나 중부인 예멘 북부의 고원지대는 평균750㎜(연간 400∼1,000mm) 정도의 강우량을 보인다.

역사를 보면, B.C 1000년경 고대 남예멘은 카타반 왕국과 하드라마우트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들 왕국은 유향과 몰약 거래로 부를 축적했고, 넓은 지역에 관개시설로 물을 공급하는 등 오랫동안 번성했다. 카타반 왕국은 B.C 5세기말 시바 왕국(B.C 950~ B.C 115년)에게 멸망했다. '솔로몬과 시바'의 나라인 이 왕국은 넓은 지역에 물을 공급한 마리브의 댐 관개시설로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B.C 1세기 후, 육로를 통한 향료교역이 수로로 옮겨지고 마리브 댐이 황폐해지며 몰락했다.

이후 남아라비아 전체는 힘야르 왕국(B.C 100년~A.D 525)의 영토가 되었고, 한동안 사나가 수도였다. 4세기 중반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왔으나, 왕국은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했고 이 때문에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교 왕국 아비시니아에게 525년 멸망했다. 575년 페르시아 사산왕조가 이 지역을 정복했고, 7세기 이슬람교를 수용했으며, 9세기 자이디파 이맘인 야흐야 알-하디 일랄-하끄가 라쉬드왕조(자이디 왕조)를 수립했다. 이 왕조는 1517년 오스만 터어키에 점령되어 1918년까지 지배를 받았다.

1173~1229년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가 예멘 지역을 통치했고, 1229~1451년 이 왕조 속국인 라술 왕조에 관할권이 넘어갔다. 라술 왕조 시기에 과학, 농경, 문학, 건축 등 황금기를 누리다가, 북예멘의 타히르 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16세기초 이집트 맘무크 왕조의 공격으로 남예멘을 제외한 북예멘이 정복됐다가 1517년 예멘 전체가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1635년 북예멘의 자이디 왕조가 투르크를 몰아내고 남예멘까지 장악했으나, 왕조는 1735년 이후 남예멘에서 물러나며 남예멘은 여러 부족 우두머리 중심으로 분리됐다. 오스만 제국은 19세기 중반 다시 예멘에 들어왔으나 1872년에야 사나를 차지했는데, 그동안 무하마드 알리는 영국을 끌어들였고 1839년 영국이 천혜의 무역항 아덴을 탐내서 남예멘 지역을 점령하며 분단이 시작됐다. 1918년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며 북예멘이 독립했다. 자이디 왕조가 아덴과 영국 보호령을 포함한 예멘 전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으나, 1962년 북예멘 군사 혁명으로 몰락하고 ‘예멘 아랍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사나 수도의 북예멘 정부는 부족적,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친서방이었지만 소련에서 원조를 받았다. 1937년 영국 정부의 직할식민지 및 보호령이었던 아덴은 1963년 창설된 남아라비아 연맹 소속이었다. 영국은 이 연맹에게 1968년 독립을 약속했고, 1967년 소련 지원의 마르크스주의 민족해방전선이 연맹을 장악했다. 그해 사회주의 남예멘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고, 1970년 ‘예멘 민주인민공화국‘으로 개칭했다. 남예멘은 아덴 만을 따라 북예멘의 동쪽 편에 위치하며 수도는 아덴이었다. 남예멘은 비종교적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북예멘과 계속 대치했다.

1972년, 1973년, 1979년에 국경 문제로 무력 분쟁이 이어졌고, 1978년 6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되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1989년 양국은 통일에 합의했고, 1990년 5월 22일 예멘(예멘 공화국)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 때문에 남예멘 관료들은 예멘민주공화국을 선포하며 내전으로 비화했다. 1994년 7월 군사력 우위의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이 됐다.

2004년부터 시아파 무장 단체 후티는 예멘 서북부를 중심으로 정부에 반란을 시작했다. 2013년 1월 14일 예멘 남부에서 분리독립 요구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2014년 9월부터 후티 반군은 수도 사나에 진입해 대통령 사임을 요구했다. 2015년 1월 20일, 반군이 대통령 관저를 공격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1월 22일, 대통령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와 총리 칼레드 바하흐는 의회에 사임을 냈지만 의회는 거부했다. 2월 6일, 후티는 임시 헌법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551명 새 의회를 구성하며, 151명의 대통령 위원회를 설치해 2년간 정부 역할을 맡게 하겠다고 밝혔다. 아덴 중심의 예멘 남부 주들은 후티 정부의 통치를 거부했다.

이란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후티 통치를 불법으로 여겨 사나의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고 아덴에 새 대사관을 개설했다. 하디 대통령은 2월 23일 사임을 취소하고 후티 통치는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아덴으로 정부를 옮겼지만 사나 중심의 후티 세력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아랍 국가들의 도움으로 2015년 6월 하디 정부는 아덴 등 남부 지역을 수복하고 후티에 맞서 예멘 전역을 수복하기 위해 싸웠다. 하디 정부는 2015년 9월말 아덴으로 환도했다. 하디 대통령은 리야드에 머무르다 2015년 11월 귀국했다. 내전이 계속되자 유엔은 2018년 12월 24일에 휴전을 시켜 일단락됐다.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일한 공화제의 다당제 의회민주주의며, 부족법과 이슬람 법에 바탕을 둔 법률체계다. 현행 헌법은 1991년 공포되어 1994년과 2001년에 개정됐다. 3선 금지의 7년 임기 국가원수 대통령은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부통령과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내각인 국무위원회 구성원은 총리의 조언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문위원회(111석)와 인민대표원(301석)으로 구성된다. 임기 6년 인민 대표원 의원은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자문위원회는 대통령의 조언기관이라 예멘 의회의 실질적 입법권 행사는 인민대표원이 한다.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한다.

예멘은 국영과 민간 부문 혼합경제 개발도상국이다. 1인당 GNP는 중동에서 가장 낮다. 아랍 국가들과 서방세계의 재정 지원을 받지만 성장이 더디고, 실업률이 30% 이상이며 물가 상승률도 높다. 중요한 경제적 바탕 농업은 GNP의 1/4이고 전체 노동력의 1/2이 농업에 종사하지만 식량을 자급하지 못한다. 수수, 감자와 대추야자, 밀, 포도, 보리, 옥수수, 목화, 기장, 원예채소 등이 재배된다. 모카커피와 마취성 초목 까트(khat)는 관개시설이 된 토지에서 재배해 수출한다.

양, 염소, 소 등 가축을 방목하며 염소 젖이 우유 생산량의 2배 정도다. 어업은 소규모로 정어리, 고등어, 오징어는 수요를 충족하고 가공 후 수출한다. 공업 부문은 GNP의 1/10로 고용비율은 노동인구의 5%이다. 아덴을 중심으로 정유, 석유화학, 제염, 알루미늄 공예 등이 발전한다. 정부는 차관으로 산업 다원화를 추진해서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곡물가공과 시멘트블록, 타일, 직조, 고무, 플라스틱 제품, 소금, 음료수, 낙농제품을 생산한다. 전력은 화력발전으로 충족된다. 건설, 무역, 서비스업 부문이 GNP의 절반 정도로 노동인구의 1/3이 종사한다.

광물자원은 비교적 풍부해 철광석에 석탄, 구리, 납, 아연, 니켈, 금, 은, 우라늄 광상이 있으며, 살리프에서 암염을 생산한다. 1980년대 중반 북동부의 마리브알자우프 분지에서 매장량 큰 유전층이 발견되었다. 석유나 천연가스는1980년대 이후 개발되어 아랍 지역에서 가장 가난하다.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조, 개인송금 등이 국제수지 불균형을 충족에 큰 몫을 한다. 커피, 비스킷, 포도, 참깨, 설탕, 꿀 같은 식료품을 비롯해 가축, 담배, 가죽, 석유제품 등을 수출하며, 식료품, 가축, 공산품, 기계, 운송장비, 화학제품류 등을 수입한다.

인구는 2018년 기준 2,891만명이다. 15세 이하가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며, 인구의 1/3이 도시에 거주한다. 아랍인이 98%이고, 소수의 예멘계 유대인이 있다. 대체로 단일혈통이며, 정착농민, 도시거주민(총인구의 1/4), 유목민 등 세 집단으로 나뉜다.

국민 대부분 무슬림으로 수니파가 56%, 시아파가 43%를 차지한다. 소수 그리스도교도, 힌두교도, 유대교도들이 있다. 이슬람교리보다 부족 내의 규칙을 우선하는 경우도 있다.

간선도로망 개발은 미미하고 대부분 비포장이며 관리상태도 나쁘다. 당나귀와 낙타가 시골지역에서 교통수단이다. 러시아 연방의 어선 및 해군함정기지로 이용되는 아덴 항은 실제 수용력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 외 알후다이다, 알무카, 살리프 항 등이 있다. 국내선 공항이 여러 도시에 있고, 아덴, 사나, 알후다이다·타이즈 등에 국제공항이 있다.

공용어는는 아랍어다. 초, 중등교육은 무상이지만 성인들의 문맹률은 상당히 높다. 초등학교 취학연령 아동의 1/3∼2/3만 취학하며, 고등교육기관은 사나대학교, 아덴대학교가 있을 뿐이다.

예멘은 오랫동안 여러 고대 문화와 문명이 합류하던 곳이었다. 속담, 민담, 미신 및 신비주의 시가 등 구전문학으로 풍부하게 전승되고, 예멘의 역사, 이슬람 신학, 전기, 시 등 주로 문헌으로 남아 있는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이슬람교에서 술을 금지해 기호품이자 마약성 작물인 까트가 사회문제가 된다. 성인 남성은 허리띠에 반달모양의 단검(쟌비야)을 찬다. 단검은 집안이나 부족, 빈부 등 특성을 드러낸다. 차지 않은 도시 남성들도 집에 쟌비야를 갖고 있다. 여성은 머리와 얼굴을 가리는 스카프와 몸을 가리는 천을 착용하나, 전체를 감추도록 요구되지 않는다.

시바 여왕의 나라 ‘예멘(Yemen)’은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Yemen’은 셈 공통기어 ‘yamin-(오른쪽)’이 아랍어 ‘al-yaman’을 거쳐 ‘Yemen’으로 정착했다. Yemen은 ‘ymnt(south)/ yamin(오른쪽)’에서 유래했는데, 메카의 카바신전에서 보면 예멘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다른 설은 땅이 기름지기에 ‘yamn’ 혹은 ‘yumn(행복, 축복받은)’에서 유래가 되었다 한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Arabia Deserta(버려진 아라비아)’와 반대의 ‘Arabia Felix(비옥한 아라비아, 행운의 아라비아)’라 불렀다. 아라비아는 ‘사막의 아라비아’, ‘보석의 아라비아’, ‘행운의 아라비아’로 나눠 부른다. 예멘이 '행운의 아라비아'로 불린 것은 고대에서 '향료'로 유명했고 땅이 기름지기 때문이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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