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리 토시오 감독)는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에 투고돼 400만 건 이상 열람된 화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노래와 만화로도 연계됐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은 소재를 사랑, 결혼, 인생이란 철학으로 확장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39살 샐러리맨 준(야스다 켄)은 첫 번째 결혼 후 3년이 됐을 때 아내가 갑자기 가출을 했고, 2주 만에 귀가한 그녀가 무작정 이혼을 요구해 그렇게 헤어진 아픔이 있다. 그리고 시즈오카에 출장을 갔다 버스를 놓친 인연으로 맺어진 신이치의 외동딸 치에(에이쿠라 나나)와 재혼한 지 3년이 지났다.

한 번 이혼의 아픔이 있는 준은 재혼할 때 치에와 3년 뒤 결혼생활을 평가한 뒤 계속 살지, 다른 길을 선택할지 조율하자는 약속을 한 바 있다. 드디어 결혼 3주년 기념일. 집에 돌아오니 치에가 피를 흘리며 죽어있다. 경악한 준은 구급대원을 부르려 허둥대고 웃으며 눈뜬 치에는 장난임을 알린다.

그 후 매일 준이 퇴근하면 치에는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어느 날은 악어에게 물리고, 어느 날은 닌자의 칼에 찔리며, 어느 날은 미라가 된다. 처음엔 놀라고 황당했지만 다음엔 약간 재미있어 장단을 맞춰준다. 그러나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반복되는 게 지겨워지면서 집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진다.

준에겐 결혼 5년 차의 친한 회사 후배 소마(오타니 료헤이)가 있다. 소마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자 부부 동반 식사를 제안한다. 이를 계기로 치에는 소마의 아내 유미코와 친구가 돼 낮에 자주 만난다. 한편 준은 치에의 ‘죽은 척’을 중단시키기 위해 한 노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의 ‘알바’를 주선한다.

야구 타격 연습장에서 홈런에 집착하던 유미코는 치에에게 그들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핸디캡을 고백한다. 어느 날 유미코는 치에에게, 소마는 준에게 이혼한다고 털어놓는다. 죽은 척하지 말라니까 유령 분장을 하는 치에에게 힘들어하던 준에게 장인 신이치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오는데.

일본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편견 없이 그저 한 편의 영화로만 볼 때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긴 여운을 남기는 철학적 메시지를 주는 근래 보기 드문 수작 로맨틱 코미디다. 고답파 소설가 겸 영문학자 나쓰메 소세키와 고양이에 대한 토테미즘, 그리고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까지 차용한다.

먼저 결혼에 대한 고찰. 준과 치에가 결혼 승낙을 요청하자 신이치는 “앞으로 상상도 못할 일을 겪을 거야. 고생하겠지만 둘이 함께 이겨내다 보면 어느새 부부가 돼있을 거야. 과정은 추해도 괜찮아, 어차피 인생은 힘든 여정이니”라고 충고한다. 신이치의 아내는 치에가 고작 5살 때 세상을 떠났다.

신이치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혼자 초밥집을 운영하랴, 어린 치에를 키우랴 무척 힘든 나날을 보내며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다. 치에는 그런 아버지를 우연히 발견한 뒤부터 위로해주려는 마음에 퇴근 시각에 맞춰 고양이 분장 등을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 시작했다.

신이치는 준에게 인생의 선배지만 치에에겐 준과 동격이기도 하다. 영화 말미에 치에는 “내가 왜 날마다 죽은 척을 한 줄 알아?”라고 묻는다.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사운드는 묵음 상태가 되면서 화이트아웃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정답을 확정하지 않는 건 관객 각자의 해석에 맡긴다는 뜻.

그러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남편의 긴장을 풀어주고 잠시나마 재미있게 해주겠다는 퍼포먼스적 엔터테인먼트 의도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가부장적인 뉘앙스가 살짝 불편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죽지 말고 살아남자는 반어법은 재치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퇴근에 맞춰 숨어있으면 신이치가 그 넓지 않은 집의 공간에서 못 찾을 리 없다. 횟수가 늘자 어느 날부터 신이치는 짜증을 내곤 했고, 그럴 때면 치에는 “아빠가 찾으면 난 늘 거기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치에는 준에게도 “당신이 찾으면 난 늘 거기 있어”라고 말한 바 있다.

출근 때 치에는 입맞춤을 요구하고 준은 “이젠 신혼 아니잖아”라고 반응한다. 치에는 “꼭 살아 돌아와”라고 응원을 보낸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살짝 엿보인다. 준은 “날 어떻게 생각해?”라고 수차례 묻고 치에는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나쓰메를 인용하는데 준은 못 알아듣는다.

화성과 금성의 언어의 장벽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일은 신의 섭리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다 선하다”고, 라이프니츠는 “그래서 세상은 예정조화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의 목적은 인간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고, 라이프니츠의 논리적인 전제는 모순율과 충족이유율에 있다.

매사에 엉뚱한 여자들은 사실은 속이 깊고, 언제나 자신이 옳고 앞서간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항상 어리석고 늦게 깨우친다. 치에는 결혼을 신의 섭리나 예정된 조화로 받아들여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이에 비해 준은 인과론을 믿기에 결혼생활이 불안하다. 앞선 이혼의 상처 때문이다.

치에는 준에게 “절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 삶과 죽음이란 정립과 반정립을 함께 받아들여 인생의 종합을 완성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말한다. 연인과 부부의 필독서다.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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